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 은, 그 술의 철학과 삶
대통령이 술 한번 무지하게 마시고 다음 날 못 일어나 국정에 차질을 빚었다는 소식도 한번 듣고 싶다.
그렇게 인격의 경계를 넘어 너와 나는 똑 같은
한계를 지닌 인간임을 보여주는
여유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시인 고은은 1950년대 짧은 승려 시절을 작파하고
60년대 제주도에서 본격 주선(酒仙)의 세계로 접어든다. 그후 2~3일씩 잠도 안자고 마셨다.
저 멀리 온통 파란 수평선은 보이는데
가 닿을 수는 없고, 피안(彼岸)이 없다는
그 절망감으로 술을 마셨다.
마시면 행복하고 깨어날 때의 황폐함.
그 황폐함에 대한 자기 회한과 환멸,연민, 허무와
함께하기 위해 마시고 또 마셨다
술의 미덕은 무슨 고상한 분위기나 맛이 아니라
취함에 있다.
취함은 일상에서의 일탈이다.
일상의 지루함에 잔치를 불러들이는 게 취함이요,
고루하고 정지된 삶에서의 질주,
생명과 창조의 절정으로 아연 치닫게
하는 것이 취함이다.
술은 자기를 직시하며
남에게, 또 다른 세상에 다가가게 한다.
자신의 권위를 지켜가며 마시는 술,
그런 과시는 술이 아니다.
빨리 망가져버리자며 마시는 폭탄주도 술이 아니다.
고은 시인의 수천편의 시와 소설.평론.산문은
다 술로 쓰여졌다.
막힌 역사의 혁명,
고루한 삶의 절정,
너와 나 사이의 촉촉한 정분,
생명이 있는 도처의 황홀,
이 모든 것을 아울러 큰 봉오리를 이룬
고은 시인의 문학은 술이 준 축복이다.
이 경철 - 문화전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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