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슬픔, 통곡하기

송담(松潭) 2010. 1. 8. 11:29

 

슬픔, 통곡하기

 

 

 애도 작업의 핵심은 슬퍼하기이다. 우리는 슬퍼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딱딱해지고, 몸이 아프고, 삶이 방향 없이 표류하게 된다. 우울증조차 제대로 슬퍼하지 못해 생긴 결과이며, 우울증은 슬픔의 왜곡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울 수만 있다면 마음의 병이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뒤늦게라도 울음이 터져 나오는 바로 그 순간부터 마음이 회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애도 개념과 울음의 기능에 대해 알고 난 후 예전에 간직했던 ‘통곡의 벽’사진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찾는 순례지라고 한다. 그들은 그 벽 앞에서 내면의 슬픔을 표현하는 의례를 갖는다. 그들은 어떻게 통곡의 벽 같은 것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놀랍기만 했다.

 

 통곡의 벽은 아니지만 유대인들이 어떻게 애도 작업의 일환으로 통곡하기를 의례화하는지 직접 목격한 일이 있다. 뮌헨 근교 소도시인 다하우에 유대인 수용 시설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기차역에서 내려 수용소를 향해 걸어갈 때 열 명 남짓한 청소년들이 담소를 나누며 경쾌한 걸음으로 나를 앞질러 갔다. 열일곱, 열여덟 살쯤 보이는 남녀 학생들은 교사쯤 되어 보이는 인솔자를 따르고 있었다.

 

 내가 소용소 입구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추모탑 앞에 반원 형태로 둘러서서 묵념을 오리고 있었다. 내가 추모탑을 둘러본 후 관광 안내소 건물로 들어가 기본적인 정보를 챙겨 나왓을 때 그들은 추모비 주변에 무릎 꿇은 자세로 둥글게 둘러 앉아 있었다. 서로 손을 잡고 고개를 깊이 숙인 자세였다. 그쪽으로 몇 걸음 옮기다가 나는 걸음이 멎었다.

 

 그들은 그런 자세로 울고 있었다. 환한 대낮에. 많은 관광객 앞에서,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배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오열을 억압하거나 과장됨 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들 뒤에서 걸음이 멎은 채, 당황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느낌으로, 그럼에도 무언가 중요한 장면과 맞딱뜨린 심정으로 잠시 서 있었다.

 

 슬픔의 유용성, 울음의 정화 기능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인들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비극을 만들어 대중 앞에 공연하면서 관객들을 울게 만들었다. 한바탕 울고 나면 마음속에서 들끓던 야수 같고 어수선한 것들이 걷히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화가 찾아온다. 그런 때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잇는 용기와 자신감도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는《시학》에서 그 현상을 카타르시스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오늘날에도 문학은 동시대인의 울음을 반걸음쯤 앞서 우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슬픔을 표현하면 마음뿐 아니라 몸의 통증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기록도 있다. 유대인으로서,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린은 수용소 경험을 담은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울음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눈물은 한 사람의 가장 위대한 용기,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간혹 어떤 이들은 겸연쩍은 얼굴로 자기가 울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나의 동료 가운데 한 사람도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그는 한때 부종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부종의 고통에서 벗어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부종을 이겨냈는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실껏 울어서 부종을 몸 밖으로 내보냈다네.”

 

김형경 / ‘좋은 이별’중에서(발췌정리)

 

 

 

 

* 상실의 목록 적어보기

 

25년을 살았든 45년을 살았든 사는 동안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의 목록을 적어본다. 애착을 느끼던 시계나 만년필 같은 것에서부터 어느 시기에 사랑했지만 다시 못 만나게 된 옛 친구나 연인, 잡지 못한 채 흘려보낸 기회나 꿈 같은 것까지. 그러면 삶이 상실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받아드리기 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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