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걷기

나에겐 이런 친구가 있다

송담(松潭) 2021. 11. 1. 11:39

나에겐 이런 친구가 있다

 

 

남파랑길 3차 출정을 마치고 순천만습지에서 아들과 함께 2021.10.29

 

 

내 친구 박형하는 70이 가까운 나이에도 프랑스와 스페인의 접경지 생장피드 데 포르데에서 산티아고까지 800km (33박34일)를 걸었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래킹(10박11일)을 했다. 국내에서는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부터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50구간 총 770km의 해파랑길을 마쳤고, 이어 부산 오륙도에서 전남 해남군 땅끝까지 1,463, 국내 최장거리 탐방로 남파랑길을 걷고 있다.

 

육체와 정신의 담금질을 반복하면서 ‘걷기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친구는 끝없이 걷고 또 걷는 고난의 여정을 통해 매순간 ‘위대한 의식의 순간’을 포착하면서 지루하고 무의미한 시지프스의 형벌을 극복하고 있다. 그는 멀고 먼 길을 끝없이 걷는다. 대장정의 길이다. 오롯이 자신과 만나는 시간, 그 성찰의 시간을 걷는 그는 고독한 구도자(求道者)의 모습과 흡사하다.

 

아들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그는 말했다.

 

산티아고는 인생이다산티아고의 매서운 폭풍우도광활한 대지도따가운 햇볕도, 땀도눈물도잠자리의 빈대도물집도통증도 노란 화살표이다.

나의 분신이 담금 당하는 고난의 산티아고 대장정에 뒤이은 안식의 보자기 속에는 정체성 회복과 뚜렷하게 드러난 인생의 노란 화살표들이 많이 담겨 있기를 빌어본다.” 

(2018. 4. 20)

 

또한 그가 히말리야를 걸으며 읊었던 시는 나에게 사자후(獅子吼)로 들렸다.

 

나는 지금 지구의 지붕 히말라야를 걷고 있다.

 

 이 길에서 나는 태평양 심해의 파도를 생각한다.

 그 파도의 울음은 깊지만 들리지 않는다.

 

 그 파도의 울음은 길고 끊임이 없다.

 그 파도의 울음은 태평양 심해의 비원을 내포하고 있다.

 

  그 파도의 비원을 숙명처럼 안고 이 길을 걷는다.”

(2018.10.4)

 

최근 친구 부자(父子)는 지난 10월 16일 경남 삼천포항을 출발하여 14일을 걸어 10월29일 순천만 습지에 도착했다. 내가 사는 순천(역)에서 서울(역)까지는 328.3km인데 그들은 380km걸었다니 순천에서 평양까지는 걸었다고 봐야 한다. 놀랍고 놀라운 일이다.

 

먼 옛날 박지원이 망망한 만주, 통곡의 장(場)을 거쳐 열하의 온갖 풍물을 접했듯이 두 부자(父子)도 종일 고단한 몸을 이끌고 험난한 바닷가 산길과 망망한 남해의 푸르고 시린 물결을 접하며 인간들이 구축해 놓은 갖가지 흔적들로부터 수많은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들의 머리와 가슴에 차곡차곡 쌓인 기억의 조각들은 어느 날 뮤즈의 아름다운 형상이 되어 환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튼튼한 다리를 가진 두 부자(父子)에게 축원의 글을 올린다.

 

점점이 떠있는 해금강이 아름다워라.

섬과 섬 사이를 오갈 수 있는 것은

연락선이 아닌 오직 사랑.

 

아버지의 섬과 아들의 섬에

이어진 튼튼한 사랑의 다리.

 

그리하여 그들은

힘차게 나아가고 한껏 웃을 것이다.

 

(2021. 11월의 첫날에)

 

순천만정원에서 2021.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