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사랑은 그 어느 때에도

송담(松潭) 2015. 7. 2. 10:37

 

 

사랑은 그 어느 때에도



 신문을 뒤적이다 사진 한 장에 눈길이 멎었다. 어두운 방에서 중년 부부가 눈을 감은 채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 설명을 읽으며 가슴에서 ‘쿵’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사진은 55세의 남편이 지병으로 죽어가던 마지막 날 병실에서 찍은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매일 아침 이처럼 남편의 품에 안겼다고 한다. 죽음을 앞두고 서로 껴안은 모습에서 새삼스럽게 ‘부부가 무엇인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며칠 전 어느 결혼식에서 들은 혼인서약이 떠올랐다.


 젊은 부부는 6년 동안 연애를 했다는데 사랑과 기쁨, 젊음으로 충만한 모습이 무척 예뻤다. 두 사람이 혼인서약을 하는  순간, 늘 듣던 구절이 새롭게 들렸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그 어떤 때에도 사랑하고 존중하며.....” 결혼을 약속한 두 사람에게 이 서약은 어떤 의미일까?


 몇 년 전 우연히 본 영화가 생각난다. 30대 여성이 주인공인데, 몇 년간 동거하던 남자가 아파트를 다른 남자에게 넘기고 몰래 떠나 버린다. 큰 충격을 받은 여자는 아파트를 넘겨

 받은 남자와 옥신각신 다투다가 우여곡절 끝에 사랑이 싹터 새로 동거를 시작한다.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그가 4주간 출장을 다녀오려고 하자 여자는 못 견디게 두려워한다. 결국 남자가 출발 직전 출장을 포기하고 돌아오자 여자가 행복해 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4주간 출장도 못 견디는 여자의 모습에서 현대인의 사랑이 얼마나 약화되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 세상에는 죽는 순간까지 꼭 껴안아 주는 사랑과 4주간의 출장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랑이 있는 셈이다. 요즘 후자와 같은 허약한 사랑이 점점 더 많아져서 걱정이다. 재판 과정에서 보면 남편이 범죄로 구속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곧장 이혼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그 비율도 점점 늘어나는 듯하다. 어려움에 처한 배우자를 위해 피곤한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혼이 급증하는 근본 원인도 상대에게 헌신하고, 책임지겠다는 생각이 없는 데 있다. ‘기쁘고, 건강하고, 부유한 때’에만 사랑하고 어려움이나 의견 차이가 생기면 쉽게 헤어진다.


 이뿐 아니라 동거 커플도 많아졌다. 이들은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에 상대방을 탐색할 기회를 자유롭게 갖고, 평생을 서로 얽매이는 결혼은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각종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거 과정을 거쳐 결혼한 부부가 일반적인 결혼을 한 부부보다 이혼 확률이 더 높고, 동거 커플은 정식 결혼한 부부에 비해 행복도도 훨씬 떨어진다. 즉 동거하지 않고 결혼하는 것이 훨씬 더 잘 산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동거 커플이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에서 ‘책임’을 빼놓기 때문이다. 동거는 책임 대신에 ‘자유’를 중시한다. 이들은 자아를 추구하기 위해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임은 삶에서 피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결혼에서는 책임이 핵심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지만,

한편 ‘사랑하기 위하여’ 결혼하는 것이다.

연애 시절의 사랑은 감정이 제일 큰 요소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신혼의 달콤함은 사라지고, 생활의 어려움과 갈등이 생겨난다. 이때부터 진정한 사랑의 여정이 시작된다.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헌신과 배려이며 행동이다.

‘슬프고, 병들고, 가난해도’ 부부가 같이 경험하고,

돕고 나누면서 함께 성숙해 간다.

서로 헌신하며 삶의 모험을 하는, 이 과정에서 진짜 사랑이 생겨난다. 사랑하는 부부는 평생을 같이하며 차츰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고 자아 초월을 맛보는 도반(道伴)이 된다.

결혼은 사랑을 완성하는 가장 특별한 인간관계이고,

그 길을 이끄는 힘은 서로에 대한 책임과 헌신이다.


 빅터 프랭클은 “미국 동부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서부에 책임의 여신상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책임이 없는 사랑은 자기중심적 감정 체험에 불과하고, 서로의 삶에 진정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 책임을 기꺼이 지기로 결심하는 사람만이 진정 사랑할 자격이 있다.


윤재윤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좋은생각 2008.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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