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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으로 본 가족의 의미
필자는 얼마 전 20대 초반의 청년을 재판한 적이 있다.
그 청년은 상습절도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누가 보아도 앳되고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측은한 생각이 들어 훈계를 몇 마디 했다.
그 나이에 벌써 상습절도죄로 처벌받게 되면 앞으로 남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가운 교도소에서 보내게 될 것이라는 충고와 함께.
그런데 왠지 귀담아 듣는 태도가 아니었다. 귀찮으니 빨리 재판 마치고 교도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조금이라도 적은 형을 선고받고자 하는 의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그 청년은 어릴 적 어머니가 병으로 사망한 뒤 아버지마저 가출해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학창시절 불량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남의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의 상습절도죄로 처벌받기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재판을 마치고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만약 이 청년이 어릴 적부터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성장해 왔다면 지금쯤 꽤 괜찮은 대학생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회에 걸쳐 남의 카드를 훔치고 사용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받는 20대 중반의 여자가 있었다. 본인의 수입보다 우선 사고 싶은 것을 사야 하는 버릇이 화근이었다. 결국, 많은 사채 빚에 시달려 범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부모의 탄원서가 계속해 접수됐다. 유난히 정성들여 쓴 편지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내용인즉, 자신들을 늙고 힘없는 70대의 노부부라고 소개하면서 늦은 나이에 딸 둘을 낳았는데 막내딸을 유난히 예뻐했다는 것이었다.
다소 씀씀이가 헤프다는 생각은 했지만 모든 게 사랑스러운 아이였으며,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것을 눈물로 참회한다는 이야기였다. 첫 재판에 모습을 드러낸 노부부는 재판 내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재판 결과 그 여자는 다행히 죄가 무겁지 않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재판이라는 창을 통해 많은 사람의 삶을 엿보게 된다. 대부분 삶이 고단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기본적인 요구가 충족되지 않아 삶을 포기한 채 방황하는 사람, 돈 때문에 친구와 직장동료를 속인 사람, 인생역전을 위해 한방을 노리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채 돈벌이에만 급급한 사람.
그 중에서도 특히 가족의 든든한 보호와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시기에 사회로 내몰려 범죄의 유혹에 빠져든 아이들, 사회에 복귀해도 자신의 고민과 아픔을 어루만져 줄 따뜻한 가족이 없는 사람들을 재판할 때면 마음이 더욱 무겁다.
대신해서 합의를 해 주거나, 걱정되어서 재판을 방청하러 올 가족들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절망감은 한없이 깊어만 가는 것이다.
재판을 받으면서 혹시 자신을 보러 온 가족들이 있나 방청석을 힐끔힐끔 확인하는 피고인들을 보면 연민의 정이 느껴지곤 한다.
“결손 가족은 가족의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부재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행복한 가정이야말로 사회악을 치유할 수 있는 묘약임을 재판의 현장에서도 확인하면서 내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한경환/광주지법 판사(2007.1.29 광주일보)
<2>
가족은 나의 힘!
“꼭 돌아올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지난해 말, 미국 오리건 주 남부의 산악 도로에 폭설로 꼬박 일주일을 갇혀 있던 제임스 김이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가족과 여행을 떠났다가 극한 상황에 빠진 그는 먹을 것과 기름이 떨어지자 구조 요청을 하러 나섰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부인과 두 딸이 구조된 지 이틀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비록 그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지만, 대원들은 그의 가족이 “이런 날씨에 숲 속에서 9일 동안 버틴 것은 놀라운 생존력”이라고 말했다.
이들 이야기는 160년 전 돈너 계곡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1846년 10월, 미국 서부 개척민 80여 명은 돈너 계곡에 갇힌 채 추위와 굶주림에 맞서 싸워야 했다. 젊은이를 비롯해서 여덟 살배기와 예순다섯의 노인까지 구성원은 다양했다. 6개월의 사투 끝에 과연 누가 살아남았을까? 놀랍게도 딸린 식구 없는 건장한 남자 보다 노약자가 많은 대가족의 생존율이 높았다. 노약자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목숨을 부지한 것은 기적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가족’. 가족과 함께 있는냐, 혼자 있느냐가 생존을 좌우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프랑크 쉬르마허는 말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족은 개인에게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가족’은 위급한 상황에서만 꺼내 쓰는 카드일까? 아니다. 당장 일상에서도 가족은 생로병사에 간여한다. 최근 대한의사협회에서 5대 가족의 장수 비결을 살펴본 결과, 규칙적인 생활 이외에 1,2세대의 존재 자체, 활발한 가족간의 교류나 모임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하바드 의대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은 식사 시간에 어휘를 가장 많이 배운다. 책을 읽는 것보다 무려 10배에 가까운 효과다. 그뿐인가. 콜롬비아대 연구 결과, 가족과 자주 저녁식사를 하는 아이가 그렇지 않는 아이보다 A학점을 받는 비율이 2배였으며, 음주나 흡연 등의 경험율은 낮았다. 이미 오래전에 인도에서 의료 봉사를 하던 폴 브랜드 박사는 가족에게 정성껏 간호를 받은 환자들이 진통제를 적게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법이나 규율로도 정해 놓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나를 응원해 주는 가족. 힘이 필요하거든, 쉼이 필요하거든 다시 그 품으로 돌아가자. 아니 이젠 내가 그 품을 만들자.
송도숙/월간 ‘좋은생각’기자
(‘좋은생각’ 2007.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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