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부부란

송담(松潭) 2007. 5. 15. 16:28

 

27041

 

 

부부란 시련 속에 피는 희망의 꽃말



`10월 29일 퇴사할 것.` 남자는 쪽지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그래 오늘은 내가 퇴사하는 날이지.` 자신이 퇴사해야 하는 것도 종이쪽지를 보고서야 기억해 내는 이 남자. 무슨 사연일까.


일본영화 `내일의 기억`은 어느 날 갑자기 불치의 병에 걸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한 광고회사 중견 간부의 이야기다.

주인공 사에키(와타나베 켄)는 힘들었지만 치열하게 살아온 덕분에 집도 마련했고 다 큰 딸의 결혼까지 앞두고 있다.

다른 누구에게 폐 한 번 끼치지 않고 살아온 이 남자에게 알츠하이머 진단이 내려진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살아온 인생인데. 게다가 60~70대 노인들이나 걸린다는 병이 40대인 자신에게 찾아왔으니 세상은 야속하게만 보였다.


퇴사를 해야 했고, 그것도 아내가 적어준 쪽지를 보고서야 다시 기억해 내는 처지가 됐다. 항상 가던 길도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약속시간 1, 2분을 앞두고 길을 몰라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방향을 물어야 한다. 영화는 한 남자에게 닥친 시련을 6년 동안 살펴본다. 해마다 변해가는 사에키의 상황은 악화일로다.


글로 써둔 지시판이 없으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 남자가 생을 온전히 유지해 가는 것은 오로지 그의 아내 에미코(히구치 가나코)에게 달렸다.

영화는 한 남자의 시련과 그 남자를 끝까지 보살펴주는

한 여자의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일본영화에 대해 쉽게 지닐 수 있는 편견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정의 과잉이라는, 결코 미덥지 못한 일부 일본 신파영화의 특성상 `내일의 기억` 역시 관람하기도 전에 비슷한 부류의 영화로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분명 다르다.

영화는 최대한 절제하면서도 관객이 도저히 주체하지 못할 만한 감정의 즙을 스멀스멀 배어낸다. 무엇보다 20~30대는 결코 빚어내지 못할 40대 부부의 진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세상에 버림받은 이들이 끝까지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자세는 초월의 경지를 보여준다.


아마모토 슈고로 상에 빛나는 오기와라 히로시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스토리 역시 탄탄하다.

기억을 잊는 슬픔보다 다시 내일을 만들어가는

희망을 갖게 하는 메시지 역시 은은하게 울려퍼진다.

기억은 잊지만 사랑은 영원히 담고 살아가는 삶이

눈부시도록 찬란하다.

 

서진우 기자/2007.5.15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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