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자본주의와 종교

송담(松潭) 2021. 3. 23. 20:52

자본주의와 종교

 

 

게오르그 짐멜 Gcorg Simmel 이나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자본주의를 '세속화된 종교'라고 평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 이상이다.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형태의 종교다. 인간사 만물의 진리는 ‘기브 앤드 테이크’다. 어떤 행동을 하면 보상을 줘야 한다. 그런데 종교는 보상이 취약하다. 믿었을 때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대중 종교는 신자가 많고 이들은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는 내세의 천국을, 오지 않을 이상향을 약속한다. 어차피 오지 않기 때문에 공약을 남발한다. 그랬기에 과거부터 현실을 중시하는 이들은 그런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않았다. 과거 사람들은 모두 종교를 믿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과학이 종교의 허구를 밝히기 이전부터 꽤 많은 지식인이 종교에 회의적인 시각 가지고 있었다. 다만 사회 분위기 때문에 표현을 못 했을 뿐이다. 제대로 된 보상이 없는데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자본주의는 종교에 치명적인 보상 문제를 해결했다. 돈은 완벽한 달란트다. 얻는 즉시 그만큼의 천국을 약속한다. 천 원을 벌면 천 원의 행복을 구입할 수 있고, 만 원을 벌면 만 원의 행복을 구입할 수 있다. 물론 행복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쨌든 보상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행복이라는 말이 와 닿지 않는다면 자유라고 해도 좋다. 우리는 돈을 가진

만큼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이렇게만 보면 자본주의는 종교라기보다는 인간이 단순히 자신의 욕망을 좇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에는 맹목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고 믿음에는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그냥 잘 먹고 쇼핑하고 여가를 즐기며 쾌락을 위해 돈을 버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신자가 아니다. 사회는 이 방탕한 탕자들을 비추며 자본주의를 비판하지만, 그들은 그냥 욕망을 추구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진정한 자본주의의 신자들은 금욕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행복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한평생 먹고살 돈이 충분한데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이들을 우리는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여가 중에 얻는 행복감이 적다고 한다. 그들은 그 시간에 일했으면 벌었을 돈을 계산하느라 결코 여유를 즐기지 못한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번다. 그들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서 쓰지도 못할 자본을 축적한다. 이들은 신의 말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하는 종교인과 마찬가지로 지독한 변태들이다. 방탕한 삶을 사는 재벌 2세나 3세들은 사회의 지탄을 받는다. 그들을 보며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회의감을 느낀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열성적인 변태들은 사회의 존경을 받으며, 영웅이 되어 자본주의의 가치를 수호한다.

 

 

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

 

 

'원시 종교' 하면 꼭 나오는 것이 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이다. 이 셋은 보통 세트로 소개되고, 사람들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이번 기회에 이 셋을 칼같이 정리하고 구분해보자.

 

(1) 토테미즘 Totemisn

 

특정 동식물 혹은 자연물을 신성시하는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 그 특정 대상물과 자신의 부족이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토템의 자손이며 혈연이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로마의 늑대와 독수리, 중국의 용과 봉황, 단군신화의 곰, 모두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습은 현대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큰 나무, 스포츠팀이나 대학에서 쓰는 심벌 등이 토테미즘의 혼적이다. (그나저나 우리는 곰의 후손인데, 어째서 곰보다 중도 포기한 호랑이가 더 많이 상징으로 쓰이는지 모르겠다).

 

(2) 애니미즘 Animism

 

자연현상이나 물건 등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앞에 붙은 'anim'을 animal'로 생각해서 동물을 모시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anim은 생명, 정신, 숨이라는 뜻의 라틴어 'anima'에서 유래한 것이다. 특정 동물을 섬긴다면 앞에 소개한 토테미즘이다.

 

애니미즘을 믿는 공동체는 자연이나 물건도 인간처럼 욕구와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의인화다. 예를 들어 파도가 거세면 바다가 화가 났다고 생각해서 바다에 제물을 바치는 행위가 전형적인 애니미즘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는 애니미즘의 전통이 강한데, 문, 부엌, 더 나아가서는 장독, 도자기, 솥처렴 집 안의 소소한 물건에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다. 집터를 시키는 지신과 터주신,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 문을 지키는 문상신 등이 있으며 이중 가장 강력한 영혼을 성주신이라 불렀다. 서양에서는 물건에 혼이 들어가면 저주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한반도에서는 물건에 깃든 영혼을 집을 지켜주는 긍정적인 존재로 여겼다.

