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양 수필

이웃사랑, 나라사랑 실천하는 공무원 장기양씨

송담(松潭) 2021. 2. 1. 06:33

내가 알고 있는 지인 중에서 가장 열심히 살아온 사람. 한 마디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처럼 삶을 긍정하며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실현하려는 사람이 있다. 나같이 자신의 일신상 평온한 삶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사람. ‘장기양 선생’을 소개한다.

 

다음 글은 장기양 선생의 삶을 요약해 놓은 '월간 교통평화 2002.10월'에 실린 글 중 일부이다.

 

 

이웃사랑, 나라사랑 실천하는 공무원 장기양씨

 

 

 

 

만학도의 보람찬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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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출신인 그는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인해 고등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지만 26세에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그 이듬해에는 명지실업전문대 행정학과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방송통신대 국문학과로 편입했다.

 

늘 읽고 쓰는 것이 습관이었던 그는 대학에 만족하지 않고 글을 쓰겠다는 소망으로 본격적인 습작을 시작했다. 79년도에 이미 전우신문 장병문예 장려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그는 며칠 밤을 세워가며 자신의 성장기에 관한 수필을 써냈는데 그것이 정보와통신 수기문예작품 현상모집에 가작으로 당선되어 짭짤한 상금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경향신문, 동아일보, 신호등, 경찰신문 경찰청 등 각 언론사 및 기관에 독자투고를 자주 한다. 폭주족이나 교통문제 등의 문제에 대한 소견을 보낼 때도 있고, 살아가면서 그가 만나는, 선행을 베푸는 자들을 진솔하게 묘사해 세상에 내보내기도 한다.

 

만학도 장씨의 학구열은 일본어를 공부하는 모습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민원으로 설치된 신호등을 확인하느라 우체국 주변을 한 바퀴 돌기 위해 올라탄 그의 업무용 승합차는 시동이 걸림과 동시에 일어회화 테입이 작동되었다. 이제 옹알이를 시작한 수준이라며 겸손을 보인 그는 우체국 현관 주변을 맴돌고 방황하고 있는 일본인관광객을 발견하자 그들에게 다가가 자연스레 인사를 하며 말을 붙였다. 일본인이 답하자 그의 입에서는 유창한 일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문제를 해결한 일본인은 장씨와 화기애애한 웃음을 나누며 여담을 나누기까지 했다.

 

 

무명수필가의 작은 소망

 

“항상 깨어있으면 사고는 나지 않습니다. 밤 새워 노느라 피곤하면 졸음운전의 위험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 보면 교통사고의 원인은 늘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비장애인이 교통사고의 심각성에 둔감한 것은 교통사고를 남의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 수 있습니다. 늘 초보자처럼 안전운전에 신경 썼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을 지키며 건전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소망을 하나하나 성취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는 언제나 자신이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며 희망의 뿌리를 튼튼히 키워갈 것을 다짐하며 그의 인생관이 담긴 명심보감 경행록에 나오는 문장을 읊조렸다.

 

은의(恩義)를 광시(廣施)하라. 인생하처불상봉(人生何處不相逢)이니

수원(讐怨)을 막결(幕結)하라. 노봉협처(路逢狹處)면 난회피(難回避)니라.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어느 곳에 살든 서로 만나지 않으랴.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렵다.

 

사실 장기양씨를 인터뷰하면서 ‘참으로 보기 드문 사람, 특이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릴 적만 해도 장씨와 같은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알고 보면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조용히 한 몫을 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이 은근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장씨가 특이한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금껏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아등바등, 허접지겁,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겸허한 자세로 인생을 대하며 우리 자신을 한 번쯤 되돌아 봄은 어떨지.......

 

성상희 / 편집장 ( 월간 교통평화 2002.10)

 

 

< 참고자료>

 

1982년 6월 11일 서부서울우체국근무(현. 은평우체국).

1983년 5월 서대문우체국에 근무한 이래 근무하면서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고자 우편번호 홍보에 대하여 신문(동아일보 발언대 기고)에 우편번호에 대해 글을 쓰고 무료신문(벼룩시장, 교차로, 가로수, 번영로. 서울광장등에) 공익광고의 필요성을 역설 정보통신부의 광고가 전무하던 시절 공익광고를 개척하여 실효를 거두어 무료신문의 이미지제고는 물론 알기쉬운 우편상식을 전국민에게 홍보함.

 

1994년부터 헌혈봉사로 시작한 것이 140여회 이르고 각종 인터뷰 참여.

교통방송(1991년 도렴동)개국과 더불어 통신원활동으로 교통시설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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