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엄마를 부탁해

송담(松潭) 2009. 8. 29. 13:25

 

엄마를 부탁해


< 1 >


 그래도 니들이 자랄 때가 좋았어야. 머리에 수건을 고쳐쓸 틈조차 없었어도 니들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숟가락 부딪치며 밥먹고 있는 거 보믄 세상에 부러울 게 뭬 있냐 싶었재. 다들 소탈했어야. 호박된장 하나 끓어줘도 맛나게들 먹고, 어쩌다 비린것 좀 쪄주면 얼굴들이 환해져서는......

 

 다들 먹성이 좋아서 니들이 한꺼번에 막 자랄 때는 두렵기도 하더라. 학교 갔다오믄 먹으라고 감자를 한솥 삶아놓고 나갔다 오믄 어느 새 솥이 텅 비어 있곤 했으니까. 그야말로 광의 살독에서 쌀이 줄어드는 게 하루가 다르게 보일 때도 있었고 그 독이 빌 때도 있었어. 저녁밥 지을라고 양석 꺼내려고 광에 갔는디 쌀독 바닥에 바가지가 닿을 때면 아이구 내 새끼들 낼 아침밥은 어쩐디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던 시절이니 부엌일이 싫고 자시고 없었고나. 큰솥 가득 밥을 짓고 그 옆의 작은 솥 가득 국을 끓일 수 있음 그거 하느라 힘들단 생각보다는 이거 내 새끼들 입속으로 다 들어가겠구나 싶어 든든했지야. 니들은 지금 상상도 안될 것이다마는 그르케 양석이 떨어질까봐 노심초사하던 시절이 우리 시절이네. 다들 그러고 살았다. 먹고사는 일이 젤 중했어.



< 2 >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왈칵 두렵기도 해서 첨엔 고물고물한 네 손가락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어야. 그렇게나 작은 손을 어찌나 곡 쥐고 있던지, 하나하나 펴주면 방싯방싯 웃는 것이......

 

하두 작아 자꾸 만지면 없어질 것 같구. 내가 뭘 알았어야 말이지. 열일곱에 시집와 열아홉이 되도록 애가 안 들어서니 니 고모가 애도 못 낳을 모양이라 해쌓서 널 가진 걸 알았을 때 맨 첨에 든 생각이 이제 니 고모 한티 그 소리 안들어도 되네, 그게 젤 좋았다닌깐. 난중엔 나날이 니 손가락이 커지고 발가락이 커지는디 참 기뻤어야.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는 도 어쨌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니 종아리 굵어지는 거 보는 재미를 어디다 비교하겄니. 어서어서 자라라 내 새끼야, 매일 노래 불렀네. 그러다 언제 보니 이젠 니가 나보다 더 크더구나.



< 3 >


 엄마는 혼자서 풀비를 들어 마치 난을 치듯 쓱쓱 창호지에 풀칠한 뒤 말끔해진 문짝에 문종이를 척척 바르곤 했다. 엄마가 풀을 저으며 놀고 있는 여동생이 나 뭐 도와줄 거 없느냐고 묻는 그에게 단풍잎이나 따오너라, 주문했다. 감나무, 자두나무, 쭝나무, 대추나무 등등 나무께나 있는 집이었는데도 엄마는 그 집에서 없는 단풍나무 잎사귀를 주문했다. 엄마가 지목한 단풍잎을 따러 대문을 나서서 고모 집에까지 간 적이 있었다. 단풍잎을 따는 그에게 건 뭐 쓰려구? 묻던 고모가 니 에미가 시키디? 물었다. 어이구 니 에민 그게 무슨 낭만이라냐! 한 겨울에 단풍잎 붙은 문을 열라치면 더 썰렁하기만 허더마는 좀 그러지 말라고 해도 또 붙일 모양이구만!


 그가 양손에 단풍잎을 가득 따다 갖다주면 엄마는 수많은 문짝의 문고리 바로 옆마다 반듯하고 예쁜 것 두 장을 마주보게 편 뒤 그 위에 창호지를 덧발랐다. 문을 열 때마다 사람의 손이 타 찢어지지 말라고 창호지 한 장을 덧바르는 자리였다. 여름을 지내는 동안 문을 함부로 여닫느라 구멍이 숭숭 나거나 창호지가 찢어진 문을 두고는 명절을 맞이하기가 마뜩잖던 엄마에게 새 문종이를 바르는 일은 가을맞이이며 추석맞이였다. 여름 지나 선득하게 달라진 바람에 식구들이 감기 들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 발동해서였기도 했을 것이다. 그게 그 시절에 누린 엄마의 최대의 낭만이었나.



