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걷기

폐허의 미학, 리즈 커크스톨수도원

송담(松潭) 2021. 11. 7. 06:21

폐허의 미학, 리즈 커크스톨수도원

 

 

사진출처 : 컨슈머타임스 

 

가을 벌판의 낡은 수도원은 황량한 시간의 역사 속에 그대로 갇혀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아주 가끔 날아오르는 까마귀 몇 마리만이 오랜 적막을 휘젓고 지나갔다. 런던으로 떠나는 기차는 서쪽에서 다가왔다가 동쪽으로 이내 멀어져 갔다. 자그마한 강물이 흐르고 반복되는 계절에 나이테만 두꺼워진 나무들은 쉬지 않고 마른 잎들을 지상으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나 건물의 사체가 먼지를 머금고 아직 직립해 있을 때 나는 항상 깊은 수심 속으로 내려가는 죽음을 상상한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사색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형해화된 자취로 남아 쓸쓸했다. 모든 폐허는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전에 그곳은 집이거나 수도원이거나 인간의 냄새로 가득한 영역이었을 테니까. 영국의 북부 요크와 맨체스터를 사이에 두고 트라이앵글을 이루는 도시 리즈는 낡은 수도원을 끌어안고 석양을 맞이하고 있었다.

 

결혼과 이혼으로 얼룩진 사생활의 주인공 헨리8세(튜더왕가의 강력한 군주)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가톨릭 수도원들을 모두 폐쇄했다. 시시콜콜 전통과 규범을 간섭하는 교황청의 끄나풀들이 눈엣가시였다. 여섯 번의 결혼으로 유명한 그는 엄격한 중세교회의 율령들에 숨이 막혔다. 문을 닫은 수도원 대신 만들어진 성공회는 오늘날까지 영국의 정교회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곳의 커크스톨 애비 수도원은 한때 수백 명의 수사들이 경건한 신앙의 깊이에 빠져들었던 성소다. 리즈가 도시로 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곳이다. 수도사들은 하루 8번 예배를 드리고 남는 시간은 명상하거나 서적을 읽으면서 신의 진리에 다가서고자 몸부림쳤다. 기도하는 이들의 생은 잔혹하리만큼 엄격했다. 인간의 본능을 헌납한 채 신의 영역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삶이었다. 평신도들은 수도원 앞으로 펼쳐지는 들판에서 농사를 짓거나 양 떼를 돌보며 중세를 살았다. 지금은 마른 잎이 뒹굴고 새의 깃털만이 바람에 날리는 폐허지만 이 수도원은 고대에 세워진 유럽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스칸디나비아의 무자비한 바이킹 침략으로 성지는 무너지고 말았다. 오랜 세월 후 윌리엄 피시의 재건으로 빛을 보았지만 헨리 8세의 도그마에 무릎을 꿇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남자 수도원은 그렇게 역사의 그림자만이 남게 되었다. 마른 잎이 지듯이 까닭 없이 숱하게 떠나버린 목숨들과 엷은 썰매 소리 같은 회한을 반추하며 석양의 끝자락까지 하염없이 수도원 들판을 바라보았다.

 

1300년을 버텨온 돌기둥들은 파르테논의 열주처럼 서 있지만 이끼에 견디다 못해 검은색으로 변해버렸다. 폐허의 황량함, 그 쓸쓸함의 언어들 사이로 불어오는 수도원의 바람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무너져 내리고 반쯤 남은 수도원 벽 사이로 푸른 바다가 보였다. 언덕으로 올라서 보니 해변 마을이 아늑했다. 붉은 지붕과 흰 벽들로 채워진 건물들이 방파제를 사이에 두고 평행으로 배치되어 바다와 하늘의 원색을 받아내고 있었다. 고대와 중세를 가르는 역사유산, 요크셔의 커크스톨 대수도원은 추억 - 폐허 - 망각 - 역사의 윤회를 밟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자 돌기둥들은 성당의 오르간처럼 각기 다른 소리를 내면서 진동했다. 이 고장 출신의 화가 윌리엄 터너나 조각가 헨리 무어는 가끔 커크스톨을 산책하며 창작의 에너지를 얻어가곤 했다. 바람 불고 비가 내리는 음산한 날에는 괴이한 광기가 퍼져 오를 것 같아 으스스한 느낌이다. 이곳이 영국의 극작가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의 모델이 되있던 이유를 알 만하다. 하지만 모든 폐허는 의미 있고 위대하다. 한때 엄청난 역사를 만든 현장이었으니까.

 

리즈에 머물면서 나는 이곳을 몇 번이나 서성거렸다. 인생에서 지나가버린 과거는 언제나 변치 않는 아름다움이다. 수도원 앞쪽의 육중한 떡갈나무 산책로가 발길을 붙잡는다. 폐허의 내부공간에 남아있는 돌멩이들은 한때 이곳이 분주한 일상의 성터였음을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가고 오는 시간과 근원의 목마름만이 가득했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무너진 채, 모두가 떠났다. 그런 기분으로 폐허의 본채를 돌아 걸었다. 현실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신화처럼 낡아 폐허가 되고야 만다. 숙명이다. 붉게 물들어 천천히 떨어지는 석양 속으로 조용히 침잠해가는 커크스톨 수도원, 그 자취는 늦가을 낙엽과 함께 이내 어둠 속으로 또 한 번 묻히고 있었다.

