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심리학
웃음도 그렇지만 불안도 전염성을 띤다. 혼자서 아무리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고 해도 주위에서 불안해하면 덩달아 불안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취업 걱정을 하는 선배들의 불안도 후배들에게 옮겨지기 마련이다. 세상에는 대중들의 불안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사교육 학원들은 학부모들의 불안을 이용한다. 남들이 어떤 학원에 아들을 보냈더니 시험 성적이 올랐다고 하면 우리 아이도 그곳에 보내야 하지 않을까 불안해진다. 대학생들도 남들이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면 자기도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만 뒤쳐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혹시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열심히 유행을 쫒아가고 타인을 따라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이러한 성향을 일찍이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먼은 그의 역작 『고독한 군중』에서 ‘타인지향형’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유행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또래들의 소비 패턴을 쫒아가는 오늘날 대한민국 10대와 20대의 모습이 곧 ‘타인지향형’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자아존중감이 낮고 체면에 민감한 정도가 높을 때 민감성 허세를 부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명품의 소비를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해 보겠다는 전략이 허세의 심리학이다. 돈이 안되면 짝퉁 명품이라도 사야 직성이 풀린다. 허세를 부린다는 것은 사실 불안에 빠졌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웃에게 지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리는 ‘관계 불안’ 또한 사람들이 자신을 불행하다고 여기는 또 다른 이유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은 ‘이 집이 우리 가족에게 적당한가?’ 하는 생각을 접고 ‘내 집이 이웃집보다 더 좋은가?’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는 불안하고 취직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의 대학생들이 느끼는 것이 ‘스펙강박증’이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써넣기 위해 이런저런 자격증들을 따야 하고 더 많은 경력을 쌓아야만 한다고 느끼는 강박증세가 스펙강박증이다.
강박증세는 정상인 중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치고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도 걱정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쩌면 삶에 아무런 계획도, 꿈도 없는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불안이야말로 어쩌면 인간의 진정한 모습인지도 모른다.
김보일 / ‘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중에서(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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