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마음을 갖게 될까?
1800년 프랑스에서 12세 소년이 깊은 숲 속에서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빅터라는 이름을 주었다. 어릴 때부터 그를 키운 것은 늑대들이었다. 2001년 칠레에서 발견된 11세 소년 알렉스는 개들에게 키워졌다. 빅터와 알렉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빅터와 알렉스의 행동은 사실상 늑대나 개와 차이가 없었다. 오직 생긴 것만 사람을 닮았을 뿐이다. 만일 사람의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마음을 가진다면 세상의 모든 갓난아이뿐만 아니라 빅터와 알렉스도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빅터와 알렉스가 짐승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처럼 우리는 마음을 가진 채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자라면서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갓 태어난 아기는 마치 짐승처럼 행동할 따름이다. 유전자와 호르몬에 의해 형성된 신경망에 따라 본능적으로 행동할 뿐이다. 마음은 수정될 때 생기는 것도, 착상 후 생기는 것도, 임신 8주 후에 생기는 것도, 출산 후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 마음은 언제 생겨난 것일까?
빅터와 알렉스는 자라면서 마음을 갖지 못했지만 우리는 갖게 되었다. 우리와 알렉스의 차이는 정확히 무엇일까?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자라났고 알렉스는 다른 사람 없이 개들과 함께 자라났다. 어쩌면 마음은 사람들의 사회 속에서 생기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의 사회’라는 표현에는 아직 모호한 구석이 있다. 이 모호성을 간파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례를 생각해보자. 1920년 인도에서 두 소녀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늑대 무리 속에서 자라났다. 아마라와 카마라라고 이름 지어진 이 늑대소녀들은 둘이 함께 살았다. 아마라와 카마라는 왜 말을 주고받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지 못했을까? 갓난아이가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이 모여 있으면 그들 안에 말이 생기고 생각이 생기고 마음이 생기게 될까? 이것을 실험해보는 것은 반인륜에 해당할 것이다. 직접 실험해볼 수 없으니, 다만 개념적 성찰을 통해 탐구하면, 아마도 이들 속에서 저절로 마음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 처음에 마음이 없던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들에게서 마음이 새로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종의 단순한 집단은 마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빅터, 알렉스, 아마라와 카마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미 마음을 가진 사람과 접촉 없이 자라났다는 것이다. 마음을 생기게 하는 것은 다른 마음이다. 마음은 단순히 호모사피엔스 종의 무리 속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들의 사회 속에서 특별한 과정을 통해 생겨난다. 이 특별한 과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언뜻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이 주장은 사실 엄청난 형이상학을, 달리 말해 자연과학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무튼 마음은 이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극할 때만 비로소 싹이 튼다. 다른 마음이 아이를 보살필 때만 아이 속에 잠재된 마음이 서서히 깨어나게 된다. 이것은 마치 목재를 다듬어 꼴을 부여한 뒤에야 비로소 책상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에게 마음이라는 꼴을 부여할 수 있는 이는 이미 마음을 가진 이여야 한다.
내가 마음을 가지는 것은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내 머리 깊숙이, 내 가슴 깊숙이 어떤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기관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이미 다른 마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본디 다른 마음들과 함께 살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마음을 가지게 되는 시점은 아마도 다른 마음들의 존재를 지각할 때일 것이다. 그래서 건강한 마음일수록 다른 마음들의 존재를 더 또렷하게 지각하게 되고, 그러한 지각이 흐릿해질 때 우리 마음이 병들고 서서히 잠들게 될 것이다.
나는 처음에 마음 없이 태어난 짐승에 불과했다. 나는 어느덧 마음을 지니게 되었고 생각하는 자아로서 자라게 되었다. 이러한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이미 마음을 지닌 사람, 다시 말해 다른 마음들의 개입이다. 다른 마음들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는 바로 그때 나는 나에게도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 이전에 이미 다른 마음이 내 곁에 있어야 했다. 내가 생각하기 위해 생각하는 다른 마음이 내 생물학적 삶 속에 개입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또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너는 존재한다.”
김명석 / 철학박사
(2010.9.30 포스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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