 

(2) 샤머니즘

 

무당, 무녀, 주술사, 호칭이 무엇이든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샤먼을 중심으로 한 신앙체계를 샤머니즘이라고 한다. 샤먼은 신의 음성을 듣고 사람들에게 전하며, 사람들의 말을 신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지금의 무당들이 그렇듯, 고대의 샤먼들도 퍼포먼스를 벌렸다. 그들은 무언가 신들린 모습을 보여줘야 했고, 이 과정에서 마약 식물을 사용하기도 했다.

 

 

 

종교보다 종교적인

 

 

사상이 종교가 된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가미카제(神風)일 것이다. 가미카제는 조종사가 저렴하고 가벼운(사실상 자살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전투기에 폭탄을 가득 싣고 적진에 충하는 것으로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펼친 자살공격이다.

 

이 무서운 작전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국가주의와 일본의 전통적인 사고관이 결합하면서 가능했다. 일본인들은 신토神道와 불교의 영향으로 과거부터 자기회생에 대한 저항이 적었다. 죽은 사람에 대한 존경, 죽어서도 완전히 잊히지 않는다는 확신, 그로 인해 생기는 죽음에 대한 가벼운 태도, 명예로운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강조하는 일본의 무사도, 육체의 미덕이 정신적 미덕과 동일시되는 현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가미카제라는 무기가 탄생했다.

 

1944년 10월, 일본 제1 항공함대 사령관은 미군의 대규모 공격이 확실해지자 부하들에게 "미군을 저지하려면 250킬로그램의 폭탄을 전투기에 싣고 가는 수밖에 없다. 제군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외쳤다. 젊은 항공병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희생을 맹세했다. 특공대 지원자는 수백 명이 넘어서 사용가능한 전투기보다도 많았다. 일본은 인간을 갈아 넣어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한 탁월한 유도미사일을 개발한 셈이다(가미카제처럼 정교한 수준의 유도 미사일은 2차 세계대전 후에 개발된다).

 

이후 가미카제는 일본에는 없어서는 안 될 전략이 된다. 최초의 특공대 지원자는 일본인의 숭배를 받았고, 유족은 연금을 받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많은 군인들이 가미카제에 자원했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 선발된 지원자들은 먼저 비행기에 타고 싶어 안달이 났다. 자신들이 자살을 하기 전에 전쟁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은 진심으로 초조해했다.

 

가미카제는 하나의 종교의식이 되어갔다. 전투기에 오르기전 특공대원은 주변을 정리하고 남은 물건을 나누었다. 유서를 작성하고 머리카락과 손톱을 넣었다. 가족에게 물건을 보내는 이들은 소포에 자신의 계급을 한 단계 올려서 적었다 전사한 군인은 사후에 한 단계 진급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속옷부터 모두 깨끗하게 갈아입고 천황이 사는 곳을 향해 절을 하고 묵념을 했다. 그리고 작은 꽃다발을 받고 이별의 술을 한 잔 마신 뒤(때에 따라서는 히로뽕을 마신 뒤) 전투기에 올랐다. 그들은 완벽히 비이성적인 상태였지만 놀랍도록 차분했다. 결코 그들은 타의로 작전을 수행하지 않았다.

 

미군은 자신들이 확실히 승기를 잡으면 일본군이 전의를 상실해 가미카제를 그만둘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끝없이 작전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사기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국이 패하기 전에 자신도 작전에 투입되길 간절히 원했다. 미군들은 이런 광기에 사기가 꺾었고, 함대 철수를 진지하게 고려했다. 하지만 그때 가미카제가 갑자기 끝이 난다. 지원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전투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 패배한다.

 

일본군 사료에 따르면 태평양 전쟁에서 자발적으로 죽음을 맞은 특공대원은 총 4,615명이다. 역사적으로 자살공격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가미카제처럼 전 조직원 모두가 죽기를 희망하는 경우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 전체가 천황을 중심으로 종교화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이기기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종교를 위해 순교한 것이다.