 

 

< 2 >

 

공익자본주의의 모델, 나오시마

 

 

 

후쿠다케 쇼이치로의 아버지 후쿠다케 테츠히코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86년 세상을 떠났다. 아동 학습서와 《바다제비》 같은 사상 잡지를 만들던 '후쿠다케 서점의 창업주다. 그가 늘 그리워하던 곳 나오시마에 천진한 아이들이 자연을 즐기는 캠프장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아들은 도쿄의 가업을 정리하고 고향 오카야마로 돌아왔다. 회사 이름도 후쿠다케 서점에서 '잘 살다'라는 의미의 '베네세 Benesse'로 바꿔버렸다.

 

어느 날, 후쿠다케는 바다 건너 나오시마에 내린 순간 아버지가 왜 그토록 이 섬을 못 잊었는지 알 것 같았다. 세토나이카이海의 아름다운 바다는 섬을 타고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곡선에 안겨있었다. 한없이 고요한 석양 바다는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간의 문명에 피폐해진 구리제련소의 잔해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몇 바퀴 섬을 둘러본 뒤 평소 알고 지내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두 사람은 선술집에서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갤러리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들은 안도는 무척 당황했다. 상상이 가지 않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방문하면 할수록 산과 바다의 굴곡에서 뭔가 신비함이 솟아나고 있음을 감지했다.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후쿠다케의 열정과 땀은 서서히 사람들을 움직였다. 바다는 스스로 아름다워지려 했고 섬은 더 푸른 숲이 되고자 했다. 그 각각의 언어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 1992년 베네세하우스가 선을 보였다. 예상을 벗어난 감동이었다. 2002년에는 지추미술관, 2010년 이우환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옛 골목을 살리는 ‘이에 프로젝트'는 인간의 역사와 깊이를 담아냈다. 안도 다다오의 손길을 거친 꿈의 호텔 오벌과 비치, 파크가 차례로 개장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음에 고인 물을 길어 올린다는 독특한 조각 ‘가보짜(호박)'는 백미였다. 파크 호텔 선착장 잔교에 세워진 노란 호박은 영혼의 세탁소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해 태풍에 호박 꼭지가 날아갔는데 고기잡이에 나갔던 마을 어부가 파도에 떠다니는 꼭지를 건져 다시 끼워 맞췄다고 한다. 예술과 인간은 이렇게 공존하고 있었다. 조각가 쿠사마 야요이는 고개 너머 선착장에 또 하나의 빨간 호박을 설치했다. 거대한 호박에 하늘의 점이 박히고 곳곳이 원형으로 뚫려 있다. 우주와 교신하는 통로를 연상하고 만든 작품이다. 햇살이 포근한 아침나절 걸어서 돌아본 혼무라 마을은 독특한 체험을 안겨주었다. 오래된 과거가 거장들의 건축과 어우러져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오시마를 움직이는 기업 베네세 홀딩스는 ‘잘사는 것'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실험을 실천하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해지려 한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인간은 정보와 오락이 넘치는데도 고독하고 행복하지 못하다. 섬의 풍경은 평화를 준다. 이렇게 좋은 곳에 살면 저절로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친 그들을 제 발로 오게 만드는 게 숙제다. 깜짝 놀랄 만한 구상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답은 건축과 예술이었다. 후쿠다케와 안도가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바다와 태양과 예술과 건축을 한데 묶어 문화공간을 만들고 그 생명력으로 버려진 섬을 살려냈다. 명소를 만들어낸 결정적 힘은 역시 후쿠다케의 '공익자본주의' 소신이었다. 현대기업들은 대개 문화산업을 목적으로 재단을 만들고 대주주가 배당금을 기부한다.

 

하지만 객관적 운영보다는 오너의 자녀들이 관계하고 치부와 도피의 통로로 이용되곤 한다. 한마디로 왜곡된 ‘금융자본주의'의 모습이다. 그는 이처럼 병든 자본주의를 과감히 바꾸고자 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시키는 병든 자본주의의 치부라고 보았다. 자본주의와 예술에 대한 후쿠다케의 지론은 상상 이상의 설득력과 울림이 있다.

 

"공익자본주의는 부의 배분을 달리한다. 세금회피나 과다한 배당의 일부를 사용해 기업 스스로가 좋은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쓰는 것이다. 공익자본주의는 인간과 기업의 모든 연결고리를 선순환시킬 것이다. 문화는 경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여야 한다. 문화가 경제를 이끌어가야 한다. 사물은 경제에 앞서가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이 앞서가는 것이다”

 

형제와 자식들의 재산싸움에 이골이 난 현대자본주의의 추악함은 한계에 와 있다. 오직 자신과 가족만이 잘살고 말겠다는 천민자본주의는 진한 고해의 시간이 필요하다.

