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B급 만세!

송담(松潭) 2011. 11. 2. 13:27

 

 

B급 만세!

 

 

 

 아들아, 네가 보낸 이메일을 읽으면서 아빠도 마음이 아팠다. 평생을 루저 loser로 살 것 같아서 걱정된다고 했지? 친구들 보다 키도 작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요즘 같은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말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답답하다고.

 

 아빠가 책을 보다가 너와 비슷한 사람을 발견했다. 수학을 싫어하는 것까지 너와 판박이더구나. 들어볼래?

 

 영국에서 태어난 이 사람은 16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키에, 학생때는 줄곧 열등생이었단다. 초등학교만 세 번을 옮겼다는구나. 학생기록부를 보면 품행이 나쁘고 신뢰할 수 없으며, 친구들과 자주 다투고 의욕과 야심도 없다고 기록되어 있단다. 특히 수학 실력은 정말 형편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사관학교에 입학해 수학과목이 없어지자, 비로소 우등생으로 변신했다는구나. 나중에는 정치에 입문했지만, 어린 시절부터의 언어장애 때문에 연설을 하는 데 애를 먹었지. 그가 생각해낸 것은 두 가지였어. 큰 소리로 읽고 또 읽는 연습. 또 하나는 연설문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 그의 가장 유명한 연설문은 전체가 딱 세 단어였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이쯤이면 누군지 짐작하겠지? 맞아, 처칠 수상이다. 인생의 앞 대목은 형편없는 루저로 보냈지만,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어 날아간 것처럼 삶을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했지. 나중에는 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아빠는 루저였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A급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B급이었다. 그게 아빠의 콤플렉스였다.

 

 그렇지만 이제 아빠는 A급이 되지 못한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B급이지만 아빠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 등 여러 가지 면에서 B급인 것에 만족하고 B급에 머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B급이야말로 재미있는 위치란다. B급은 노력 여하에 따라 A급으로 튀어오를 수 있지. 처칠 수상도 밑바닥에서 하루아침에 정상으로 튀어오른 건 아니다. 그에게도 오랜 B급의 시절이 있었지.

 

 스포츠에서도 호화판 스타 군단이 B급 선수들로 이뤄진 팀에 어이없이 패하는 경우가 있잖니? A급에겐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B급에겐 성실한 자세와 협동정신이 있다. 세상은 그래서 공평한 거란다.

 

 나중에 담임선생님께 조용히 여쭤봐라.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 선배들 중에서 스승의 날에 꾸준히 찾아오는 부류가 어느 쪽인지 말이야. 틀림없을 거야. A급이라 불리는 친구들은 많지 않을 거다. 이유가 있단다. A급에겐 성공이 당연한 거니까. 자기 노력으로 성공했는데, 선생님께 고마움을 느낄 이유가 없는 거지. B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단다.

 

 아빠는 고마워할 수 있다는 점을, A급 아닌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는 것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아빠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아빠는 B급으로 살아가는 것이 창피하지 않다. 오히려 좋은 인생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양지가 아닌 적당한 음지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그만그만한 거절과 실패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 만족하면서 살고 있는 거다. 그런 숱한 거절과 실패를 미리 겪어보지 못하고 성공가도만 달려왔다면, 지금 이 나이에 뒤늦게 좌절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아들아, 언제나 실패라는 외로움에 당당히 맞설 줄 알아야 한다. 삶은 성공보다는 무수히 많은 실패로 이루어져 있거든. 매 순간 그런 실패를 맞이하고 또다시 시작하는 과정에 익숙해질 때, 자아는 호두 껍데기처럼 단단해지는 거다. 그게 외로움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모든 부모가 아이를 오로지 A급으로 만들어보려고 불철주야 노력한다. 하지만 아빠는 네가 반드시 A급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과한 것보다는 부족한 게 낫다. 채울 게 있어야 기대가 싹트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도 나오는 것이다. 과하면 넘치고, 더한 욕심을 부리고 오만해진단다. 결국에는 추하고 위험해진단다. 아빠의 아들은 그렇게 추하고 위험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A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B급에 머물기 바란다. B급의 겸손함으로 A급 수준의 생각을 해야, 넘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만족과 감사, 행복을 균형 있게 누릴 수 있으니까.

 

추신.

이 메일은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엄마는 아빠를 A급이라고 믿고 결혼했거든. 허풍도 좀 떨었다만. 다음 주말에 보자.

 

한상복 / ‘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중에서

'부부,가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런 사람, 단 한 명이라도 만났다면  (0) 2011.11.11
Let it be  (0) 2011.11.10
남자가 오래 살면 여자가 이혼한다   (0) 2011.11.01
행복과 불행   (0) 2011.10.02
현대판 고려장을 아시나요  (0) 2011.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