 

 

 

외부의 모두가 적이다

 

정치를 제외하고 우리가 외신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미국의 뉴스는 총기 난사 사건이다. 미국에는 총기가 흔하다. 총기 사고가 잦으니 미국의 총기 규제가 점점 엄격해지고, 사냥 인구도 줄었으니 총기 수도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미국의 총기 수는 지난 50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 현재 미국에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총기만 3억 정이 넘는다. 미국 인구가 3억이니 평균으로 따지자면 미국인 1명당 총 1자루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평균의 함정에 빠진다. 미국인 중 총을 가진 사람은 4명 중 1명이다. 그 1명이 보통 3자루 이상의 총을 가지고 있다. 미국인의 2.4퍼센트에 해당하는 총기 애호가들은 평균 17자루의 총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전체 총기의 절반을 차지한다. 미국에서는 교통사고만큼 총기 사고가 흔히 발생하고, 사망자는 교통사고보다 많다.

 

총기 소지를 지지하는 이들의 그나마 합리적인 주장은 갑자기 범죄자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총이 없어도 치안이 잘 유지되지만, 불안한 사람들도 있을 테니 이런 주장까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하지만 총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실제로 범죄로부터 자신을 구하는지는 의문스럽다. 지난 10여 년간 실시된 범죄 피해 경험 조사에 참여한 100만 명이 넘는 피해자 중 범죄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총기를 사용한 사람은 단한 명뿐이었다.

 

미국이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면 많은 이들이 개척 시기 미국의 역사를 들먹거린다. 총기 문화가 시작된 것에는 분명 역사적 원인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역사적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면 의문이 생긴다. 가령 미국과 비슷한 역사와 환경을 가진 캐나다 역시 총기 소유가 가능하지만 미국처럼 문제가 심각하진 않다. 이야기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만약 우리나라에 총기 문화가 있다면, 그 전통은 일제강점기 독립군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겠는가.

 

미국 수정 헌법 제2 조에는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총기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이 문구를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 문장 앞에 쓰인 부분은 보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정확한 구문은 이렇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거대 정부를 피하려고 했고, 군대도 최소한으로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군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럴 때는 언제든 주에서 민병대를 조직할 수 있도록 시민의 총기 소유권을 허가한 것이다. 즉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주의 안보에 필요하기 때문에 성립한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고, 주에는 민병대가 필요치 않다. 수정 헌법 제2조는 시민의 천부적 권리가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군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미국총기협회가 총기 규제에 관해 회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강압적인 정부가 헌법에 적힌 우리의 권리를 빼앗고, 우리의 집안으로 쳐들어와 우리의 총을 강탈하고 우리의 사유지를 파괴하며 심지어 우리를 다치게 하고 죽일 수도 있는 권리를 가졌습니다. ........내일은 모든 시민들에게서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권리장전에 적힌 모든 자유를 빼앗을 것입니다.”

 

총기를 완전히 규제하는 것도 아니고 반자동소총같이 누가 봐도 범죄 외에는 딱히 쓸 일 없는 총기를 규제하는 것에 그들은 왜 이렇게 홍분할까?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총기 규제가 화두에 오른다. 하지만 총기 소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건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총기 난사사건이 총기를 규제하려는 진보주의자들이 꾸민 음모라고 주장한다. 대체 어쩌다 그들은 이런 망상에 빠지게 되었을까?

 

 

 

거짓이 아니다, 대안적 사실이다

 

 

2017년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다음날,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는 90만 명의 인파가, 오바마 때는 2배인 180만 명의 인파가 모였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의 손 스파이서Secan Spicer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언론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 인원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행사 당일 근처 지하철역의 승하차 인원은 42만 명으로, 오바마 취임식 때의 32만 명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가 인용한 수치는 아무 근거 없이 멋대로 꾸며낸 것이었다. 현장을 찍은 항공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트럼프 취임식 참석자가 오바마 취임식 참석자보다 훨씬 적었다.

 

다음 날 열린 백악관 기자와의 만남에 참석한 기자들은 "왜 대변인이 거짓말을 하느냐?"며 항의했다. 그러자 켈리앤 콘웨이Kellyanne Conway 백악관 고문은 전설이 될 말을 남긴다. "자꾸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대안적 사실aternative facts 을 제시한 거죠."

