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2차 트래킹을 마치고
박형하
가라산 정상석에서 아들
가라산은 up & down이 많고 너덜지대
22코스와 23코스를 합하여 22km이나 거제코스에서 가장 힘든 구간
남파랑길 2차 트래킹을 마쳤다. 5월 25일 집을 떠나 6월 7일 돌와 왔다. 출발은 15코스 시작점 충무도서관에서 35코스 종점 사천시 삼천포대교의 대방사거리에 도착했다. 트랭글앱에 기록된 거리는 총330km이었다.
수많은 트래킹을 해오면서 나는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나는 왜 트래킹을 하는가? 지금도 해답을 못 찾았다. 그래도 트래킹은 계속될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거제에 도착하니 버스기사들이 파업을 했다. 코스 이외의 이동은 택시를 이용했다. 만난 택시기사 중에 ‘돈 들여 고생을 사서 하는 분이시군요’라고 말을 하신 분이 계셨다.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돈과 시간을 들여 왜 이 길을 걸을까?’ 망각했던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된다.
내가 사는 수원에는 광교산(光敎山)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수원을 지나다가 산에서 나오는 빛을 보고 광악산을 광교산으로 개명하였다 한다. 나는 광교산을 오를 때면 정상석에 써있는 광교산(光敎山)에서 빛나는 가르침이 있는 산인데 그 가르침은 무얼까? 궁금했다. 산신령이 나타나 가르쳐줄 리가 없다. 내가 정하는 수밖에 없다. 「참고 견디고 기다리자」 라고 스스로 정했다. 산에 올 때마다 스스로 정한 가르침을 되뇌이고 지키자고 다짐했다. 다행히 기다림에 대한 응답이 왔다. 그 이후 나는 빛나는 가르침을 「낮추고 베풀고 용서하자」 라고 변화를 주었다.
정년 이후의 생활은 단순하지만 머리는 복잡하다. 그 패턴은 반복적이고 루틴화다. 루틴화된 삶의 시간이 지속되면서 생이 퇴색되고 삶이 회의(懷疑)에 젖어든다. 그러나 이들은 내가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삶의 무게와도 별개였고 철길 같은 궤를 갖고 있다. 물 위의 기름처럼 각자 독립적이고 따로 놀고 소통이 없다. 그리하여 가끔은 삶의 자세에 변화가 필요하게 된다.
내가 찾는 변화가 남파랑길이다. 부산에서 해남 방향의 리본은 빨간색 화살표이고 해남에서 부산 방향은 파란색이다. 화살표와 표지기만 보고 가는 길은 생경하여 집중력이 고도화된다. 그 길은 단순하던 삶이 의욕과 추적에 불타는 삶으로 변화를 준다. 생의 의미도 삶의 무게도 없다. 오직 화살표와 표지기를 찾아 걷는 자신만이 존재한다. 독수리가 지상의 먹이를 찾아 날으는 기분일 것이다. 이 얼마나 가벼운 삶이고 활기찬 생이지 않는가!
남파랑길 2차 트래킹은 혼자가 아닌 아들과 함께 했다. 아들과 함께 걸었던 트래킹은 경험은 스페인의 산타아고 순례길(39일)과 뉴질랜드 트래킹(11일)에 이어 세 번째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정년 이후 삶이 인생의 롤 모델인 듯 광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 중에서 아들의 비중이 가장 크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이다.
가라산(585m. 거제에서 가장 높은 산) 오르는 전망대에서
거제도의 남파랑길은 13개 코스로 176km이다. 코스가 해안과 산을 넘나든다. 이런 코스 설계는 트래커의 안전을 고려한 거제시의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당일치기 트래커들에게는 배려이지만 나처럼 한 번에 주파하는 트래커에게는 식수 · 식사 · 숙소가 연계되지 않아 식수와 대용식을 지고 하루에 32km도 강행군해야 하는 힘든 코스 설계였다. 걷는 중에 뒤에 오는 아들이 아버지가 너무 천천히 걷는다고 짜증을 낸다. 백두대간도 완주하신 분이 이렇게 느리냐며 스피드를 내라고 독촉한다. 나의 평지 걷는 속도는 트랭글앱으로 확인하니 시속 4.9km였다. 스피드를 올리려 하니 발바닥에서 신호가 온다. 물집 생성이라는 시그널이다. 아들을 따르자니 발바닥이 울고 발바닥을 따르자니 아들이 짜증낸다. 아버지의 나이듬을 이해 못하는 미욱한 아들이 안쓰럽기도 한다. 그러나 트래킹일지라도 아들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다.
