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 분노, 공격성
오래도록 이상한 느낌을 받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별을 통보 받은 이들이 하나같이 똑같은 대사를 내뱉는다는 것이다. 사랑하던 사람이 헤어지자고 말하면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문득 높은 목소리로, 분노에 가득 차서 소리 지르곤 했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그 대사는 일종의 원형처럼 이별 장면마다 약간씩 변형되어 반복되곤 했다. 그 대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저게 무슨 뜻일까, 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진심으로 그 말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사랑하다가 헤어질 수도 있지, 상대를 사랑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띠고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생을 두고 절대 복종과 예속을 약속한 관계도 아닐 텐데. 이별을 변절이나 배덕 행위처럼 여기는 저 태도는 무엇일까. 상대방이 당연하게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 분노에 찬 말투는 무엇일까. 그런 대사를 이상하게 생각할 때 내 속에는 이런 마음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지. 사랑하다가 마음이 변할 수도 있지 뭘, 마음이 변할 때마다 죽일 듯이 덤비면 겁나서 누가 사랑을 하겠어.’
그런 생각을 하던 시절에 나는 내면에 분노를 억압하고 있었고, 내면에 분노가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을 잃었을 때 화를 내는 것은 유아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아기들은 자기에게 만족스럽고 편안한 것은 좋은 것이고, 불만스럽고 불편한 것은 나쁜 것으로 이해한다. 내게 좋은 것은 사랑하고 내게 나쁜 것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고,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에게 화를 내고 신을 공격하는 것은 상실의 순간 우리가 잠시 유아기로 퇴행하기 때문이다. 퇴행하여 무의식에 있는 그 시절의 상실감을 다시 경험하기 때문이다.
너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고 말거야. 그렇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 것도 분노의 결과이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을 떠난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 역시 애도 과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애도 작업이 완료되면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진다. 옛 연인이 더 이상 멋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애도’는 슬픔의 감정을 외부로 표현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애도 작업’은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뿐 아니라 슬픔과 관련된 감정의 단계를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통틀어 이른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애도 작업 중 양가감정과 공격성을 처리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 대목이라고 의견을 모은다. 분노의 감정이 보살펴지지 않은 채 오래 누적되어 차갑고 딱딱하게 변하면 증오가 된다. 증오는 강한 혐오감이나 원한의 마음, 연민이나 죄의식이 없는 마음이다.
내면에 억압되어 있는 분노의 감정이 엉뚱한 곳에서 비합리적으로 과격하게 표출되는 것은 격노이다. 격노는 작은 일에 크게 분노하고, 엉뚱한 곳에서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고, 한번 솟구친 화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다. 애도 불이행에서 비롯되는 분노는 스스로 증폭하여 끝내 공격성으로까지 표출될 수 있다.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려면 분노의 은유적 표현법을 찾아야 한다. 가장 좋은 분노 표현법은 글이나 언어로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다. 화난 마음을 애도 일지에 써 내려가거나 가까운 친구를 붙잡고 속 시원하게 수다를 떨면 된다. 치사하고 비겁한 엑스라고 맘껏 흉봐도 괜찮다. 땀이 날 때까지 달리기, 고독하고 긴 산행하기, 여럿이 어울려 운동하기, 소리 높여 노래하고 정신없이 춤추기. 그런 행위들도 내면의 위험한 열정을 위험하지 않게 표출하는 방법이다.
김형경 / ‘좋은 이별’중에서(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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