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송담(松潭) 2021. 7. 3. 21:50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봄날은 간다> 유지태)

순수함을 믿는 나이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그 기준이 어떻든 간에 바로 그 기준으로 밑에 있는 사람들은 사랑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놀랐고, 반대로 그 기준 위에 있는 사람들은 사랑이 안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실제로 사랑에는 유효 기간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미국 코넬대학교 인간행동연구소의 신시아 하잔 교수는 2년 동안 미국인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하면서 연구를 합니다. 그 결과 사랑의 유효 기간은 평균 18~30개월 정도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유효 기간은 900일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뇌의 미상핵 부분이 활성화돼서 도파민이 분비되는데, 이 도파민이 바로 사랑에 빠지게 하는 마법의이 가루입니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기쁨이 샘솟고 행복한 감정에 빠집니다. 이성을 볼 때의 두근거림이나 아무리 피곤해도 늦게까지 같이 있고 싶은 열정 같은 것들은 모두 이 호르몬의 작용이에요.

 

그런데 사랑에 빠지고 1년만 지나도 도파민의 분비는 50퍼센트로 줄어든다고 해요. 사랑의 초창기에는 미상핵의 활동이 늘어나서 열정적이고 감정적으로 판단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상핵 활동은 줄고 대뇌피질의 활동이 늘어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콩깍지가 벗겨지는 것이지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역시. 사랑은 변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작품을 출간했을 때 인터뷰하다가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랑을 믿습니까?"

그러자 사강은 지체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농담하세요? 제가 믿는 건 열정이에요. 그 외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사랑은 2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3년이라고 해두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는 제목만 놓고 보면 무언가 굉장히 우아하고, 클래식한 내용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굉장히 통속적인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책 내용 전체가 그냥 삼각관계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외의 내용은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보통은 기둥 줄거리에 대한 홍미를 고조시키기 위한 장치로 삼각관계를 사용하는 것이 요즘 영화나 드라마들의 트렌드인데요, 이 책은 삼각관계 자체에 집중을 합니다. 삼각관계 속에 놓인 연인들의 심리를 세밀하고도 감각적으로 묘사하는데, 그게 또 공감이 됩니다. 연애를 여러 번 해본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읽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오래된 연인이 있는 사람들이 읽어도 공감 포인트가 많습니다.

 

폴과 로제는 오래된 연인인데, 서른아홉 살 여성인 폴은 이제 안정적인 사랑을 찾고 싶어하는 반면, 로제는 여전히 정착하기 싫어하고 폴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허구한 날 늦는다는 전화를 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곤 하죠. 그런데 폴 앞에 스물다섯 살 청년인 젊은 수습 변호사 시몽이 나타납니다. 젊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불 같은 열정으로 시몽은 폴에게 구애하고, 결국 폴은 그 구애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결국 폴이 로제를 다시 받아들임으로써 이 관계는 원점으로 회귀하게 되죠.

 

로제와 폴의 입장에서 보면 권태로웠던 오래된 연인 사이에 새로운 긴장감을 주는 인물이 나타나서, 삼각관계를 만들고 질투를 유발해서 사랑의 열정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강은 이미 어렸을 때 천재라는 타이들을 달고 데뷔한 소설가입니다. '그 후 폴과 로제는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 행복하게 살았다' 같은 식으로 이야기를 아름답게 끝내지 않아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습니다. 로제에게서 늦는다는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리고 또 폴은 기다리죠.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과 똑같은 상태로 끝나버립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제목부터 정말 감각적이지 않나요? 데이트를 신청할 때 "영화 보러 갈래요?" 하는 것보다 "크리스토며 놀란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뭔가 취향을 존중해주는 것 같고, 있어 보이는 효과가 나잖아요. 실제로 소설 속에서도 이 말은 시몽이 브람스 연주회에 같이 가겠냐며 폴을 초대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그 전에는 계속 어리다는 이유로 거리를 두던 풀이 시몽의 구애에 처음으로 약간이나마 반응한 질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브람스가 그다지 인기 없어서 인지 브람스가 주는 의미는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주는 의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음식 먹는 상황으로 예를 들자면 치킨 같은 경우는 "오늘 치킨 먹으러 가자"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카레 같은 것을 먹을 때는 "혹시 카레 좋아하시나요?"라고 한 번 물어본 뒤 권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냥 "브람스 음악회에 갑시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보는 것은 일상적인 상황에서, 한 번 더 자신의 취항을 생각해보게 하는 환기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브람스가 누구나 좋아하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아니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선택은 분명히 아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평범한 일상과 관성에 보내는 시몽의 초대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시몽은 폴보다 열네 살 어린 것으로 나옵니다. 지금부터 60년 전에 열네 살 연상인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사실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큰 모험이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요. 그래서 시몽의 초대 메시지는 '?'가 아니라 ‘....’인 거예요. 강력한 대시인 거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정할 때 사강이 특별히 강조한 것은 책 제목에 절대 물음표가 아니라 말줄임표를 붙여달라는 것이었대요. 실제로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죠.

 

브람스는 단순히 취향 존중의 은유로만 쓰인 것은 아니에요. 브람스에게는 사실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브람스는 스무 살 무렵 처음으로 슈만 부부를 만납니다.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이에요. 로베르트 슈만은 브람스의 재능에 감탄해서 평론으로 그를 치켜세워주며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합니다. 하지만 로베르트 슈만은 브람스를 만난 지 3년 만에 죽고 말아요.

