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내가 살아가는 이유

송담(松潭) 2011. 8. 19. 14:35

 

 

내가 살아가는 이유

 

 

 

 책상에 놓인 휴대 전화가 바르르 떨렸다. 액정 화면에 예쁜 마누라라고 찍혔다.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렸다. 3개월 전 회사로부터 재택근무 명령을 받고 도서관으로 출근하면서 생긴 증상이다. “몇 시쯤 퇴근해?” “글쎄, 7시쯤 퇴근할 거야.” 급히 둘러대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는 몰랐다. 나는 어김없이 아침 6시 반이면 출근하는 척 집을 나섰으니까.

 

 

 도서관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멍에처럼 내 어깨를 눌렀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 얼굴을 보는 게 괴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배웅하는 아내 손에 도시락이 들렸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아내는 말없이 도시락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고는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점심 때 드세요. 빵으로 어떻게 저녁까지 버텨요.” 나는 잘못하다 들킨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다.

 

 

 그날 저녁 아내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나를 맞이했고, 밥상에는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고기도 올라왔다. 알고 보니 도서관 휴게실에서 빵을 먹는 모습을 아내 친구에게 들켜 거짓 출근이 들통난 것이었다.

 

 

 지금도 아내는 변함없이 도시락을 챙겨준다. 여기 저기 이력서를 내 보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채용을 꺼려했다. 이제 한 달이 지나면 약간의 월급마저 끊긴다.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지만 아내는 한결같았다. 하루는 아내가 도시락에 넣어 준 쪽지를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당신의 퇴직은 이제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뜻일 거예요. 당신 글 쓰는 것 좋아했잖아요. 그 꿈을 이루도록 도울게요.” 나는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당신이 있어서 내가 살아간다고.

 

 

김춘식 / 경기도 군포시

(‘좋은 생각’2011.9월호)

'부부,가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과 불행   (0) 2011.10.02
현대판 고려장을 아시나요  (0) 2011.08.30
백중(百中)을 기다리며  (0) 2011.07.15
배고프니까 엄마다  (0) 2011.06.17
사랑의 지향점(指向點)  (0) 2011.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