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여행가방
설 연휴 동안 받아만 놓고 미처 읽지 못한 문예지를 뒤적이다가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mier의 산문 중에서 매우 이색적인 경매 이야기를 보고 혼자서 웃은 일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온갖 것을 다 경매에 부쳐서 잊혀진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하고 엉뚱한 사람이 이익을 보는가 하면 이미 죽은 사람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기도 한다. 고인이 된 지 오래인 왕년의 스타의 연애편지나 착용하던 신발, 속옷 등속이 고가로 팔렸다는 해외 토픽을 접하면 그걸 그렇게 비싸게 사서 어디다 쓰려는 걸까 공연한 걱정이 되기도 하고, 생전에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면이 드러난 편지가 공개되는 걸 보면 세속의 호기심은 저승길까지 마다않고 쫓아다니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투르니에가 쓴 경매는 그런 큰 이익이나 세인의 호기심을 겨냥한 게 아니라 지극히 사소하고 유쾌한, 서민적인 축제 같은 경매에 대해서이다. 매년 1월이면 독일의 루프트한자항공사Deutsche Lufthansa AG 에서 여행객들이 분실하고 찾아가지 않은 여행가방을 공개적으로 경매에 부친다고 한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는 게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굉장한 귀중품이 들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행을 해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본인이나 항공사의 실수로 가방이 그 주인과 동시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해도, 가방에 붙어 있는 작은 단서나 분실인의 신고만 가지고도 단시일 안에 주인을 찾아가게 돼 있다. 주인을 찾을 수 없는 가방은 그런 작은 단서도 없을뿐더러 잃어버린 주인의 애착과 성의까지 없다는 증거니까 귀중품이 들어 있으리라는 기대는 안 해도 된다. 그러나 마약이나 무기 혹은 시체 같은 게 들어있을 가능성은 주인 있는 가방보다 높다고도 볼 수 있다. 하여 경매하기 전에 경찰이 미리 개봉하고 그런 위험물이 들어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다음 다시 밀봉을 한 후 무게만을 공개하고 경매에 부친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자기 앞으로 낙찰이 되면 가방은 즉시 관중들 앞에서 개봉되어 그 내용물이 만천하에 공개된다. 낙찰자나 구경꾼이나 같이 낄낄대며 즐거워하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숨은 욕망은 국적이나 개인의 인격 차에 상관없이 공통된 것인가 보다.
그러나 내가 그 글을 주의 깊게 읽고 이리저리 생각의 가지치기를 하게 된 것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다. 나도 여행가방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내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한 해였으니까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이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 문인을 10여 명씩 일행으로 묶어서 공짜로 해외여행을 시켜준 적이 있다. 2주일 정도의 비교적 긴 여행이었고, 유럽의 몇 나라를 돌고 귀국길에는 인도를 거쳐서 오게 돼 있었다. 처음 나가본 해외여행인 데다가 인도가 마지막으로 들른 나라였기 때문에 그동안 짐이 배로 불어나 허름한 보조가방을 둘이나 새로 사야 했다. 그중에서 가장 크고 튼튼한 것은 역시 집 떠나 있는 동안 갈아입을 옷이랑 내복 등속을 넣어간 큰 여행가방이었다. 보조가방 한 개와 내짐 중에서 메인이라고 볼 수 있는 그 큰 가방을 인도 뉴델리 공항에서 다른 문인들의 짐과 함께 단체로 부쳤는데 김포공항에 내리니 내 큰 가방 하나만 빠져 있었다. 단체로 짐을 부칠 때 무게 문제로 그쪽 공항에서 트집 잡는 소리를 듣긴 했어도 곧 해결됐고, 내 짐의 무게가 초과한 것이 아니라 단체로 초과할 뻔한 거였으니 내 짐만 빠진 게 납득이 안 됐다. 설사 초과했다고 해도 초과분에 운임을 더 먹이면 될 것이지 짐 하나를 빼앗는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신고를 받은 우리나라 공항당국에서 그런 일은 없다고, 곧 돌아올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 잃어버린 내 여행가방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타고 온 비행기는 타이 항공이었다. 석 달인가 지난 후 타이 항공으로부터 200달러 정도의 보상금을 받았다. 짐 한 개당 무게를 20킬로그램으로 치고 1킬로그램당 10달러씩 계산한 거였다. 항공사 약관을 보니 적법한 거였다. 물론 그 석 달 동안 여러 번 공항에 드나들어야 했다. 내가 신고한 베이지색 가방과 치수가 비슷한 가방만 생기면 공항에서 확인하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주인 잃은 가방의 보관창고 구경만 실컷 하고 내 가방은 찾지
못했다.
다행히 선물이 든 가방 두 개는 무사해서 처음 외국나간 엄마를 기다린 가족들을 크게 실망시키지는 않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잃어버린 큰 가방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다. 다양한 기후의 나라를 여행해야 했기 때문에 갈아입을 겉옷뿐 아니라 내복을 많이 준비해 가지고 다니면서 한 번도 빨래를 하지 않았다. 만일 누가 그 가방을 연다면 더러운 속옷과 양말이 꾸역꾸역, 마치 죽은 짐승의 내장처럼 냄새를 풍기며 쏟아져 나올 것이다. 루프트한자 항공이 아니었으니 경매에 부쳐 개봉하지는 않았겠지만 만일 겉모양만 보고 꽤 괜찮은 게 든 줄 알고 슬쩍 빼돌린 속 검은 사람이 개봉을 했다고 해도 창피하긴 마찬가지였다. 속 검은 사람 앞에서 일수록 반듯한 내용물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안에는 때 묻은 속옷 말고 더 창피한 것도 들어 있었다. 파리에 들렸을 때에 슈퍼에서 봉지에 든 인스턴트커피를 잔뜩 사서는 옷 사이사이에 끼워 넣은 것이다. 그때만 해도 국내에선 커피가 비싼 귀물이었다. 외국 갔다 오는 사람이 커피 한 봉지만 선물로 주어도 고맙고 반갑고 그랬기 때문에 나도 친지들에게 그걸 선물할 작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궁상맞은 선물인가. 나의 그 큰 여행가방 안에는 1980년대 내 나라의 궁핍과 나의 나태가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내 여행가방을 연 속 검은 사람의 기대와 호기심은 단박 실망과 경멸로 변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우연히 가방을 주웠든 혹은 정말로 속이 검었든 간에 내 가방을 열어보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경멸했을 생각을 하며 오랫동안 심한 수치감으로 괴로워했다. 그 후에도 여행을 떠날 때 절대로 양말이나 속옷을 많이 가져가지 않고 그날그날 빨아서 입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음력 설까지 쇠었으니 이제 확실하게 한 살을 더 먹었다. 이 나이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니 장수의 복은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다. 재물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내가 쓰고 살던 집과 가재도구를 고스란히 두고 떠날 생각을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의 최후의 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가방이 아닐까. 내가 끼고 살던 물건들은 남 보기에는 하찮은 것들이다. 구식의 낡은 생활필수품 아니면 왜 이런 것들을 끼고 살았는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 어린 물건들이다. 나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 곤란한 짐만 될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한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일생 끌고 온 이 남루한 여행가방을 열 분이 주님이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서는 허세를 부릴 필요도 없고 눈가림도 안 통할 테니 도리어 걱정이 안 된다. 걱정이란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궁리할 때 생기는 법이다. 이게 저의 전부입니다. 나를 숨겨준 여행가방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나의 전체를 온전히 드러낼 때, 그분은 혹시 이렇게 나를 위로해주시지 않을까. 오냐, 그래도 잘 살아냈다. 이제 편히 쉬거라.
박완서 에세이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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