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양 수필

1976년 일기

송담(松潭) 2023. 6. 22. 18:10

1976년 일기

 

장기양

 

1976년 6월 1일

 

중학교 첫 입학식 때(1969년) 우리 마을(40여가구중)에서는 혼자 다니게 되었다.

 

새 가방 속에 새 교과서 새 노트 연필, 펜과 잉크 등을 넣고 도시락을 갖고 다니는데 김칫국이 흘러 가방을 열고 책이나 또 다른 어떤 것을 꺼낼라치면 가방 안은 김칫국 냄새로 가득하다. 잉크병도 방수가 안 되어 제대로 닫지 못해 잉크가 흐르고 또 가방 속은 늘 지저분하다.

 

학급도 60여 명씩이나 되어 초등학교 때 남15, 여10, 모두 25명이 공부할 때보다 몇 배가 많은 숫자이다. 머리는 빡빡머리로 인물도 못생기고 싸움도 못한 나는 다른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기도 하였다. 머리에 '기계독'이라는 버즘의 일종으로 피부색이 하얗게 변했고, 또 간지러워 머리를 긁으면 머리에서 하얀 게 떨어져 옆 친구들로부터 더욱 놀림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공부시간에는 열심히 공부하지만 수업이 끝나면 끝나기가 바쁘게 밖에 나가 논다.

 

교실도 본관 건물과는 조금 떨어진 세면바닥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수업시간에는 신발 신고 들어가니까 편하긴 편하다. 그러나 교실 안이 먼지투성이다. 언제나 1학년 1, 2반은 세멘 바닥에서 공부한다고 불평할 때가 있었다. 어느날 학교에서 돈 가져오라고 하여 아버지나 어머님께 얘기하면 '돈이 없으니 다음 장에나 준다고 해라'고 하여 나의 마음을 울렸다. 곡식을 팔아야 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1976년 6월 8일

 

학교 다니면서 숱한 고생도 많았다. 희망으로는 공무원이 되기를 바랐다. 이대로 공부하다가는 장래 내가 무엇이 되어 사회에 이바지할까? 생각하며 근심하기도 했다. 토요일이면 점심을 먹지 않고 하굣길에 산중턱쯤 자리를 잡아 숲속에 앉아서 먹는데 그 맛이야말로 어디에 비길 수 없었다. 담임선생님이 여러 번 바뀌기도 하였는데 임00선생님이 담임하셨을 때라 생각난다. 선생님은 일기를 쓰라고 권하셨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일기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일기노트를 검열을 하시는데 나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좀 더 잘 썼다며 '우'라는 점수를 주셨다. 그때 나는 일기 쓰고 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새벽에 잠이 깨자마자 세수하고 아침 먹고 가방 챙겨가지고 집을 나온다. 새벽이라 풀잎마다 맺어진 이슬방울을 발로 저으면서 가기 때문에 운동화 앞부분은 다 젖어버린다. 왜 이렇게 그때는 등굣길이 즐거웠는지 모른다. 피곤함을 잊은 채 학교에 도착하면 학생들이 그다지 있지 않다. 한참 있어야 학생들이 와르르 모인다. 급우들도 내가 어디서 다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급우 아니 중학생이라면 거의 다 나를 알고 있다. 교실 뒤쪽은 조금 음침하다. 그러기에 3학년들은 잘못하는 2학년들을 뒤로 끌고 가 작대기며 혁대 등으로 마구 후려갈겨 후배의 고집과 버릇을 고치려 한다. 그때 생각하는 것은 만약 내가 저렇게 맞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두려워하며 떨리기도 하다.

