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연암 박지원의 우정론

송담(松潭) 2007. 3. 12. 15:47

 

연암 박지원의 우정론

 

 명말(明末) 양명좌파(陽明左派)의 기수였던 이탁오는

“스승이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친구이면서 스승이 될 수 없다면, 그 또한 친구가 아니다.”라며 배움과 우정의 일치를 설파한 중세 철학의 이단자다.

이처럼 시공간을 넘어 주류적 사상의 지형에서 탈주한 이들의 윤리적 무기는 언제나 우정이었다.

 

 연암 박지원의 우정론은 한결 넓고 깊다. 한 에세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벗이란 ‘제2의 나’다. 벗이 없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보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듣는 것을 함께 하며, ... 장차 누구와 더불어 지혜와 깨달음을 나눌 수 있겠는가? 아내는 잃어도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친구는 한 번 잃으면 결코 다시 구할 수 없는 법. 그것은 존재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절대적 비극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정의 성리학적 표상인 ‘천고(千古)의 옛날을 벗 삼는다’는 형이상학적 명제를 비웃는다.

즉 그가 말하는바

‘우도(友道)’란 초월적 원리에 종속된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생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자 ‘나’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변이되는 능력의 다른 이름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친구에 살고 친구에 죽는’ 이런 윤리는 연암만의 것이 아니다. 연암그룹에 속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런 실천적 우정론에 공명했다. 특히 이덕무의 다음 글은 동서고금을 관통하여 ‘친구’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아포리즘에 속한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知己)를 얻게 된다면

나는 마땅히 10년간 뽕나무를 심고,

1년간 누에를 쳐서 손수 오색실로 물을 들이리라.

열흘에 한 빛깔씩 물들인다면,

50일 만에 다섯 가지 빛깔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따뜻한 봄볕에 쬐어 말린 뒤,

여린 아내를 시켜 백 번 단련한 금침을 가지고서

내 친구의 얼굴을 수놓게 하여

귀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어

아마득히 높은 산과 양양히 흘러가는 강물,

그 사이에다 이를 펼쳐 놓고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있다가,

날이 뉘엿해지면 품에 안고서 돌아오리라.

 (「선귤당농소」)

 

 가슴 깊이 사무치지만 결코 ‘센티멘털’에 떨어지지 않는

이 오롯한 ‘친구 사랑’! 이덕무의 섬세한 필치와 감각이 한껏

발휘된 이 글에는 연암그룹의 윤리적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미숙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시공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