 

'대안적 사실'이라는 표현은 이렇게 탄생했다. 기자는 곧바로 "그건 대안적 사실은 아닙니다. 그냥 거짓말이죠"라고 반의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정치학자 브라이언 셰프너Brian F Schalffner 와 여론조사 전문가 서맨사 럭스Samantha Luks가 이 사건과 관련해 대중의 반응을 연구했다. 두 학자는 1만 4,000여명의 미국 성인들에게 두 장의 사진을 나란히 보여주고 어느 쪽 사진에 사람이 더 많으냐고 물었다. 정말 간단한 질문이며, 정치 성향과도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 트럼프 지지자의 무려 15퍼센트가 사진을 빤히 보면서도 왼쪽 사진(트림프 취임식)에 사람이 더 많다고 답변했다.

 

20세기 미국 민주당 원로 정치인 팻 모이니핸Daniel Parick "pat" Moynihan 은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의견을 가질 권리는 있지만, 자기만의 사실을 가질 권리는 없다"라는 아주 멋진 말을 남겼고, 지식인들은 가짜 뉴스를 이야기하며 이 말을 끌어다 쓴다. 하지만 그는 2003년에 죽었고 게임의 룰은 바뀌었다. 이제는(적어도 정치적 의안에 대해서는) 거짓이 없다. 이렇게 사진 한 장으로 드러나는 사실조차 다른 말이 나오는데 무엇을 거짓이라 할 수 있겠는가. 오직 수많은 대안적 사실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믿고 싶다

 

 

1948년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Bertram Forer는 대학생 39명에게 심리검사를 실시한다. 무료로 해준다고 하니 학생들은 신나서 실험에 참가했다. 학생들이 모든 문항에 체크를 하면 포러는 그들에게 결과를 보여주고 자신의 성격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0점(최하)부터 5점(최고)까지 평가해달라고 부탁했다. 39명의 평균 점수는 4.26점으로 만점에 가까웠다. 학생 대다수가 결과에 만족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학생들이 받은 결과는 사실 학생들의 성격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학생이 어떤 답안을 제출하든 포러는 똑같은 결과를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결과가 자신의 성격과 일치한다고 믿었다. 포러가 학생들에게 준 결과는 아래와 같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은 몇 가지 성격적 결함을 갖고 있지만, 평소에는 그것들을 상쇄할 수 있어 큰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 당신은 외향적이고 친절하며 사교적이지만, 때로는 내향적이고 외부를 경계하고 내성적이 됩니다. 당신의 꿈 중 일부는 매우 비현실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안전한 삶은 당신의 주요한 목표들 중 하나입니다.

 

어떤가? 자신과 비슷한가? 너무 뻔한 수법 아니냐고? 맞다. 그래서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일단 결과를 주는 사람에게 신뢰감이 있어야 하며, 나에게만 주는 답이라는 확신도 필요하다. 이 실험에선 두 가지 전제가 모두 충족된다. 실험을 진행한 포러는 권위 있는 심리학과 교수이며 심리 검사 이후 학생들에게 결과를 개별 통보했다.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해주면 신뢰를 얻기 더 좋다. 확신만 줄 수 있다면, 예언은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좋다. 어차피 무속인을 신뢰하는 사람은 그 모호함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서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틀린 답을 내리더라도 그 틀린 답은 은유나 메타포가 되지 틀린 것이 되진 않는다. 예술가보다 중요한 건 대중이며, 마술사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이듯이, 신보다 중요한 것은 신자이며, 점쟁이보다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들이다.

 

탈종교 시대임에도 여전히 각종 미신이 흥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사주를 보든 타로를 보든 내리는 해답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착각한다). 그런 포인트가 오히려 급변하는 시대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종교는 약해지지만 미신은 강해진다. 이를 포러 효과, 혹은 바넘 효과라 부른다(바넘은 미국의 서커스 단장 겸 흥행업자다. 그가 사람을 현혹하는 기술이 이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람들은 타로나 사주에 대해서, 과거는 잘 맞추는데 미래는 맞추지 못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빅데이터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사실은 이 바넘 효과 때문이다. 지나간 과거는 모호한 말 속에 자신의 경험을 풀어 이해할 수 있지만, 미래를 해석할 때는 기대감이 포함되기 때문에 정확히 맞힐 수 없다.

 

결국 우리를 속이는 건, 점쟁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거라면 뭐든 믿는 존재이기 때문에."

기원전 4세기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지금도 기꺼이 속는다.

