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어머니의 정한(情恨)

송담(松潭) 2010. 1. 20. 11:55

 

 

 

어머니의 정한(情恨)

 

 

 오늘이 대한(大寒)이다. 금년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린다. 새해 벽두부터 서울엔 기상 관측이래 최대의 폭설이 내렸고, 눈이 귀한 대구에도 서설이 내렸다. 눈 내리는 달밤에 구랍 조수미 콘서트에서 열창하던 카이의 ‘월하연(月下緣)’이 들리는 듯하다. 원초적 그리움이다.

 

 ‘어머니’ 연작시를 쓴 김초혜 시인은 ‘어려운 세상, 복잡한 생활, 삶의 흔들림과 고통 앞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얼굴, 어머니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어머니의 땅’을 노래한 신달자 시인에게도 ‘금이 간 지구의 저 깊은 곳에서 땅을 받쳐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다. 필자 역시 ‘어머니’로 등단했으니 그 느낌이야 어찌 사뭇 다르랴.

 

 새해 눈 덮인 고향 선산에 부모님께 성묘를 하고 추억여행을 했다. 초등학교 교정과 누님 댁도 둘러보고 고향집에도 들렀다. 어머니께서 조석으로 길러다 주시던 샘물터와 푸성귀를 키워온 텃밭에선 한참을 더 서성거렸다. 어머니의 환영(幻影)이라도 되새김하고픈 간절함이었지만 이것으로야 어찌 어머니에 대한 궤적을 다 헤아릴 수가 있을까?

 

 중년이 되면서 회한처럼 다가오는 어머니의 정한(情恨)을 강릉 출신의 작가 이순원이 ‘예니세이강으로 가는 기차’에서 잘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눈 내리는 겨울 밤 대관령에서 고향 친구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듣는다. 고인은 그의 남편이 떠난 후 작가에게 여고시절 양양에서 원산까지 열차통학을 하며 만났던 2년 선배와의 애틋한 추억을 언뜻 전해 주셨다. 그 선배는 사범학교 졸업 후 바로 북한군에 징집되어 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된 사이다. 6.25사변이 나자 그 선배는 원산에서 양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고인에게 이렇게 마음을 전한다.

“나를 기다리겠니?”, “왜 물으세요?”, “내가 지금 양양 집에 들른 후 바로 원산으로 다시 돌아가 군대에 입대해야 하는데 너에게라도 돌아올 약속을 해놓고 가야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아서.......” 친구 어머니는 그 선배에게 대답하지 못한 후회를 유언으로 마무리하셨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여 양양 앞 바다에 훨훨 뿌려주라”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 곁에 묻지 말고 화장을 해서 다리 위에 뿌려 달라는 ‘매디슨카운티의 다리’의 프란체스카 존슨의 유언과 흡사하다. 마치 어머니의 유품 속에 감추어진 나흘간의 가슴 적시는 정한 말이다. 러시아 바이칼 아무르 철도로 ‘예니세이강’을 지나던 작가는 혹한 속에 언 몸을 녹이는 오리를 보며 가슴 따뜻한 사랑의 기적(汽笛)을 공명한다.

 

 마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감동적 여운이다. 최근 티베트 자치구 출신의 중국 작가 ‘아라이’이가 쓴 ‘소년은 자란다’에서는 아빠도 안계신데 엄마가 아이를 낳는다. 동네 아이들이 또 놀려댈게 두렵다. 예쁜 여동생을 낳은 엄마가 소년 ‘거라’에게 부탁한다. “거라야, 한 가지 만은 영원히 묻지 말아다오. 아기 아빠가 누구 인지를......” 엄마를 쏙 빼닮은 여동생을 바라보며 거라는 눈 내릴 때 주신 아름다운 동생을 위해 ‘쉐(雪)’라고 이름 짓는다. 원초적 그리움이다.

 

정순영 / 전남체신청 우정사업국장

(2010.1.20 대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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