 

또 뒤에서 청소시간에 구슬치기나 또 다른 게임으로 즐겁게 보낸다. 비 오는 날이면 화순 읍내 삼천리 작은 누나 집에서 자고 학교 다니기도 했다. 작은 누님(육님)도 삼천리 막내 외숙집 작은방에서 살으셨는데 맛있는 반찬과 또 푸짐한 대접은 나를 더욱 사랑하시는 두 분의 성의에 감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때의 일이다. 매형이 편지 부치고 오라해서 어떻게 붙이냐니까 우표를 편지 겉봉에 붙여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면서 우표 붙일 자리에 글씨를 써주어서 내 생전에 처음으로 편지 붙이는 것을 알았고 또 어릴 적 동네에서 누가 읍내 가면 돈 10원과 편지를 맡겨 어떻게 편지를 붙이는 걸까 궁금해 했었는데 내가 직접 체험함으로서 알게 되었다.

 

 

< 2 >

 

어떤 하루

장기양

 

 

오늘도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더운 날씨였다. 또 계속되는 일과 중의 한 부분이었다. 샘터를 거의 다 읽고 난 뒤 마지막 부분에 김동길 교수의 '링컨의 일생이 소개되어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링컨에 대한 얘기는 알고 많이 들었지만 더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링컨'에 대한 좋은 책이 나오길 바랐던 나였다. 샘터사에서 권하는 책 중에서 가장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주저하지 않고 서점에 들러 '링컨의 일생을 구입했다. 바쁜 하루 중에서 언제 읽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시간이 나는 대로 읽으리라 다짐하며 집에 돌아왔다. 리어카의 짐을 풀어 가게에 정리하고 리어카는 길가에 세워놓았다. 방에 들어가기 전 손발을 씻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TV가 나의 시선을 끌게 만들었다.

 

TV를 앞에 두고 책을 읽을 수는 없었다. 분위기가 알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TV를 끌 수는 없었다. 온 가족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라야 몇 안 된다. 시골에서 아버님과 형님께서 농사를 짓고 계시고, 셋째형님과 어머님과 셋이 서울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형님이 약혼 하신 뒤 형수께서 오셔 네 식구가 되었다. 방은 두 개 나는 잠깐 누웠다. 몸이 피곤해서인지 깜빡 잠이 들었다. 나는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방은 아주 어둡다. 몇 시인지 모른다. 잠들기 전에 일기를 써야 하는데 쓰지 않고 잤기 때문에 이제 써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밝게 비춰줄 빛이 문제다. 나는 손전등을 켜고 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전기불도 있으나 차마 켤 수는 없었다. 전등불을 켜게 되면 곁에서 주무시는 어머님이 잠에서 깨어나 다시 자라고 할까봐 그런 것이다. 며칠전 나는 밤늦게 일기를 쓰고 있을 때도 어머님이 왜 잠을 안 자느냐며 어서 전동불을 끄라고 하시기에 전등불을 끄고서 어머님이 잠드시길 바랐다. 그리고 나서 조심스럽게 손전등을 켜고 일기를 쓴 적이 있다.

 

일기를 쓰고 나서 '링컨의 일생‘을 읽었다. 읽고 있는 도중 새벽 4시 교회 종소리가 조용한 밤을 깨뜨린다. 제1장을 다 읽었다. 링컨이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대강 알 수 있었고 그 다음 부분도 짐작이 갔다. 링컨이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교육만 받고서 백악관에 이르기까지의 그 길은 평탄치 않았으리라 생각하며 나는 오늘부터 존경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지금 나는 이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한다 해도 고도의 지식보다는 링컨의 부르짖음과 같이 일평생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순간순간의 쾌락보다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며 비관하거나 자포자기하는 일이 없이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야겠다고 '링컨의 일생‘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스무 살 때 쓴 일기인데 그때 1969년 13살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자화상이다.

 

 

 

장기양

 

AJ대원. 강남 파라곤 보안실 근무.

전검동 이사

서울시 시민기자

한국우편엽서회 총무이사

수락운수 (노원 8번 버스) 운영위원

대한적십자사 헌혈유공 명예장 수상(헌혈 150회)

 

출처 : 들풀문학 4집 다시 꽃이 피다 투혼의 여정(문학촌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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