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모방 식이요법(FMD)
단식 모방 식이요법(FMD)은 발터 롱고 박사가 개발했다. 그는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장수연구소에서 단식 모방 식이요법이 면역계 건강과 수명을 어떻게 개선하는지만 20년 세월을 뚝심 있게 연구한 인물이다.
보통 사람들의 장수 유전자를 깨우는 데에도 간헐적 단식이 도움이 될까? 간이나 췌장 같은 국소 손상을 복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체내 면역계 전체를 회복시키도록 말이다. 답을 찾기 위해 박사는 생명연장 유전자 돌연변이가 없는 실험쥐를 가지고 새로운 동물 실험에 들어갔다. 그는 다발경화증과 흡사한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한 무리의 실험쥐에게 일주일에 사흘 동안 FMD를 시켰다. 또 다른 실험쥐 무리에게는 대조군 삼아 보통 사료를 공급했다. 그리고 3주 뒤, 두 그룹을 비교했더니 FMD군에서 염증 유발성 사이토카인의 양이 크게 줄어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변화가 있었으니, FMD가 단백질과 지방을 주성분으로 하고 신경섬유를 둘러싸 절연체 역할을 하는 미엘린의 재생을 촉진했다는 것이다. 신경섬유는 척추를 거쳐 뇌까지 이어지는데, 체내 면역세포가 이곳을 공격할 때 나타나는 신경계 질환이 바로 다발경화증이나 길랑바레 중후군 등이다. 박사의 이 연구 결과는 2016년에 논문으로 발표됐다.
“체계적인 방법으로 안전하게 굶으면 사람 몸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게 약간씩 쪼그라듭니다. 면역계도 포함해서요. 이렇게 연료가 바닥났다고 믿게끔 몸을 속이면 면역계에 작동 버튼을 껐다가 다시 켤 짬을 줄 수 있습니다. 재부팅된 면역계는 망가진 면역세포들을 치우는 청소 작업에 바로 착수하죠. 얼마 뒤에 영양분 보급이 재개되면 그때 대대적인 재건축 작업이 시작됩니다. 다만 이번에는 세포 쓰레기를 다 치우고 주변정리를 끝낸 말끔한 환경에서 온전한 종자 세포가 건강한 세포집단으로 성장한다는 게 다릅니다. 최소한 동물 실험 결과는 그랬어요. 갓 태어난 건강한 일꾼세포들은 바로 곳곳의 수리보수 작업에 투입되고요."
망가진 미엘린도 그렇게 재생된 것이다.
롱고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FMD군 개체들의 경우 (대조군과 비교해) 몸속의 염증성 대식세포와 뇌 안의 염증성 미세아교세포 모두 현저히 감소해 있었다. 즉, 몸과 머리 모두에서 다시 시작하기 버튼이 작동했다는 뜻이다.
일명 생물노인학이라는 이 신흥 연구분과는 안 그래도 요즘 한창 뜨는 추세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 iational Instilte on Aging 신경과학 연구실을 이끌면서 존스홉킨스 대학교 신경과학 교수로도 재직 중인 마크 맷슨 Mark Mattson 박사는 이런 움직임의 선봉에 선 인물이다. 맷슨 박사는 동물 질병 모델을 활용한 연구 통해 간헐적 단식 요법을 하면 뇌 뉴런들이 시냅스 가지치기와 염증 발현에 더 잘 저항하게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효과가 확실히 입증된 병명만도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헌팅턴병, 뇌졸중 등 한둘이 아니다.*
* 단식 모방 식이요법(FMD)과 흡사한 식이요법으로 간혈적 단식 다이어트와 시간 제한 단식 다이어트라는 것도 있다. 바로 앞 단원에서 앨런 페이든 박사가 뇌 손상 환자의 최신 치료 전략으로 즐겨 병행하던 것들이다. 간헐적 단식은 명 5대 2프로그램이라고도 하는데, 일주일에 닷새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평소처럼 먹고 나미지 이틀만 열량 섭취를 500~600칼로리 정도로 제한한다. 한때 시간 제한 단식의 경우는 정해진 일정을 따르는데, 하루 중 8시간 동안에는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나머지 16시간(보통은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로 한다) 동안에는 금식하는 식으로 진행한다.