 

 

미신과 함께

 

 

30대 초반, 나는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명리학자(스승부심이니 토 달지 말자) 밑에서 1년 정도 수학했다. 교육도 서비스업인지라 선생님이 내 사주를 직접 풀어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 내게 세 가지를 말씀해주셨다(아마 더 말씀하셨을 텐데 내 편의대로 세 가지만 기억 중이다).

 

첫째, 너는 연쇄살인범 사주를 가지고 있다. (사수를 볼 줄 아는 이를 위해 간단히 설명하면 일주 괴강에 극신약)

둘째, 너는 단명한다.

셋째, 앞으로 다른 사람 사주는 봐주지 마라.

 

제자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나를 싫어하신 게 아닌가 싶다. 이 세 가지는 잊기에는 너무 강렬한 내용이라 지금도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사주를 1년이나 배운 사람이 하기엔 이상한 고백이지만, 나는 사주를 믿지 않는다. 사주를 배운 것도 선생님에 대한 호감 때문이었지 사주를 믿어서는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맞히는 짜릿한 경험도 해봤지만,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선생님이 내 사주를 봐주신 후 내 삶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일단 세 번째부터 말하자면, 지키면서 살고 있다. 지인이 부탁하면 가볍게 사주를 봐주기는 하지만, 각 잡고 본 적은 한 번도 없다(돈을 받은 적은 없다는 뜻이다). 선생님이 내게 다른 사람의 사주를 봐주지 말라고 한 건, 내 사주에 내가 말을 함부로 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판단을 빨리 내리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사주에 적혀 있든 아니든 간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타인의 사주를 보지 않는 이유는 스승님의 말씀 때문만은 아니다. 한번은 동기들과 케이스 스터디를 하면서 한 아주머니가 가져온 남편의 사주를 함께 푼 적이 있다. 부인이 남편의 사주를 가져오는 건 당연히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이고, 그 문제는 열에 아홉은 돈 아니면 여자다. 남편의 사주는 재성이 강하고 혼잡했는데, 재성은 남자에게 재물 혹은 여성을 의미한다. 재성이 강하고 혼잡하니 동기들은 이 남자가 온갖 여자를 후리고 다니는 바람둥이라는 걸론을 내렸다. 나는 살짝 당황스러웠는데, 아무리 사주가 그렇다 한들 남의 인생에 관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고작 생년원일만 보고 한 사람을 가족을 버리고 바람을 피우는 무책임한 유부남으로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 그날 나는 명리학 공부를 그만뒀고, 이후 타인의 사주를 각 잡고 봐주지 않는다(공짜로 바주는 건 뭐가 다르나 싶겠지만, 사람들은 돈을 내지 않는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므로 함부로 말해도 괜찮다),

 

나머지 두 가지는 한번에 풀어보자.

 

선생님은 연쇄살인범 사주라는 것은 일종의 비유로, '총명하고 과감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살인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잡히지 않고 연쇄적으로 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나? 내 입으로 옮기자니 쑥스러운데, 아마 막말을 하신 게 미안했던지 좋게 풀이해주신 것 같다. 원래 점이란 건 좋게 해석해주는 거니까.

 

서른쯤 되면 누구나 그렇듯 당시의 나는 심하게 방황하고 있었다. 물론 10대나 20대도 방황하고, 중년도 방황하고 노년도 방황한다. 아무튼 서른 살의 나는 방황 중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풀이가 합쳐지자 선생님이 내게 주려는 메시지가 명확해졌다. '너는 똑똑하고 짧게 사니까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네 미래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꿈보다 해몽이라고? 당연하지. 내 인생인데 내 마음대로 정신 승리하는 거다.

 

사실 선생님이 풀어주신 것과는 달리 나는 그렇게 과감한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어느 정도 하고 살게 되었다. 나는 과감한 사람이니까. 연쇄살인범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모든 일에 편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재물 욕심도 사라졌다. 어차피 오래 살 거 아니니까. 이후 나는 내 사주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정말 단명을 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선 별 상관 없을 것 같다. 삶으면 짧은 대로 당연하다 싶고, 길면 남은 인생을 덤으로 생각하고 살면 된다.

 

선생님이 봐준 내 사주에는 어떤 과학적인 근거도 없다. 하지만 그 사주는 이후 내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내가 그렇다고 믿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오후/ ‘믿습니까? 믿습니다’(출판 : 동아시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