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선택적 기억상실

송담(松潭) 2009. 12. 22. 14:09

< 1 > 

 

선택적 기억상실(selective amnesia)

 

 

지난주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은 ‘모든 것을 잊은 남자’라는 제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남자의 기구한 사연을 전했다. 미국 피닉스에 사는 스콧 볼잰(47)은 16개월 전 회사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뒷머리를 바닥에 부딪힌 뒤 예전의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친척과 자식들은 물론 25년 넘게 살아온 아내마저도 이제는 낯선 타인일 뿐이다. “마치 누가 내 인생 컴퓨터의 삭제 키를 눌러 메모리가 통째로 날아간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기억상실증은 크게 ‘전향성 기억상실’(anterograde amnesia)과 ‘후향성 기억상실’(retrograde amnesia)로 나뉜다. 새로운 정보나 사실을 습득하는 능력이 손상돼 몇 초나 몇 분이 지나면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이 전자라면, 일정 시점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후자다.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의 복수극을 그린 <메멘토> 같은 영화도 있지만, <마음의 행로> <겨울연가> 등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로 소재로 삼는 기억상실증은 후자다. 기억상실증의 종류나 유형 중에는 ‘선택적 기억상실’(selective amnesia)이라는 것도 있다. 어느 시점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을 중심으로 그 주변 시간대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경우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2년 전 촛불의 기억’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하다. 그 기억은 때로는 왜곡되고, 과장되며, 중요한 대목이 잊히는 경우도 많다.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른 선택적 기억상실 증후군도 엿보인다. 당시 뼈저린 반성을 다짐했던 이명박 대통령이 이제 와서 국민들에게 반성을 요구하는 것도 일종의 선택적 기억상실이라 할 만하다. “기억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해두는 대뇌 활동이 아니라 매 순간 변하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경험의 질료”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요즘이다.

 

김종구 / 논설위원 (2010.5.14 한겨레)

 

 

 

 

  < 2 >

 

통합, 융합, 통섭(統攝)

 

 

나는 그동안 주로 '개미박사'나 '생태학자'로 불렸는데 최근에는 종종 '통섭학자'라고 소개된다. 내가 몇 년 전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진 통섭(統攝)은 어느덧 지하철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일상용어가 되었다. 통섭이 등장하자 기존에 우리가 사용하던 통합이나 융합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이 이어졌는데, 고맙게도 2005년 서울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모인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마치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만들듯 다음과 같이 정리해주었다.

 

통합은

둘 이상을 하나로 모아 다스린다는 뜻으로 다분히 이질적인 것들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과정이다. 전쟁 때 여러 나라의 군대를 하나의 사령부 아래 묶어 연합군 또는 통합군을 만들어보지만 병사들 간의 완벽한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통합보다 더 강한 단계가 통폐합인데 껄끄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융합은 핵융합이나 세포융합에서 보듯이 아예 둘 이상이 녹아서 하나가 되는 걸 의미한다. 통합이 물리적인 합침이라면 융합은 다분히 화학적 합침이다.

 

이와 달리 통섭은 생물학적 합침이다. 합침으로부터 뭔가 새로운 주체가 탄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남남으로 만난 부부가 서로 몸을 섞으면 전혀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지닌 자식이 태어나는 과정과 흡사하다.

 

나이가 조금 지긋한 이들은 학창시절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외던 기억이 날 것이다. 프로스트가 쓴 또 다른 시 '담을 고치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 담이 없으면 이웃이 아니라 한집안이다. 한집안이라고 해서 늘 화목한 것은 아니다. 학문의 구분과 사회의 경계는 나름대로 다 필요한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담이 너무 높으면 소통이 불가능하다. 통섭은 서로의 주체는 인정하되 담을 충분히 낮춰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려는 노력이다.

 

통합이든, 융합이든, 통섭이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서로 어울려 갈등을 없애고 화목해지는 것이다. 소통은 세 가지 덕목을 필요로 한다. 비움, 귀 기울임, 그리고 받아들임이다. 결론을 손에 쥐고 남을 설득하려 들면, 그건 통치 또는 통제에 가깝다. 우선 나를 비워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좋은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유난히도 소통이 아쉬웠던 한 해가 저문다.

