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행복과 불행

송담(松潭) 2011. 10. 2. 18:11

행복과 불행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찬란하고 대기는 신선하고 상쾌했다. 지하철 환승역을 지날 때 듣곤 하던 휘파람새 울음소리가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으로 들려오고, 첩첩산중에 내 발자국 소리를 듣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그 순간 아주 말갛고 선명한 행복감이 사랑하는 사람의 깊은 포옹처럼 온몸을 감싸 안았다. 짧지만 한없이 기쁘고 편안했다. 그동안 마음을 들볶던 불안과 의심과 고뇌와 갈등 따위는 저만치 산 밑에 두고 온 듯했다. 막연하고 망연하나마 이런 행복감을 선사하는 산이라면 분명히 명산이다.


 오롯이 혼자만의 행복감을 만끽하며 걷노라니 문득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라는 불교 우화집에서 읽은 윤회와 관련된 이야기 한 자락이 생각난다.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 영혼이 잠시 쉬며 머무르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는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처럼 그늘이 넓은 큰 나무가 있고, 그 나뭇가지에 이승을 떠나 저승에 온 영혼들의 살아생전 사연이 적힌 쪽지가 주렁주렁 걸려 있단다. 그래서 다음 생으로 떠날 채비를 하며 다리쉼을 하는 동안 영혼들은 그 사연들을 읽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으로 후생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부터다. 하나하나 쪽지를 펼쳐 읽노라니 모두가 하나같이 너무나 슬프고 괴롭고 마음이 아파서 영혼은 차마 다른 생으로 ‘갈아타고’ 싶다는 마음을 먹지 못하고, 결국에는 자신이 이미 겪었던 전생을 다시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달린 소제목은 ‘슬픔의 자리, 행복의 자리’였다.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고통의 바다이자 불의 집(火宅)인 삶의 아픔과 뜨거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결국 슬픔의 자리와 행복의 자리는 따로 있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교훈일 테다. 누구나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거나 기구함을 한탄하지만, 불행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측정되지 않는다. 행복 역시 마찬가지다.


 행불행은 타인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자신의 생에 행복하고 불행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김별아 / ‘이 또한 지나가리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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