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배고프니까 엄마다

송담(松潭) 2011. 6. 17. 10:50

 

 

배고프니까 엄마다

 

 

 

 닭날개는 요즘 안주상에 오르지만, 넉넉지 못하던 시절엔 사내들이 입에 대서는 안 되는 먹을거리였다. 복날 어쩌다 닭백숙이라도 밥상에 오르는 날이면 많은 식구(食口)의 입에 들어가는 닭고기는 늘 쩨쩨했다. 그래도 엄마의 분배 기술 덕에 모두는 쩨쩨하나마 고기 맛을 볼 수 있었다. 다리와 가슴살을 사내들부터 나누어 주며 엄마는 남자가 닭날개 먹으면 바람난다고 했다. 닭날개만큼은 여자 몫이라는 뜻이었다. 사내의 바람기와 닭날개의 관계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다. 하지만 보릿고개를 건너온 사내라면 닭날개 안주를 뜯으며 엄마의 지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장 볼썽사나운 갈등을 가리키는 말이 아귀다툼이다. 오죽하면 굶어 죽은 귀신 같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밥상에서 식구끼리 아귀다툼을 벌이지 않은 데는 가장 적게 먹는 엄마의 공이 크다. 음식물 쓰레기를 걱정해야 하는 풍요의 시대라지만 가난한 엄마들의 사정은 여전하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세계 식료품값이 치솟으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보릿고개로 배곯는 이들이 늘고 있고, 가난한 엄마들이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식과 남편에게 조금이라도 주려 엄마들이 끼니를 거르거나 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제 식량값 폭등으로 지구촌의 배곯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식품가격지수(FFPI)는 지난 2236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보다 25%나 오른 수치다. 이 지수가 10% 오르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이 1000만명씩 늘어난다. 1년 새 배곯는 이가 2500만명 늘어난 셈이다. 영국 구호단체 옥스팜이 17개국 소비자를 조사해봤더니 응답자의 53%가 지난 2년간 식량값 폭등 탓에 식생활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형편이 나은 이들은 고기반찬을 줄인다지만, 빈곤층은 더 굶주리게 됐다는 뜻이다.

 

 

 미국 인류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는 책 <어머니의 탄생>에서 엄마를 자기희생적 존재로 간주하는 모성신화에 반기를 든 바 있다. 엄마는 가정의 생계와 양육을 수행하며 밥상의 배분하는 전략가로 볼 때 모성의 실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략가 엄마의 밥상 전략은 언제나 자신을 우선순위의 맨 뒤에 두고 있음은 변함이 없다. 식량위기로 배고프니까 엄마다라는 말이 나올 판이다.

 

 

 

유병선 / 논설위원 (2011.6.17.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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