 

최재천 /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2009.12.22 조선일보)

 

 

 

 < 3 >

 

귤화위지(橘化爲枳)

 

 

“회수(淮水) 이남의 귤을 그 이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 춘추시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간 제나라의 유명한 재상 안영은 초나라 영왕이 제나라 출신 도둑을 보여주며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잘 하오?”라고 묻자, 이렇게 말하며 제나라에선 도둑질 않던 사람이 초나라에서 도둑이 된 건 초나라의 풍토 탓이라고 일갈했다. 식물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제도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에서 멀쩡하게 잘 돌아가던 제도를 우리나라에 수입했을 때 역기능을 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정부가 급속하게 확대하려는 입학사정관 제도나 도입 예정인 영·수 심화과정과 학점제 따위도 그런 경우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미국 대학에서 단순히 성적만 좋은 학생이 아니라 좀더 다양한 능력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로 평가된다. 물론 제도 도입 초기 미국에서도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 도입 몇 해도 안 돼 부정시비가 나오는 등 불신을 사진 않았다.

 

기초·심화과정이나 고교 학점제도 여러 나라에서 잘 운영되고 있는 제도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경우 벌써부터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교육환경의 차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핀란드엔 우리와 같은 과도한 교육열이나 학벌지상주의가 없다. 각 대학은 나름의 특장점을 갖고 있을 뿐, 우리처럼 서열화돼 있지 않다. 명문대학을 나와야 출세한다는 환상도 없다. 따라서 대학입시에 목을 맬 이유가 없고 대학입시 제도가 고교 교육을 왜곡하지 않는다.

 

이런 교육환경의 차이를 무시한 채 선진국의 제도만 도입해서는 원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귤이 탱자가 되기 때문이다.

 

권태선 / 논설위원(2010.4.12 한겨레)

 

 

 

< 4 >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

경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문구다. 유명한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다.

 

16세기 영국에서는 종이 돈 대신 금화와 은화 등 실물 동전이 사용되었다. 당시 은화 한 닢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은 가격과 은화의 가치가 똑같았다.

 

이 같은 방식으로 화폐를 만들다 보니 국가 재정이 악화됐다. 헨리 8세는 세금도 변변치 않은데 은 가격과 똑같은 가치를 지닌 돈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데 착안해 약간의 머리를 쓴다. 즉, 색깔이 비슷한 싸구려 금속을 좀 섞어 은화를 만들었더니 액면가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재정을 절약할 수 있었다. 이른바 ‘악화’가 탄생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은 은이 제대로 들어간 동전이나 부족한 동전도 똑같은 가치를 지니는 데 굳이 순은 동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단 순은 동전은 집에 보관해놓고 악화만 사용하는 바람에 마침내 악화가 시장을 지배했다. 이러한 현상을 영국의 경제학자 그레샴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표현했다.

 

그레샴의 법칙은 선거판에도 적용된다. 훌륭한 인품, 실현 가능한 공약을 두루 갖춘 후보를 ‘양화’라고 치자. 반대의 경우가 악화다.

 

악화로 지칭되는 후보의 특성을 열거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공식적인 관계보다는 사사롭게 “형님, 동생”이 많은 구시대형 인물. 문제해결 능력보다는 심금을 울리려는 감성파. 막판에 몰리면 돈봉투로 표심을 사려는 흑심파까지 다양하다.

 

문제는 선거판에서 종종 그레샴의 법칙이 통용돼 왔다는 사실이다. 유권자들이 악화(나쁜 후보)의 폐단을 꿰뚫지 못해 진짜 뽑혀야 할 후보가 고배를 마시고 마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6·2 지방선거가 코 앞이다. 당신은 양화를 제대로 고를 것인가? 악화를 구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것인가?

 

박치경 / 사회1부장(2010.6.1 광주일보)

 

 

 

< 5 >

 

하인리히 법칙 [Heinrich's law]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 관리감독자였던 H. W. 하인리히가 그의 저서 <산업재해예방(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에서 소개한, 오늘날 산업재해 예방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이론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는 법칙을 말한다. 그는 수천 건의 보험 고객상담을 통해 자료 분석 결과를 소개하면서 '사고는 예측하지 못하는 한 순간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여러 번 경고성 징후를 보낸다.'고 주장하며 이를 1 : 29 : 300의 법칙으로 정립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심각한 안전 사고가 1건 일어나려면 그 전에 동일한 원인으로 경미한 사고가 29건, 위험에 노출되는 경험이 300건 정도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징후들을 제대로 파악해서 대비책을 철저히 세우면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이기도 하다.

그의 주장은 2000년 개봉된 영화 <데스티네이션>을 통해 일반인들에까지 알려졌으며, 최근에는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그 적용분야가 확대되어 개인은 물론 사회적 실패나 사고 원인을 분석하는 등 사회ㆍ경제 전반적인 현상을 분석ㆍ설명하는 데 널리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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