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사람과 행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권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선배를 위로하는 유홍준에게 선배가 답합니다. “뭐, 괜찮아요. 나는 크게 실망하지 않아요. 우리 조상이 그랬어요. 내가 무엇이 안 되었음을 안타까워하지 말고 내가 무엇이 되었을 때 그것에 대한 준비가 없음을 걱정하라고. 하하하.” 유홍준은 그 말을 꼭 기억해두고 싶었다고 합니다. 누가 읽어도 좋은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보면 위안과 깨달음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위안의 수단이든 깨달음이든 간에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때를 기다리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오지 않을 경우 섭섭한 감정을 수습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때 우리가 끌어들이는 게 바로 행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둘을 합쳐 흔히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거나 “준비된 자가 행운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쯤 되면 행운은 이미 행운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남몰래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온 사원에게 행운이 찾아옵니다. 갑자기 찾아온 외국 고객에게 마땅히 통역할 사람이 없는 그런 경우입니다. 여기서 실력을 발휘하면 능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참 많습니다. 누가 부상당한 주전의 대타로 시합에 뛰었다가 주전으로 올라갔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행운은 어떤 것일까요? 주전의 부상일까요, 대타가 된 나 자신일까요? 준비된 자에게 모두 행운이 온다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좀 더 지혜로운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바로 “나는 왜, 무엇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출세하거나 이름 떨치기를 꿈꾸는 것이라면, 그건 천박한 것입니다. 물론 천박한 게 다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갈고 닦아서 어디에, 누굴 위해 쓰려는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무술을 연마하여 언젠가 나를 건드리는 누굴 혼내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싸움기술이지 무술이 아닙니다. 무술은 나를 닦는 일이고, 그걸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무술은 강호를 떠나는 걸 목적으로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왜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불행이나 빈틈에서 내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지요? 준비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게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준비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모든 패권주의와 침략이 준비된 삶에게 비롯됩니다. 그리고 준비되지 않고 일상을 살던 사람은 그들에게 눌리고 빼앗깁니다. 이게 준비된 사람의 참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유홍준의 선배가 말한 조상이 의성 김씨인데, 그 조상의 말은 사실 공자의 말에서 따온 것입니다. 공자는 『논어』「이인(里仁)」편에서 말합니다.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를 걱정해야 하며,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남이 알아줄 만하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공자는 너그러움(仁)과 함께 잘 사는 사회(大同)를 꿈꾸었기에 천박하지 않습니다. 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섭섭해하지 않는 게 참사람 人不知而不慍 君子呼.”이라고 했기에 비난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모두가 준비하기에 미친 세상입니다. 아이들이 뛰놀기를 잊고 밤늦게까지 학원 버스에서 졸고 있습니다. 학생이 배우지 않고 성적올리기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대학생이 도서관에서 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다 큰 사람들이 취업 학원에 몰려듭니다. 주부가 집을 떠나 부업을 준비하는 시험에 매달리고, 아버지는 직장에서 퇴직 후를 걱정합니다. 모두 제정신을 잃고 준비하고 또 준비합니다. 그런데 그 준비는 한결같이 자리를 차지하고 남 보란 듯이 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삶, 지금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름답습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 이름이 되고 의미가 되기를 꿈꾸기보다 홀로 고독하게 이름 없이 제 의미를 먹고사는 야생화가 아름답습니다. 장자가 말합니다. 쓸모없는 것이 천수를 누린다고 此木以不材得終其天年. 재목으로 쓰려고 준비된 나무는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잘려나갑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나무가 생명을 지킵니다. 그 나무는 그늘을 만들고 벌레도 키우고 흙도 기름지게 합니다. 시골 마을 어귀를 지키는 나무는 금강송이나 적송이 아닙니다. 굽은 느티나무입니다. 이게 진정한 행운일 것입니다.
김범춘 / ‘철학, 세상과 소통하기’중에서
사진출처 : 유형민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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