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송담(松潭) 2007. 11. 24. 10:05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1976년)가 출간된 뒤로 지난 한 세대 동안 이 책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도킨스 자신도 책의 2판(1989년) 서문에서 “논쟁적인 책이라는 이 책의 명성은 해가 갈수록 커져 지금에 와서는 과격한 극단주의 작품으로 널리 간주된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주장이 보편적 이론일 수 있음을 확신한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 이론이 우주의 어떤 장소에 있는 생물에게도 적용되는 하나의 생명관이라고 주장한다. 도킨스 이론은 이렇게 확신에 찬 주장 때문에라도 동료 과학자들로부터 지독한 환원주의라고 비판받아왔다.


 도킨스의 입장이 이해되기보다는, 오해와 곡해의 대상이 된 것은 일정부분 그 자신의 수사법에도 기인한다. 그의 수사법이 모호해서가 아니라 너무도 단도직입적이고 명확해서라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생존기계다. 곧 우리는 로봇 운반자들이다.”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사람과 모든 동물들이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성공한 유전자에 기대되는 특질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이다.”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며, 바로 이 간단한 문장들이 그의 이론을 대변하는 것도 사실이다.


 도킨스가 주목하는 것은 유전자의 이해관계이다. 도킨스에게 “근본적으로 생물학적 현상을 유전자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되는 이유는 유전자가 자기 복제자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자기 복제의 방식으로 자신을 영속적으로 보존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전자는 이기적이다.


 도킨스는 자신의 목적이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생물학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마키아벨리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정치학을 탐구한다. 그는 정치사의 사례들을 들면서 “이로부터 거의 항상 유효한 일반원칙을 도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원칙은 “타인을 강하게 하는 자는 자멸을 좌초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타주의를 가장할 줄 알라”고까지 조언한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결코 타자를 도와주지 않는다. 도와주는 것처럼 보일 경우라도 그것은 겉보기의 이타주의일 뿐, 결국은 자기 이득을 위한 것이다. 정밀하게 조사해 보면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는 모양을 바꾼 이기주의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킨스가 유전자의 이기성을 주장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이기적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이기적 유전자의 막강한 영향력을 주장하면 할수록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삶에서 이타주의를 키워갈 필요성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주장을 양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생명체를 관찰함으로써 그가 도출해낸 인간적 교훈은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타주의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생물학적 본성 일부에 이타주의가 심어져 있다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계에는 순수하고 사욕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이 안주할 수 없지만 우리는 이타주의를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교육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세상의 현실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환원주의(reductionism)가 있다. 뭔가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경로는 종종 규모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복잡한 것에서 간단한 것으로, 그리고 표면적인 것에서 심층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이를 종합하여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탐구는 핵심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에서 좀 더 핵심적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 것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환원(reduce)적인 방법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이 세상의 원리를 물 또는 불 등으로 파악한 것도 이러한 방식을 따른 것이다. 좀 더 나가면 데모크리토스가 주장한 원자론은 우주의 원리를 이 세상 만물의 최소단위인 원자로 환원한 것이다. 그래서 원자(atom)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쪼갤 수 없는’이라는 뜻의 ‘아토모스’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원자라는 용어는 현대과학이 발전하면서 더는 최소 단위가 아닌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고대 유물론적 의미의 원자보다 더 작은 원소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같이 원자보다 더 작은 단위체를 소립자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최소단위로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 개념에 해당하는 것을 현대물리학에서 찾는다면 소립자 또는 초소립자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전자 이론은 원자론의 생물학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가 아닌 생명차원에서일 뿐, 역시 최소 단위로 존재의 근원에 도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 흥미로운 것은 유전자가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다루는 영혼의 개념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도킨스에 의하면 유전자의 입자적 성격이 갖는 측면은 그것이 노쇠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유전자는 자기방식 대로 자신의 ‘생존기계’인 생명체의 몸을 조절하여 몸이 노쇠하거나 죽음에 이르기 전에 죽을 운명에 있는 그들의 몸을 차례로 포기해버림으로써 세대를 거치며 몸에서 몸으로 옮겨간다. 유전자는 불멸의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유전자를 특별히 ‘불멸의 코일’이라고 부른다. 잘 알려져 있듯이 영혼불멸설에 의하면 영혼도 유사한 생명의 몸에서 몸으로 옮겨 다니며 영속적으로 존재한다. 이렇게 보면 유전자는 영혼의 생물학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 유전자, 영혼은 각각 물리학, 생물학, 형이상학의 핵심 단위이자 근원적인 개념이다. 인식론적으로 보면 이들은 만물의 원리를 환원해서 담지하고 있는 단위이다. 그러므로 환원적 탐구방식에서 이들은 각각 가장 기초적인 단위가 된다.


김용석 / ‘철학정원’중에서

 

리처드 도킨스

 

클린턴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1941.3.26 ~)는

케냐 태생의 영국인. 현재 옥스포대학교 교수이며, 생존하는 가장 저명한 생물학자중 한명이다.

행동생물학자(ethologist)로 동물들의 행동과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과의 관계가 주된 관심사인 그는 유전자가 진화에 있어서의 주 선택단위(unit of selection)이란 생각을 대중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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