< 4 >


 아내의 손은 무엇이든 다 살려내는 기술을 가졌다. 원래 이 집은 짐승이 잘되지 않았다. 아내가 이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개를 얻었다 기르면 새끼 한번 받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쥐약을 먹고 똥통에 빠져죽기도 하고 무슨 까닭인지 구들 안쪽으로 기어들어간 것을 모르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가 누린내에 구들을 들어내고 죽은 개를 끌어낸 적도 있었다. 이 집은 개가 안된다고 당신의 누님이 일렀으나 아내는 다른 집에서 막 태어난 강아지 한 마리를 눈을 가린채 데려왔다. 아내는 개는 머리가 좋아서 데려올 적에 눈을 가리지 않으면 제 어미 곁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그리 데려온 강아지는 마루 밑에서 아내가 주는 밥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서 새끼를 다섯 배 여섯 배 낳았다. 마루 밑에 열여덟 마리의 강아지들이 우글거리며 산적도 있었다. 봄이면 암탉이 알을 품도록 해서 깨어난 병아리 서른 마리 마흔 마리 중에 솔개가 두어 마리 채갈 뿐 한 마리도 죽이는 법 없이 키워낸 것도 아내였다.

 

텃밭에 씨를 뿌리면 다 솎아먹기도 벅차게 푸른 새싹들이 아우성을 치며 올라오고 감자를 거두고 나면 당근을, 당근을 거두고 나면 고구마를 쉴새없이 심어 수확하는 것도 아내였다. 가지를 모종하면 여름이 지나 가을까지도 보라색 가지가 지천이었다. 아내의 손이 닿으면 무엇이든 풍성하게 자라났다. 아내는 땀에 전 수건을 머리에서 벗을 시간이 없었다. 밭의 풀은 돋는 동시에 아내의 손에 뽑혔고 밥상에서 물러나온 음식물 찌꺼기는 잘게잘게 바수어져 강아지들 밥통에 부어졌다. 개구릴 잡아 삶아 으깨어 닭모이를 주었고 거기서 나온 닭똥을 받아다가 텃밭에 묻는 일을 쉴새없이 반복했다. 아내의 손길이 스치는 곳은 곧 비옥해지고 무엇이든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를 맺었다. 오죽하면 늘 못마땅해하던 당신의 누님마저 아내를 불러 밭에 씨앗을 뿌리게 하고 고추 모종을 해달라 하였다.



< 5 >


진뫼라는 한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잃었으며, 빨치산과 토벌대의 낮밤이 뒤바뀌던 휴전 직후의 혼란기 열일곱의 나이에 십여리 떨어진 이웃마을로 시집갔던 ‘박소녀’라는 여인. 글을 배울 겨를이 없어 캄캄한 세상을 살았으나 박소녀 그녀는 누구보다 큰 품으로 남편과 자식들을 챙기고 한 해 여섯 번의 제사를 지내며 부엌을 지켰다. 집 마당은 늘 온갖 생명 가진 것들을 기르고 받아내는 그녀의 노동으로 환했다. 남편의 무심과 출분을 견뎌야 했고, 사산한 어린 생명과 시동생 균의 죽음을 가슴에 묻었다. 늘 자랑이고 기쁨이기만 했던 장남에 대한 미안함 역시 평생 그녀의 가슴을 눌렀다. 비단 장남에게만 그러했으랴만, 실종 후 간간이 전해진 목격담 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한결같았는데, 소처럼 큰 눈에 상처투성이 발등이 다 보이는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자식들이 솔가하고 난 노년의 허허로움 속에서 고아원 아이들을 돌보고, 고아원 갈 때면 그곳의 젊은 여인에게 소설가인 큰딸의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던 그녀. 그러니까 한반도 진뫼라는 산골에서 태어나 여사여사한 내력의 삶을 살아온 ‘너’의 엄마이자, 조선땅 어디에서나 만나는 우리의 엄마, 그리고 엄마라는 보편적 삶 그 자체. 어머니라는 자리. 여기에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신경숙 / ‘엄마를 부탁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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