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이타적 인간의 가능성

송담(松潭) 2009. 12. 2. 10:49

 

이타적 인간의 가능성

 

 

 이타주의 또는 자기희생은 같은 종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개체 사이의 생존경쟁이 벌어진다는 진화론의 기본 원리와 충돌한다. 도대체 인간의 이타주의와 도덕관념은 어디서 왔으며 인간은 무엇 때문에 이런 재능을 키워온 것일까? 다윈은 이것 역시 자연선택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두 원시인 부족이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고 해보자. 다른 조건이 모두 같은 상황에서 한 부족에 용기 있고 공감을 갖고 충실한 구성원이 많다고 하자. 이들은 위험이 닥쳤을 때 항상 서로에게 위험을 알리고 서로 돕고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다른 부족보다 더 빛나는 성공을 거두고 결국은 다른 부족을 정복했을 것이다. (....) 좋은 품성을 갖춘 사람이 늘어나고 도덕성의 기준이 진보할수록 부족 전체는 다른 부족에 비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높은 수준의 애국심, 충성심, 복종심, 용기, 동정심이 있어서 항상 남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많은 부족은 다른 부족에 비해 성공을 거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선택이다. - 「인간의 유래」, 다윈

 

 이른바 ‘집단 선택론’이다.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이 집단차원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종 사이의 경쟁보다는 같은 종의 상이한 개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을 진화의 주된 동력으로 본 『종의 기원』과 비교하면 다윈이 논리적 일관성을 허물었다는 느낌을 준다. 이타 행동과 자기희생을 적극적으로 하는 개체는 죽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적은데, 어떻게 그 집단이 높은 수준의 이타주의와 도덕관념을 보유할 수 있느냐는 논리적 반박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매우 흥미로운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다윈이 인간을 순전히 이기적 본능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이타주의와 자기희생의 정신을 발전시킨 고귀한 도덕적 재능의 소유자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다윈은 인간 사회를 벌거벗은 생존의 욕망과 경쟁이 지배하는 적자생존이라는 이름의 약육강식이 정당화되는 정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윈은 자연에 대해서는 냉혹한 관찰자였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우생학이나 ‘인종개량’의 망상이 지닌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인간은 이기적 본성을 버리지 못하지만 , 동시에 이타 행동을 우러러보는 직관적 도덕률을 지닌 동물이다. 인간은 또한 밤하늘의 별을 볼 때에도 땅에 발을 디뎌야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현실의 이해타산을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고결한 이상주의가 사라진다면 인간의 삶이 너무 비천할 것 같다. 누구나 다윈만큼씩만 인간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이타주의에 공감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살 만한 곳이 되지 않겠는가.

 

유시민 / ‘청춘의 독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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