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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웃음이라는 가면

송담(松潭) 2021. 8. 31. 13:35

현대, 웃음이라는 가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 Sigmund Freud는 웃음에 대해 색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 웃음이 에너지의 배출이라는 것이죠. 그는 우리가 꿈을 꾸면서 욕망을 배출하듯이 웃음도 절약적인 방식으로 에너지를 배출해낸다고 봤습니다. 프로이트는 기념비적인 저서 『꿈의 해석』을 쓰고 난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를 발표하는데, 여기서 웃음에 대해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을 시도하죠. 프로이트는 웃음과 농담을 무의식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으로 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프로이트는 웃음을 통한 쾌감은 배설 감각으로서 불쾌함을 감소시킨다고 말합니다. 프로이트에게 웃음은 긴장과 억압을 배출하는 행위였고, 인생의 유아기로 돌아가려 하는 퇴행적인 행위였습니다. 프로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웃는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긴장되어 있고 무언가로부터 억압되어 있어 해소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셈이었습니다.

 

 

막스 할버슈타트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초상」 1922년경

 

 

흥미롭게도 프로이트는 자신의 초상사진을 통해서 굉장히 일관된 표정을 보여줍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우리를 내려다봅니다. 저 강렬한 응시로 우리의 무의식을 빨아들일 것만 같습니다. 격식에 맞춰 정장을 차려입고 거만한 표정으로 우리를 훑어보고 있어 불쾌감이 느껴질 정도죠. 이 거만한 표정은 자만심과 자존감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사실 프로이트의 인생사는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촉망받는 의학도였지만 유대인 출신이었고 당시 생소했던 정신분석학을 택했기에 빈의 엘리트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죠. 프로이트는 불안정한 시간 강사의 생활을 오랫동안 이어가야 했고, 정교수 자리도 간신히 얻었습니다. 교수가 된 이후에도 늘 명성에 굶주리며 항상 도전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처해 있었습니다. 주류에 편입하기 위해 끝없이 몸부림쳤던 프로이트의 삶을 생각하면, 사진에서 보이는 맹렬한 눈빛이 도리어 그의 누적된 열등감의 반영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프로이트가 개진한 웃음에 관한 정신분석학적 분석 외에도 19세기에는 웃음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되었습니다. 혹시 ‘뒤센 미소(Duchenne smile)’ 를 아시나요? 웃기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나타나는 미소나 표정을 일러 뒤센 미소라고 합니다. 뒤센은 19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신경학자입니다. 그는 안면 근육에 전기 자극을 가하여 즐거움, 분노, 놀람 등의 감정 표현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엽기적인 실험을 펼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다음 사진은 뒤센의 실험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은 안면 근육이 마비된 사람이어서 실제로 전기로 인한 통증은 느끼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실험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표정은 감정이 아니라 전기 자극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뒤센의 실험으로 전기 자극에 의해 웃는 얼굴과 진짜 감정으로 웃는 얼굴의 차이점을 고민하게 되면서 오늘날 우리는 후자의 미소를 뒤센 미소라고 부릅니다.

 

진실의 미소에 뒤센의 이름을 붙인 것은 심리학자 폴 에크먼이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진짜 미소는 입꼬리 근육이 올라가고 이마 근육과 눈 밑 근육이 내려가서 눈꼬리에 주름이 생겨야 한다고 합니다. 뒤센 미소와 반대로 감정 없이 억지로 웃는 미소를 일러 ‘팬암 미소(Pan Am smile)’ 라고 하는데요. 눈가 근육의 미동 없이 입꼬리만 올려 가짜로 웃는 이 미소가 과거 팬암 항공사의 승무원들이 짓던 미소와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그야말로 감정노동의 산물인 셈이죠.

 

 

 

인간의 감정과 표정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있었고, 기술과 과학의 발전에 따라 표정에 대한 연구가 실증적이고 구체화되어왔습니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얼굴 행동 코딩 시스템Facial Action Coding Systern: FACS 이라는 새로운 분석체계가 활발히 사용되고 있죠. 안면 근육의 미세한 변화까지 포착하여 표정에 담긴 다양한 감정을 수치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분석에 의하면 「모나 리자」의 표정은 83퍼센트의 즐거움, 9퍼센트의 혐오, 6퍼센트의 두려움, 2퍼센트의 분노의 표정으로 구성된다고 하네요. 사실 우리의 표정은 몇가지의 감정만으로 분석될 수 없죠. 무수한 감정이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히고설킨 채 얼굴 위로 떠오르는 것이 인간의 표정이기에 이러한 분석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신중하게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양정무 / ‘벌거벗은 미술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