박사의 2018년 연구에 의하면 간헐적 단식이 인지 기능과 기분조절장애를 개선시키는 것으로도 확인됐는데, 미세아교세포를 매개한 감염의 발생이 억제되고 그 결과로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뉴런이 쉽게 상하지 않고 망가진 신경회로가 바로 재생됐기 때문이라고 박사는 해석한다.
이즈음, 아이디어 하나가 선명하게 떠올라 롱고 박사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FMD가 '병든 면역계를 바로잡는 자연계의 가장 원시적이면서 가장 확실한 본능'을 깨울 거라는 생각이었다. 준비된 FMD라면 ‘부작용이 거의 없이 우리 몸의 재생과 자가치유기능'만 켤게 분명했다. 그렇게 롱고 박사는 자신의 평생 경력을 이 연구에 걸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사람은 실험쥐와 다르다. 따라서 임상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지는 섣불리 장담할 수 없다. 롱고 박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도의 에너지가 공급되도록 식단을 짜는 게 FMD 개발의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병원이 아니더라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안전하게 식이요법에 도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박사는 우리 몸이 굶고 있다고 착각하기에 충분하게끔 칼로리 섭취량을 확 줄였다. 그러면서도 재생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와 비타민이 모두 들어가도록 메뉴를 구성했다. 물론, 먹는 음식이니 맛도 포기할 수 없었다. 단식의 장점은 다 가지면서도 새는 영양소가 없게 해야 했다. 식이요법 때문에 기절하거나 극심한 허기에 시달리거나 박탈감에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기면 안 될 테니 말이다.
박사는 곧장 자료 조사부터 들어갔다. 어떤 영양소가 면역세의 기능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그래서 자가면역질환과 뇌 관련 질환들에 얼마나 중요한지 세세하게 파악했다. 그런 다음, 전 세계의 온갖 다이어트 식단을 모으고 수명 연장이나 인지기능 향상에 효능이 있어 보이는 것들을 걸러 분석했다. 주민들 사이에 유독 병치레가 없고 사람들이 늙어도 총기를 잃지 않는다고 소문난 지역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일본 오키나와가 대표적인 예다. 생선과 채소 위주의 식습관 덕에 사람들이 무병장수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의 노인들은 같은 연령대의 미국인 보다 암과 심장병에 덜 걸렸고, 치매 발생률은 무려 절반 수준이었다. 지구상에서 노인들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장수하는 곳은 더 있었다. 가령 동고 박사 조부모의 고향인 이탈리아 사르데냐와 칼라브리아 역시 그런 곳 중 하나다. 이 장수마을의 비밀은 바로 채식의 비중이 압도적인 지중해식 식단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박사는 드디어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부속 병원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FMD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연구를 위해 100명의 지원자가 최종 선발됐다. 연구 참가자들이 할 일은 한달 중 딱 5일 동안만 박사가 고심해 설계한 채식 위주 저칼로리 식이요법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석 달을 하면 됐다.
연구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FMD 그룹의 참가자들은 체중 대비 근육량이 증가하고, 혈압이 낮아지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떨어지는 등 다방면에서 긍정적인 생물학적 변화를 보였다. 연구 등록 전에 당뇨병 경고를 받았던 참가자들은 혈당 수치도 정상 범위로 돌아와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마지막 면담 시간에 참가자들은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진 데다가 전체적으로 활기가 생겼다고도 고백했다.
한마디로 FMID가 동물 연구에서처럼 인체에서도 똑같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뜻이라고 롱고 박사는 설명한다. 그는 FMD가 망가진 세포를 분해하거나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한다고 추측했다. 또, FMD가 죽은 세포 찌꺼기를 치우고 빈자리에 건강한 새 세포를 채우며, 혈관을 타고 떠도는 줄기세포의 양을 늘려 적재적소에서 복구와 재생 작업이 이루어지도록 했다고도 짐작했다. 사실, 적당한 단식이 비만율을 낮추고 당뇨병, 암, 심혈관계 질환, 신경퇴행성 장애의 위험인자를 줄인다는 연구 결과는 수년 전부터 꾸준히 나오던 차였다.
도나 잭슨 나카자와 지음, 최가영 옮김 / ‘너무 놀라운 작은 뇌세포 이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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