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우리시대 좋은 아버지란?

송담(松潭) 2007. 9. 7. 12:52
 

 

우리시대 좋은 아버지란?


 정신이 흐릿해질 정도로 무더웠던 긴 여름이 언제 지나갔는지, 이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닫아야 한다. 바야흐로 독서의 계절 가을이 온 것이다. 요즘 인터넷상에 지식파일이나 동영상이 아무리 많아도 교육매체로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의 가치는 결코 흔들림이 없다. 자녀들을 훌륭한 지도자로 키우려면 족집게 고액과외로 명문대에 보내는 것보다, 평생 좋은 책을 가까이 하도록 습관을 들여주는 것이 지름길이다.


 다산 정약용은 정조 사후 역적으로 몰려 18년간 땅끝 강진에 유배를 가서도 수많은 책을 읽고는 500여 권이나 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펴냈다. 그는 당시 허례허식에 치우쳐 통치논리나 당파싸움에나 이용되던 경학(주자학)을 백성을 위한 실용적 경세학으로 다시 썼다. 더 나아가 당대 대부분의 국내외 역사서들을 탐독, 비교해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를 바로잡은 ‘아방강역고’를 편찬했다. 뿐만 아니라 거문고 타기를 좋아했던 그는 수천 년 동안 잘못 전달돼 내려온 음악체계인 율려를 바로 세워 ‘악서고존’ 12책을 완성하고, 자신의 어린 자식들을 빼앗아간 천연두에 대처하는 과학적 실용의학서적인 ‘마과회통’을 펴내 수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구했다. 특히 청나라를 통해 접한 서양의 실용적 과학이나 종교 등 서학을 우리 고유의 전통적 가치관과 잘 조화시켜 백성이 잘 살고 나라가 융성하도록 200년 전 조선의 지성사를 대대적으로 정리해 실학의 대가가 됐다.


뿐만 아니라 정약용은 아버지의 귀양으로 실의에 빠져 술로 지새던 둘째아들 학유에게 편지를 통해 사람이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은 물론, 어떤 책을 어떤 순서대로 읽고 문장을 어떤 방식으로 써나가야 할지까지 세세히 챙겼다. 학유는 지속적인 편지를 통한 아버지의 끈질긴 노력으로 술을 끊고 아버지가 평생 관심을 갖고 매달려왔던 주역 해설서 ‘주역심전(周易心箋)’을 정리해 완성하는 등 아버지의 학문활동을 도왔다. 아울러 그는 농가에서 매달 할 일과 풍속 등을 한글로 읊은 ‘농가월령가’를 펴내 체계적인 농사매뉴얼을 만들고, 우리 문학사에 큰 이정표를 남겼다.


 우리시대에 정말 좋은 아버지란 어떤 모습일까? 요즘 많은 아버지들이 직장에서의 생존경쟁 강도가 심해지면서 육아책임도 늘어가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그러나 그저 돈 많이 벌어 고액과외로 아이들을 일류대학에 보내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7월 세계 116개국 3000여 개의 기업들이 모인 유엔의 글로벌 콤팩트에서는 기업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기업들이 주체가 되어 ‘책 읽는 아름다운 아버지 운동’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이기영 /호서대 교수

(2007.9.7 조선일보)


 

 

 

 


    • 바람에 뒤집어진 건지 장난으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학생이 우산을 거꾸로 들고 있으니 마치 비를 피하려는 우산이라기보다 비를 모으려는 우산처럼 보입니다.
    • 지난 3일 용인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 류신우·경기 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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