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보이지 않는 손‘만 보이나

송담(松潭) 2007. 3. 25. 10:00
 

'보이지 않는 손‘만 보이나


 여성들은 왜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가? 공교육을 무너뜨릴 정도의 과도한 사교육 광풍은 왜 그칠 줄 모를까? 세계가 궁금해 한 한국의 출산율 급감과 자식들의 출세에 ‘올인’하는 사교육 열풍은 전혀 무관한 듯 보이지만 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아이를 낳기 싫어서가 아니라 출산과 육아를 감당할 수 없거나 중대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 보기 때문일 것이다.


 주위나 사회로부터 어떤 이해나 도움, 부담 공유의 전망도 기대할 수 없다면 어느 개인 또는 가족인들 그런 재난을 홀로 감수하려 하겠는가. 과도한 사교육은 그런 원자화된, 무정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거나 특권을 향유하기 위한 개인이나 가족의 피나는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한쪽은 아예 출산과 육아를 피하거나 포기해버리고, 또 한쪽은 출산과 육아에 지나칠 정도로 매달리며 모든 걸 쏟아 붓는다. 이 양극단의 이기주의는 뿌리가 같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설파했다.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빵 굽는 이가 자비롭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무한한 이기심이 경제성장에 기여해 결과적으로 인간 모두를 이롭게 만들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매사추세츠 주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세계여성경제학회 회장을 지낸 낸시 폴브레는 자신의 책

<보이지 않는 가슴(The Invisible Heart)>(또하나의문화 펴냄)에서 이렇게 반박한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 보자. 식탁을 차렸던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빵 굽는 이가 아니라 보통의 아내나 어머니들이다. 아내나 어머니들도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스미스가 이 생각을 떠올렸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이기심은 오직 시장이라는 비인격적인 세상에만 어울리는 개념이다. 그가 믿는 도덕 감정은 가족과 가정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 스미스는 타인에게 제공하는 어떤 서비스 노동이건 생산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토머스 맬서스도 스미스처럼 인간의 이기심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생각했으나, 그 유명한 인구론자답게 한술 더 떠 자비나 자선 등 공적인 상호부조가 주는 여유가 출산을 자극해 노동인구를 더 늘려 가난을 부채질할 것이니 돕는 게 악이라는 철저한 강자의 논리를 폈다.



가사노동도 사회 재생산의 토대


폴브레가 이기적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보통의 아내나 어머니들 행동은 식탁을 차리는 것 뿐만 아니라 빨래, 설거지, 기타 허드렛일과 아이 양육, 노인 수발 등의 ‘가사노동’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경제학 개념으로 말하면, 엄연한 사회적 재생산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노동임에도 국내총생산(GDP) 따위에는 거의 포함되지 않는 노동이다. 전통사회에서 주로 여성이 담당한 이런 노동은 “본능적이고 도덕적인 일, 자연적이고 신이 부여하는 소망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어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됐다. 한마디로 경제성장에 보탬이 되는 생산적인 노동과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됐다는 것인데, 실은 최근에 이르도록 그런 고정관념엔 큰 변화가 없었다.


 폴브레는 이런 류의 노동을 ‘돌봄’이라고 했고, 세상은 시장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만 있어선 안 되고 돌봄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슴(heart)’, 따뜻한 마음,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 제목도 거기서 나왔다.


 신자유주의가 만연하면서 더욱 그렇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 신봉자들은 그 과도한 시장·경쟁 중시 때문에 건강, 육아, 교육, 노인수발 등 사회안전망, 사회보장과 관련된 복지비용들을 성장을 방해하는 ‘비생산적’ 지출로 간주해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폴브레는 예컨대 인적 자본은 물을 주고 돌봐야 하는 과일나무 같은 것으로 육아와 교육을 통해 그 묘목을 튼튼히 해야 제대로 자라며, 그것을 평가할 때도 단지 시장에 내다 파는 과일만으로 재서는 안 되며 꽃, 그늘, 만들어내는 산소, 모여드는 새 등 쉽게 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들도 함께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관점에서 아이사회적 공공재라 할 수 있다. 제대로 양육하면 나중에 사회를 떠받치는 구성원이 됨으로써 모두가 이익을 얻게 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시장제일주의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돌봄노동을 보상하라


짧지 않은 코스의 국가대항 집단 달리기 대회가 열렸는데, 한 팀은 팀원 모두가 가능한 한 빨리 달려가도록 했고, 다른 한 팀은 빨리 달릴 수 있는 젊은이들을 먼저 보내고 나머지 여자, 아이, 노약자들을 뒤따르게 했으며, 또 한 팀은 모두 함께 가면서 빨리 갈 수 없는 사람들을 돌보며 가야했기 때문에 거북이처럼 느렸다. 폴브레는 당연히 세번째가 우승한다고 본다. 제대로 돌보는 쪽이 단기적으론 불리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유리해진다. 그러나 돌봄에도 전제가 있다. 거기엔 나름의 질서와 공평성이 있고 보상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착한 사람의 딜레마’처럼 구성원이 서로 신뢰하지 않고 자신만의 이익을 꾀하는 순간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도 손해보게 되고 공동체 자체가 풍비박산해버린다는 것, 이를 막으려면 신뢰뿐만 아니라 공정한 룰과 그렇게 해도 손해보지 않는다는 신념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절한 보상도 주어져야 한다. 그게 바로 공공, 공적인 영역이며 그것을 담당할 주체는 국가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시장의 역할을 긍정하지만 ‘보이지 않는 가슴’ 역시 필수적이며, 국가가 그것을 보장한다. 그래야 유례 드문 저출산과 사교육 광풍도 해소될 길이 열린다. 패미니즘적, 사민주의적 시각이다.


폴브레는 이 시장과 돌봄을 조화시킬 수 있는 5가지 방안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1. 여성이 가정에서나 사회 전반에서 남성보다 더 이타적이     라는 주장을 거부한다.

2. 이기심이 가족 가치를 잠식하지 않도록 보호한다.

3. 가정, 공동체, 국가, 세계 전체에 민주적 지배구조를 세우     는 일이 어렵다는 걸 직시한다.

4. 더 친절하고 지혜로운 형태의 경제발전을 목표로 세운다.

5. 돌봄 노동을 보상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강화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 2007. 3. 23 한겨레, 책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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