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낭만주의(Romanticism)

송담(松潭) 2007. 1. 11. 03:17
 

 

낭만주의(Romanticism)



 낭만주의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당시 유행하던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범유럽적 문예 및 사상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의 특성이기도 한 17세기 합리주의와 그것의 사회적 형식인 18세기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중세의 신(神)’이 앉았던 바로 그 전능한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오직 그것에 의해서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까지도 새롭게 조명하고 규제하기 시작했다.그리하여 드러난 것이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 ‘계몽된 사회’, 그리고 마치 시계(時計)와 같이 정해진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적 자연’이었다.

 

 낭만주의자들이 보기엔 이러한 인간관과 세계관은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답답할 정도로 편협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에 대한 반발로 비합리적 또는 비도덕적 인간과 비과학적 세계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낭만주의자들에게는 이성보다 감성,

사고보다는 의지, 과학보다 신화나 예술,

차가운 도덕보다 뜨거운 열정,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론적 세계보다는

수많은 신들과 요정들이 함께 살고 있어 그것들을 변화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유기적 세계가

더 진실하고 가치있다고 생각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솟아있는 ‘처녀의 집’, 곧 파르테논 신전의 서쪽 박공(지붕과 벽을 잇는 부분)에는 아폴론을 상징하는 뮤즈들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고, 반대편 동쪽 박공에는 디오니소스가 새겨져 있다.

 

아폴론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 이상적인 것,

즉 균형, 조화, 절제, 지식을 추구하고 다스리는 신이고,

디오니소스는 생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삶, 감상적인 것,

즉 도취, 무질서, 본능, 광란, 열정을 다스리는 신이다.


 니체(1844~1900)는 대립하는 두 신이 한 신전 안에 함께 존재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둘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는 올바로 설 수 없는 우리 내면의 이중성과 우리 삶의 양면성을 곧바로 말해 주고 있다고 했다.

이 둘은 언제나 함께 있지만 주기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 또는 어느 한쪽이 일어나면 다른 한쪽도 들고 일어날 수 있다는 연관성을 말해 준다. 18, 19세기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이 바로 그랬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가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추상적 개인’을 보았던 곳에서 욕망과 쾌락에 몰두하는 ‘구체적 개인’을 발견했다.

그럼으로써 자기실현이라는 개인주의적 가치를 찾아낼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20세기 전반을 휩쓸던 실존주의라는 후계자를 낳게 된 것이다.

 

낭만주의와 실존주의는 모두

인간이 진리도 신도 없는 공허한 세계에서 절망하여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려는 용기’를 표출하고 있다.

 

 

김용규/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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