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송담(松潭) 2010. 3. 23. 16:00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외로움의 본질은 타자의 도움이 필요 없는 자기 안의 충만이다.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자기를 바라봄이다. 외로움Einsam 이라는 독일어는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외로움은 사람의 바다에서 무리에 종속되지 않고 저 스스로 자의식의 주체로 꿋꿋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누리는 감정이다. 분명한 것은 외로움의 한 본질은 매우 독립적인 기질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외로움은 모든 위대한 정신의 운명이다.’라고 말한다. 외로움은 ‘안식, 아름다움, 집중의 장소’다. 위대한 시나 그림, 음악과 같은 예술의 창조는 외로움에서 나온다. 외로움은 예술 창조를 낳는 정금(正金)의 시간이다. 아울러 모든 그리움은 외로움에서 배태된다.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순간 외로움은 감미로워진다.

 

 나는 자주 강가에 나가 강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본다. 강물은 그치지 않고 출렁이며 흘러간다. 나는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새들의 소리를 듣는다. 새들은 어느 하루도 쉬는 법 없이 지치지도 않고 노래한다. 나는 외로운가. 그렇다. 외로움은 내 존재가 불가피하게 품은 그늘이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나무 그늘 아래 호젓하게 앉아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노래하는 시인의 시를 읽는다. 시인은 쓴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람은 늘 자기 안에서 외로움이라는 체내 시계가 끊이지 않고 똑딱거리는 소리를 듣고 사는 존재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자기 스스로 고향이 되어 거기에서 안식을 취하라. 외로움에 실존의 뿌리를 내리고 정주하는 ‘있음의 고토(故土)’, 즉 이상향으로 가꾸라. 그때 외로움은 존재로부터 소외가 아니라 자기 안의 충만, 허무와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장석주 /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중에서

 

 

 

Early morning waves lap at a lonely part of Mexico's vast Pacific shore. © Gerry Soroka, 2009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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