 

그리고 클라라 슈만과 브람스가 남아요. 이들의 사랑을 세기의 사랑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은 여사친과 남사친으로 40년 동안이나 동반자적 관계로 지냈습니다.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클라라와 작곡을 했던 브람스는 서로에게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브람스도 결국 미혼으로 죽고, 클라라도 재혼하지 않고 죽거든요.

 

클라라와 브람스의 나이 차이는 열네 살입니다. 물론 클라라가 열네 살 많았지요.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브람스를 가져다 쓴 것은 바로 클라라와 브람스의 스토리를 차용한 효과도 있는 거예요. 작곡가 브람스 역시 열네 살 연상인 클라라 슈만에게 평생 연정을 품은 셈이지만, 결국 이어지지 않았듯 시몽과 폴은 처음부터 이어질 수 없게 설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영속성을 믿지 않았던 사강은 단순히 나이 차이와 맺어지지 않는다는 결말 때문에 브람스를 차용한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말과는 달리 브람스와 클라라 사이에 존재했던 아가페적인 사랑의 가능성을 보고 브람스를 표제로 삼은 것일까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결말을 보면 사강이 희망적이고 감상적인 말을 건네는 작가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폴이 시몽이 아닌 로제를 다시 택한 이유는 시몽과의 사랑 역시 3년 정도 지나면 로제와의 관계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바에는 익숙한 로제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죠. 그리고 이미 열정이 다했지만 이성적인 이해와 정으로 어느 정도 고착화된 관계에 안정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요.

 

어차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봤자, 3년 안에 유효 기간이 다할 것이라는 사강의 생각은 자못 염세적인 데가 있습니다. <라디오스타>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남자는 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n년차 유부녀의 깨달음을 전한 가수 이효리의 이야기와 얼핏 통하는 데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결혼 생활의 평화를 지속시켜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안정적인 면도 있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폴이 새로운 사랑에 들뜨지 않고 그냥 오래된 연인 로제를 선택한 젓처럼요.

 

하지만 돌덩어리 심장을 가지고 사는 것이 편하게 사는 것이라는 깨달음,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는 전제는 왠지 서글픈 느낌을 줍니다. 그래도 하나 위안이 되는 것은 사랑에 유효 기간은 있지만, 제조일에는 제한이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늦게 시작된 사랑이라도 어쨌든 3년은 간다는 거잖아요.

 

이시한 / ‘지식 편의점(흐름출판)’중에서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1935.6.21~2004.9.24)

 

프랑스 극작가,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이다.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Françoise Quoirez)이다.

남프랑스의 카자르크에서 출생하여 소르본 대학을 중퇴하였다. 18세 때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여 작가로서 인정을 받고 같은 해 문학 비평상을 받았다. 남녀간의 심리 전개를 세심한 관찰력을 통해 담담한 문체로써 묘사하였으며, 섬세하고 권태로운 분위기를 조성시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어떤 미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뜨거운 사랑> 등이 있으며, 희곡으로 <스웨덴의 성> <발라틴의 등색 옷> 등을 발표한 외에 발레느 샹송을 쓰기도 했다. 현대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

2000년대 마약 복용 혐의로 이슈가 되었을 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을 하여 마약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 위키백과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을까?

 

프랑수아즈 사강은 삶이 문학적 재능을 압도해버렸다는 평을 듣는 소설가입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았거든요.

 

사강은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으로 19세 때 등단해요. 수녀원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클럽을 들락거리고, 담배와 커피가 아침식사였고, 카지노에서 스스로 자신의 인세를 다 탕진했지요. 그래서 프랑스 내무부에 자신을 카지노에 못 가게 금지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스포츠카를 타다가 전복 사고를 내서 3일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기도 했던 사강은 자신의 인생을 술, 연애, 속도, 도박, 섹스, 그리고 낭비에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드레스란 남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벗기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의미 없는 물건"이라고 말한 걸 보면 그녀의 삶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천재 작가 그리고 천재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퇴폐적 삶을 살았던 사강. 그녀의 삶이 이런 명작을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삶이 보다 더 명작을 만들 수 있는 재능을 방해한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그녀의 소설들은 천재가 쓴 소설은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해줍니다. 60년이 지났지만 그 감각과 느낌의 공유는 최근 작품이라 해도 손색없거든요.

 

1995년 사강은 코카인 소지 혐의로 기소되는데, 그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한 말은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어떻게 보면 자살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말이니까요. tvN의 예능 <알쓸신잡>에 출연한 것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영하의 초기 대표작이 바로 1996년 발표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소설인데요, 자살 조력자에 대한 이야기예요. 김영하는 <알쓸신잠>에서 사강의 이 말에서 소설 제목을 따왔다고 고백한 적이 있죠.

 

그녀의 삶은 현 시대에 가져다 놓아도 문제적일 텐데, 무려 60여 년 전에 이런 말을 했으니, 이건 시대를 앞서갔다기보다는 시대를 초월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네요. 점점 개인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세상이 돼가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공동체주의와 종교가 지배하던 세상에서는 말도 안되는 것으로 치부되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는 지금에 와서야 고민해볼 가치가 통용되는 질문이 아닐까요? 지금 시대에야 이 말을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시한 / ‘지식 편의점(흐름출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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