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겨울이 왔으니 봄이 멀겠는가

송담(松潭) 2021. 1. 18. 19:38

겨울이 왔으니 봄이 멀겠는가

 

 

영미 시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셸리Percy B. Sholey의 시 < 서풍에 바치는 노래 Ode to the West Wind >의 저 유명한 마지막 구절쯤은 기억하리라, "겨울이 왔으니, 봄이 멀겠는가 If winter comes, can spirg be far behind." 이 시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읽힌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춥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따뜻하고 화사한 나날들이 닥쳐오리니, 그때가 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통상적인 의미와 반대로 해석할 때, 시는 훨씬 더 심오한 의미 맥락을 획득하게 된다고 주장하려 한다. 가령 초점을 미래의 봄을 기다리는 희망에서 현재의 겨울을 안타깝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꿔보라. 그러면 시의 전체 의미는 다음과 같은 맥락으로 환골탈태하게 된다.

 

'우리가 이 겨울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짧다. 곧 봄은 닥치게 되고 그러면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겨울을 시시각각 음미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시인의 마음은 미래가 아니라 자신이 지금 몸담고 있는 현재, 즉 겨울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해석은 터무니없기만 한 것인가.

 

'현명한 인간은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는 전망하며 현재에 충실히 살아간다. 이거야 아주 교과서적인 발언이다. 실제로 이런 균형감을 갖고 현명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드문 것 같다. 사람들은 '놓쳐버린 열차의 아름다움' 에 마음이 쏠려 있거나 '새로 도착하게 될 열차에 대한 상상에 들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서 있는 현재라는 시간의 플랫폼을 바라보지 못하고, 역사(驛舍) 뒤로 늘어선 나무, 그곳에 불어오는 바람, 쏟아지는 햇살, 날아오르는 이름 모를 벌레들을 보지 못한다. '이미 없는 열차'와 ‘아직 없는 열차’ 때문에 현재 있는 플랫폼과 역사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없는 것 때문에 있는 것을 놓치는 셈이다.

 

니체는 현재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삶을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 과거에만 집착하거나 미래에만 매달리는 몽유인을 ‘역사적 인간’이라고 불렀다. 니체는 이 역사적 인간들이 이 지상에서 불행한 삶을 숙명적으로 짊어질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만일 행복해지려 한다면 두 가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망각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다. 망각해야 하는 것은 이미 없는 과거, 아직 없는 미래요. 사랑해야 할 것은 현재 그리고 그 지평 위에서의 삶이다.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여, 겨울이 왔으니 봄이 멀겠는가.

 

하지만 기억해 두라. 삶에는 봄만이 축복받은 계절은 아니다. 겨울도 그 하루하루를 간절하게 느끼며 살아야 할 안타까운 삶의 시간들이다. 그러니 봄이 닥치기 전에 우리는 겨울을 온몸으로 남김없이 느끼고 향유하도록 애써야 한다. 인생에서 아름다운 이 젊음이 사라지기 전에 이 젊음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시간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꽉꽉 차게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왕주 /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중에서

 

 

눈 내리는 날

2020.12.30

 

(2021.1.7)

 

여기에 새(鳥)집이 있다는 사실을 새들은 아직 모른다.

 

 

 

 

겨울을 즐기지 못하는 게으른 사람

 

 

 

올 겨울은 작년보다 춥다. 엊그제 순천에는 새벽 온도가 영하 12까지 내려갔다. 20년 만의 한파 운운했다. 나이드니 겨울이 싫고 추운 날은 동네 멤버들과 새벽운동을 하지 않는다. 겨울이 오자마자 소한(小寒), 대한(大寒), 입춘(立春)이 언제인가를 미리 확인하기도 했다. 겨울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며 세월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남녘의 겨울은 크게 춥지 않는데도 이렇게 움츠리는 것은 몸이 단련되지 않았다는 것과 그동안 온실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런데 우리 마을 원주민들은 모두가 상당히 건강하다. 특히 앞집 아주머니는 칠십대 중반 나이고 몸무게가 아주 가벼우며 허리도 구부러지셨는데 겨울에서 비닐하우스에서 일하시고 강추위에도 장날이면 새벽시장에 나가신다. 그런데도 감기 걸렸다는 소리 한 번 못 들었다.

 

그 강한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오랜 세월 농사일로 다져진 체력이기도 하겠지만 집념과 정신력이 강한 탓이리라. 마늘과 양파는 가을에 심고 이듬해 봄에 캔다. 이런 식물들이 강한 냄새를 풍기고 항암작용을 하는 것은 혹독한 겨울을 견뎠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엉성한 성장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매사를 쉽게 포기하고 어려운 상황을 당하면 야무지고 똑똑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지난 가을, 겨울을 견딘다고 해서 심은 꽃들이 거의 다 맥없이 스러졌다. 그런데 영하의 강추위에 땅이 얼어도 꽃잎이 스러지지 않는 한그루를 발견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하얀 눈에 덮여 보이지 않았는데 눈이 녹으니 노란 꽃잎이 선명하다. 혹독한 겨울을 거뜬하게 이겨내는 앞집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그러면서 “나도 좀 더 강해질 수 없는 걸까?” 생각해 본다.

 

내일 모레가 대한(大寒), 입춘(立春)은 2월 3일이다. 지금은 아직 겨울의 한 가운데 서있다. 겨울을 즐기지 못하고 봄을 재촉하는 나약한 이내몸. 겨울에도 열심히 운동하는사람들이 많은데 나이 듦을 탓하기에는 게으른 자의 구차한 변명이다.

 

(20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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