내가 아들과 소통이 힘든 부분은 숙소 선정이었다. 아버지는 하룻밤이니 조식과 중식을 준비할 수 있는 위치의 숙소가 우선순위이다. 아들은 신축 건물로 트윈룸에 수압이 센 샤워 시설과 핸폰의 충전이 용이함을 우선순위에 놓는다. 농경사회에서 성장한 아버지와 산업정보사회에서 성장한 아들의 극명한 사고틀의 차이였다. 숙소 협상에서도 아버지를 모시고 남파랑길을 걷는 사람인데 방이 있느냐라고 물으라는데도 아들은 트윈룸이 있느냐 먼저 묻고 아버지를 모시고 남파랑길을 걷는다고 한다. 나의 경험으로 질문의 순서에서 숙박비의 차이가 난다는데도 무시한다. 절약보다 쾌적을 우선하는 성장 환경과 경험지의 차이를 보았다.
통영의 모텔촌 죽림동에서 전날 일몰로 29코스를 중단한 평림체육관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택시비 7,600원이었다. 기사분도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지리산을 비롯한 많은 산을 다닌 경험이 있다고 한다. 헤어져 한참을 걸어오는데 그 택시가 다시 돌아온다. 기사분이 내려 다가온다. 30코스의 제석봉과 발암산은 식수 구입할 곳이 없다며 시원한 포카리스웨트 두 병을 내민다. 따뜻한 마음이 남해바다처럼 크게 밀려온다. 감동은 금액이 아닌 마음과 정성이라는 이치를 다시 깨닫는다. 고마운 기사분의 무사고와 행복을 빈다.
내가 걸은 트래킹의 배경은 관동별곡을 지은 정철처럼 천석고황(泉石膏肓 : 자연을 너무 사랑하여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 아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글을 쓴 순간 나는 이미 깊은 천석고황이 빠졌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남파랑길을 걸으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활기차니 이것이 천석고황이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둔덕기성에서 보이는 거제의 섬들과 통영의 산
남파랑길 2차 트래킹 코스의 오르내림도 생의 부침이나 굴곡과 같다. 땀 흘리며 비탈을 오른 시간에 비해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의 즐거운 시간은 극히 짧다. 돌아보면 삶에서 만족과 성취의 시간은 잠깐이었고 어렵고 힘든 과정의 시간은 길었다. 이것이 삶의 진면목이고 남파랑길의 선물이었다. 트래킹의 효과는 오래지 않아 사라지고 머리는 복잡하고 생활은 단순한 일상으로 환원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매주 광교산에 오르고 정상석(光敎山)에서 「낮추고 베풀고 용서하자」를 다짐하는 행사는 계속할 것이다, 이런 행사마저도 루틴화에 이르면 나에게는 삶을 가볍고 활기차게 할 수 있는 남파랑길이 남아있지 않은가.
제30코스 : 무전동해변공원에서 원산리바다휴게소 : 16.3km
제석봉에서 보이는 통영의 섬들. 고요와 평화 그 자체이다.
거제섬 속의 산군들,
망망한 남해바다,
잔잔한 파도에 반짝거리는 햇빛,
몽돌해변에 가늘게 부서지는 포말에 탄성을 나올 때는 소통의 완전체 였습니다.
그외 시간은 삐걱거리거나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조금씩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귀한 시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 보람이었습니다.
가끔 소통이 막힐 때는 친구의 생각이 났습니다.
부자간에도 못할 이야기를 친구와는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노년의 친구는 보배라는 말을 절감하였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오자 남파랑길은 꿈처럼 아득하고 현실의 중압감은 그대로입니다.
이러한 반복이 인생인가 봅니다.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건강하시길 빕니다.^^
제35코스 : 삼천포대교사거리에서 대방교차로 : 12.7km
각산에 오르면서 보는 삼천포대교와 케이블카와 남해군 창선면의 조망
< 글을 읽고 >
아들과 함께한 대장정의 시간들, 저로선 참 부럽습니다.
우선 두 부자의 다리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만주벌판에서 수많은 고초를 겪고도 살아남은 독립군처럼 튼튼한 다리를 갖었습니다. 다음으로 긴 인고의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고 어려운 세상을 딛고 일어서는 에너지 저장고가 되었습니다.
미국 하바드대 교수를 지낸 롤펠로우의 인생찬가(A Psalm of Life)에서 처럼 아들은 “말 못하고 쫓기는 짐승이 아니라 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될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영웅이란 꼭 출세를 하거나 거부(巨富)가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생의 영웅’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세대 간 격차로 아버지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지만 언제가 우리가 떠난 후에 아들은 아버지를 깊이 이해가고, 감사하고, 그리워 할 것입니다.
친구가 광교산(光敎山)을 오르며 ‘참고 견디고 기다리자’에서 ‘낮추고 베풀고 용서하자’로 결론내린 것은 전자는 ‘훈련과 단련’이었고 후자는 ‘깨달음’이라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스페인 산타아고 순례길, 뉴질랜드 트래킹, 해파랑길, 남파랑길 등 친구의 끝없는 도전과 용기는 친구의 인생을 오롯이 ‘의미’로 채우고, 남은 여생도 깃털처럼 가볍게 걷게 할 것입니다. 훌륭합니다.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나의 친구 박형하!
아들 박지호! 부럽고 자랑스럽습니다.
(202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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