 

나오시마는 꿈꾸는 인간의 수채화가 그려진 섬이다. 후쿠다케의 과대망상이 현실이 된 미지의 세계, 버려진 광산에 대한 분노가 예술로 승화된 천국, 천 년의 신전을 만든다는 정성으로 놀라운 투혼을 쏟아부은 이상향이다. 바다 건너 우라노 항구는 속세이고 나오시마는 피안이다. 문명의 속도와 생의 시간과 그것들을 정의하는 숫자의 의미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묶어 내는 것이다. 나오시마에는 흥분과 긴장과 경쟁 대신 인간이, 사람 냄새가 있었다. 점점 늙어가는 섬사람들의 시간을 가라앉히는 바다가 있었다. 그림과 미술관이 주인공 같지만 실은 인간이 주인공임을 알게 해주었다. 그저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인간을 그려낼 수 있었다. 나오시마는 오늘도 당신들의 자본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 3 >

 

오키나와로 튀어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 왕국이었다. 류큐는 슬픈 역사를 갖고 있다. 1,000년 전 중국 복건성과 타이완 사람들이 건너와 왕국을 세우고 융성하다가 15세기 일본 사쓰마에 점령당했다. 1471년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 처음 소개되고 나서 한때는 홍길동의 ‘율도국’으로도 알려졌던 섬이다. 2차 대전 종전 무렵 미국과의 지상전으로 초토화되었지만 해변의 절경과 슈리성만은 건재했다. 당시의 복장을 한 이들이 슈리왕궁의 근무 교대와 하늘 제사를 매일 선보이고 있었다. 언덕을 가득 채운 금빛 기와지붕 건물들, 그 시절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주민들의 자부심은 류큐의 정체성 고민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만 명이 앉아도 될 만하다 하여 붙여진 넓은 바위 절벽 ‘만자모’를 걸어 내려와 남북으로 길게 누운 섬의 아래쪽을 주로 돌아보았다. 오쿠다는 이를 “푸른 섬은 피난처다. 도시와 문명과 이데올로기에 지친 사람들에게 도망지로 그 섬이 있었다. 무망한 수평선, 시간의 흐름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어느 한 지점에서 갑자기 멈춰 서버린 곳. 신화가 전설로 이어지고 있는 땅"이라고 묘사했다.

 

 

나고시 남쪽 해변의 가파른 산 중턱에 맛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야마노차야 라쿠스이에 기를 쓰고 올라갔다. 이런 절벽 위에 가게를 내도록 허가해준 관청도 대단해 보였다. 가게는 그가 다녀갔다는 소문 때문에 밥 때가 지났는데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용나무 그늘 사이 화산석에 대고 만든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이른 오후의 파노라마가 해면에 펼쳐졌다. 빛의 축제가 한창이다. 시간에 따라 만들어지는 자연의 위대한 회화를 보기에 이만한 장소가 또 있을까 싶다. 창가 바다 쪽으로 배치된 방석자리가 백미였다. 해탈을 위해 면벽정진하는 암자 스님의 구도좌 같다. 낡은 나무창을 열고 그저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늘과 경계가 없는 수평선을 보다가. 섬사람들이 먹는 소박한 밥상을 받았다. 인간사 태양에 물들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 피안과 현실을 이어주는 풍경은 역시 가슴 밑바닥을 일렁이게 한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넘치듯 지나온 날들을 천천히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요즘 여수 돌산 앞바다 경도가 뜨고 있다. 볼품없었던 조그만 섬이 예약 없이는 가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내친김에 한려수도 관광에 1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선 기업도 있다. 섬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원초적 방랑기를 자극하는 감성의 창조물이다. 사서 고생해서라도 섬마을 답사를 꿈꾸는 것이 현대인들이니 말이다. 흑산도, 비금도, 추자도, 욕지도, 거문도, 남해안에는 무수한 섬들이 모여 있다. 자본을 대고 스토리를 입히면 오키나와를 넘어설만한 곳들이 부지기수다. 지리적으로도 기막힌 입지다. 비행기로 반경 두 시간이면 닿는 인구 100만 이상의 동아시아 대도시가 50개나 된다. 유럽 전체를 합한 것보다 많다.

 

섬은 자연환경에 인간의 이야기가 덧씌워져 재탄생된다. 신화와 현실이 버무려지면 일상의 쉼표를 찍겠다는 이들은 줄을 서있다. 리츠칼튼호텔은 섬 전체를 통째로 개발할만한 곳을 찾아 전 세계를 뒤지고 다닌다.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들은 그림을 담고, 당국은 자리를 깔아야 한다. 잊힌 섬들의 이야기가 그려져야 한다. 시코쿠의 나오시마, 중국의 해남도, 하와이의 마우이, 오키나와처럼 사람들은 어디론가 튀고 싶은 곳을 찾고 있다.

 

김경한 /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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