부부,가족

Let it be

송담(松潭) 2011. 11. 10. 13:39

 

 

Let it be

 

 

 

 남편은 계속 쓸데없는 일들을 시도했다. 등산부터 테니스, 볼링, 낚시, 골프, 무선조종까지. 그때마다 그녀가 달려들어 몰아붙였다. 남편이 자기를 방치한 채 도망을 다니는 거라면서.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밖으로만 나돌면 다야!”

 결혼 후 2~3년 동안은 그녀와 남편의 숨바꼭질 스토리같았다. 집 안에 팽개쳐놓고 밖으로만 다닐 거라면 결혼은 왜 했는지, 그녀는 서럽기만 했다.

 

 남편은 어느 순간 이후로 고분고분해졌다. 그녀가 하자는 대로 따라주었다. 자동차도 바꾸고, 실내 인테리어도 다시 하고……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번에는 남편의 무기력이 그녀를 미치게 했다. 심드렁한 표정에 적당주의.

 얼마 전, 그녀가 불만을 퍼붓자 그가 구시렁거리며 소파에서 돌아누웠다.

무장 해제시켜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옆에서 숨만 쉬는 바보로 만들어놓고는 이젠 바보라서 화가 난다는 거냐.”

 

 

 그녀는 남편을 자기 취향으로 바꾸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 한편으로는 남편을 잃은 것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며 섬세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과거의 남편은 사라졌다.

 

 그녀는 남편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아내를 사랑하지 않음으로 해석했고, 지속적으로 압박해 들어가 마침내 항복을 받아냈다. 남편은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빼고는 그녀 옆에 있어주었다. 그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남편이 무기력해진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이 즐기던 음악이나 등산 같은 것은 쓸데없는 짓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독수리처럼 외로움을 사냥했을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의 노른자를 감싼 껍질이 깨지지 않도록 품어가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남편이 닭장 속의 독수리 신세가 되는 걸 원한 게 아니었다. 집에서는 그녀만을 바라봐주고, 밖에서는 경쟁에서 적들을 물리치는 의연한 독수리가 되기를 원했다.

 

마음속에서 커다란 종이 울렸다.

그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함을 만들어내고, 또 유지하고 싶어한 것 자체가 욕심이고 환상에 불과했던 것 아닐까.’

 

그녀는 요즘 자주 들러 위안을 얻고 있는 인터넷 카페에 접속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Let it be

 

제멋대로인 그 사람 때문에 외롭고 가슴이 아프다고요?

그래도 그 사람을 마음대로 바꾸려 들지 마세요.

그 사람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걸 해주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죠?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그는 당신 말은 잘 듣는 대신, 자신을 믿지 못 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그건 자신감을 잃고 무능해진다는 뜻과 일맥 상통해요.

당신은, 당신 마음대로 움직여주는 그 사람을 보면서 과연 만족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능하게 변한 그 사람을 보면서 후회만 하게 될 거예요.

 

누구에게나 자아의 노른자라는 것이 있답니다.

(‘자아의 노른자그 사람이 그 사람이게 하는 것으로 마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것.)

 

사랑하니까 그럴 권리가 있다고 믿어도, 상대의 그 노른자에는 손을 대면 안 돼요. 그건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그 사람만의 것, 이랍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게 된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만 쏙 바꾸고 싶다고요? 그게 바로 노른자를 건드리는 불행의 시작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요,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랑 노른자 속에서 딱 붙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싫은 것을 억지로 파내려다가는 가장 좋아하는 것까지 잃어버리게 된답니다.

 

현명하게 사랑하는 연인들은 다정하고도 편안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알아요. 상대를 바꾸거나 장악하려 들지 않습니다. 상대가 잘못을 저질러도 스스로 인식하고 개선할 때까지 기다려줘요. 믿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맘대로 바꾸려다 상처를 주고받아요. 대개는 명분과는 달리 이기적인 이유에서 시작하죠. 체면이나 허영, 한마디로 남의 눈때문에요. 남들은 자기 일 바빠서 우리한테 관심도 없는데 말이죠. 서로를 바꾸려다 상처가 깊어지고 외로움의 심연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서로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거든요.

 

사랑은 하나가 아닌 둘일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해요. 그를 그답게 내버려두세요. 그 사람을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인정하고 수용하자는 것이죠. 인정과 수용은 체념이나 포기와는 다르거든요.

그 사람이 지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더라도 그냥 두고 지켜보세요. 그는 고독 속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몰라요. 솔리튜드 말이에요.

 

나를 안다는 건 정말 중요한 출발점이란 생각이 들어요. 내 한계를 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한계를 안다는 건, 내가 내 주변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순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죠. 내 체중도 내 맘대로 하기 힘든데, 하물며 남을 어떻게 맘대로 할 수 있겠어요.

 

저는 지금 병원에 입원중이랍니다. 수술은 잘 받았고, 검사 결과를 봐서 다음 주쯤 퇴원할 것 같아요. 남편은 긴장이 풀렸는지 옆에서 하루 종일 자고 있네요.

저도 이제 남편을 달달 볶지 않고 내버려두려 해요. 그동안 남편이 얼마나 외로워했을지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려고 해요.

 

이따가 남편이 깨어나면 꼭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고맙다는 말도요. 병원에서 배우네요. 사랑은 믿고 내버려둘수록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것을요.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원한다면, 그 사람을 병들게 하는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면, 제발 그냥 내버려두세요. 그가 외로움 속에서 인간적으로 더욱 성숙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Let it be.

 

한상복 / ‘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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