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라

송담(松潭) 2010. 6. 8. 10:30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라

 

 

임어당(林語堂)은 공자를 성인이나 학덕이 높은 사람으로 보다는 개성의 매력이 넘치는 사람으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공자는 충실하고 유쾌한 생활감정과 예술적인 감성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보낸 사람, 깊은 감동성과 매우 예민한 취미성을 지닌, 대단히 명랑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은 논어(論語)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어쩌면 공자의 매력은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데 있는지도 모른다. 논어 선진(先進)편의 맨 마지막에 공자와 그 제자들과의 대화가 나오는데, 논어 전편을 통틀어서 가장 긴 글이다.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가 그들의 선생님인 공자를 모시고 허물없이 나눈 방담에 가까운 내용으로 되어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얼마간 너희들보다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나를 꺼리지 마라. 늘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만약 너희들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자로가 불쑥 나서며 대답하였다. ‘제후의 나라가 큰 나라들 사이에 끼어 있어 군대에 의한 침략을 당하고 있고, 다시 기근까지 겹쳐있다 하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린다면 거의 3년이면 백성들을 용감하게 만들고, 또 올바른 길을 알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공자께서 빙긋이 웃으셨다.

 

‘구야, 너는 어떠하냐?’고 묻자 염유가 대답하였다. ‘사방 육칠십리 또는 오륙십리 되는 곳을 제가 다스린다면, 대략 3년이면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악(禮樂)같은 것은 다른 군자의 힘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

 

‘점아, 너는 어떠하냐?’ 증석은 슬(瑟)을 타던 속도를 늦추다가 뎅그렁 멈추고는, 슬을 밀어놓고 일어서서 대답하였다. ‘저는 세 사람들이 얘기한 것과 다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슨 상관 있느냐? 각자가 제 뜻을 말하는 것인데…?’ ‘늦은 봄에 봄옷을 지어 입고 어른 대여섯명과 아이들 육칠명과 어울려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노래 읊으며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에, 공자께서는 한숨지으며 ‘나도 점과 같이 하고 싶구나’하고 말했다.(金學主譯)

 

글은 더 이어지지만, 앞에서 빼고 뒤에서 끊었다. 내가 굳이 이 글을 길게 인용하는 것은 논어에서 이 대목이 내게는 가장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크고 거룩한 일도 좋지만, 때를 알고 풍류를 즐기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낙(樂)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공자도 세상을 올바로 다스리는 일에 무엇보다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면서도, 진정한 즐거움이나 생활의 이상은 자연과 더불어 유연자적(悠然自適)하는데 두었다.

 

(....생략....)

 

5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살의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다. 5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5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5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고 한 피천득의 5월도 지나쳐 버렸다.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 하지 아니한가?”고 이양하가 예찬한 신록도 놓쳐버리고 있다.

 

어느덧 신록이 짙푸른 녹음으로 변해가고 있다.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고 내친 것도 아닌데 봄은 지금 저만치 가버리고 만 것이다.

 

바야흐로 녹음방초 승화시(綠陰芳草 勝花時)라. 천안함 사태를 놓고 벌이는 때묻은 논쟁이나 ‘지방’도 ‘자치’도 없이, 부패한 집단과 똥오줌 못가리는 집단이 벌인 6·2 지방선거의 속진으로부터 벗어나서 더 늦기 전에 신록을 보라.

 

더 아름다운 신록을 보려거든 소백산, 지리산으로 달려갈 일이다. 거기는 아직 봄이 다 가지 아니하고, 철쭉이 한창일 것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바람쐬고 노래 읊으며 돌아오는 풍류도 즐겨볼 일이다.

 

그러다 보면 천안함 사태가 가야할 길도, 그리고 6·2 지방선거 뒤에 이 나라, 이 공동체가 가야할 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속에 길이 있고 생각이 있을지니 가던 길을 멈추고,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라.

 

김정남 / 언론인·다산연구소 제공

(2010.6.8 광주일보)

 

사진출처 : 유형민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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