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전해지는 것
고2짜리 아들 밥풀이가 갑자기 공사판에 일하러 간다나? 목에 수건을 턱 두르고 평소 내가 즐겨 입은 고무줄바지를 척 입고 있는 모양새가 말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구나 싶었다.
저 8시가 되어서야 얼굴이 온통 딸기처럼 새빨갛게 익어서 돌아온 밥풀이는 못에 발바닥이 찔려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놀란 남편은 단숨에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사오고 내일 병원 가서 파상풍 검사를 하란다.(아들 단속 못한 엄마를 은근히 원망하는 눈치임)
그러나 어쨌든 중요한 건 돈(?)이다. 배가 고파서 돌아가실 것 같다는
밥풀이의 엄살에 밥상부터 차려주고,
식구들이 식탁에 모여 앉아 이구동성으로 물어보는 말.
“일당은 얼마나 받았느냐?” 자랑스럽게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밥풀이. “거금 6만원.” 돈을 부채처럼 펼치기 무섭게 딸이 한마디 한다.
“우와, 오빠 대단하다! 나한테 빌린 돈 2만 4천원 당장 갚아!”
거기에 질세라 엄마도 한마디 거든다.
“원래, 첫 월급 타면 엄마 속옷 사주는 거래. 팬티라도 한 장 사주라.”
아빠도 빠질 수 없는 모양이다.“오늘 한턱 쏴!”
그러나 아들놈의 입에서는 기막힌 대답이 나온다. “안 돼요. 여자친구 만난 백일기념 반지 사려고 일한 거란 말예요.” 우리 모두 한방에 KO패를 당한 기분이었다. 하필이면 이때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났다.
“사랑은 전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부모님께 갚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지요.”
참으로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 아닙니까? 밥풀이 녀석만 봐도 신부님 말씀대로 사랑이 딴 데로 솔솔 새어나가고 있으니까요.
- <밥풀이와 눈비비고 이야기> / 장수산나, 맑은소리 -
“사랑은 전(傳)해 지는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서 정작 자기를 낳아주신 자기의 부모님께는 효성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사의 일이요,
자식에게는 마땅히 사랑만을 줄 뿐 자식으로부터 받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 또한 세상사 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우리는 “내리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최근에 “사랑은 전(傳)해 지는 것”이라는 새로운 문구를 접하고 나서 나는 또 하나의 인간사의 이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내리 사랑”이라는 표현은 다분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라는 생각입니다.
“내리 사랑”이라고 여기는 생각의 이면에는 금지옥엽 키운 자식으로부터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애석함과 체념이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소극적 개념으로 보여 집니다.
그러나 “사랑은 전(傳)해 지는 것”이라고 할 때는 상당한 긍정적 개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듬뿍 받은 사랑을 자기의 배우자나 자식에게 전달(傳達)하는 것이니
그 사랑의 원천은 부모로부터 솟아 흘러나온 사랑의 샘물일 것인즉
비록 자식으로부터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할지라도 서운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이렇듯 “전(傳)해 지는 사랑”은 “내리 사랑”에 비하여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하니 이 땅의 부모님들이여! 자녀들을 서운케 생각하지 마십시다.
더더욱 시집, 장가가서 손자를 두고 있는 자녀들에게는 더욱 그러 합니다.
이제 우리 “전(傳)해 지는 사랑”의 감상법에 몰두하면서
여생을 살아가는 것이 지혜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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