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아름다움, 내 뒤에 아름다움
보라, 언제나 새로운 날이다! 인디언 천막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이른 아침의 대기와 만날 때마다 나는 그것을 깨닫는다. 눈을 뜨고 바라보기만 하면 언제나 새로운 날이라고! 한겨울의 바람, 봄을 기다리며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 평원으로 난 좁은 오솔길들.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임을 나는 다시금 느낀다.
삶은 어디에나 있다. 나뭇기지 위에도, 작은 개미들의 굴속에도. 북풍한설에 흩날리는 나뭇잎들 속에도 있다. 돌을 들춰 보면 그곳에서 어떤 것들이 움직인다. 그 삶들이 가만히 내 삶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그런 삶을 언제까지나 사랑해 왔다. 내게 주어진 어떤 것도 우연한 것이 아님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 역시 하나의 신비임을 알았다. 숨 쉬고, 걷고, 앉아 있는 것이 모두 신비였다. 자연 속을 거닐거나 이른 아침 평원에 떠오르는 태양을 응시하는 일도 하나의 신비였다. 지평선을 향해 뻗어 내린 산의 곡선들. 바위의 힘찬 굴곡, 물웅덩이에 비친 그림자, 절벽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물줄기들이 우리 자신의 신비와 마주치면 그곳에서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 불행하게 장님이 된 사람조차도 그 신비를 잃지 않았다. 그에게서 온갖 소리들이 그 신비를 알려 주었으므로.
눈을 감고 평원의 오솔길에 앉아 있으면 다양한 형태의 소리들이 우리가 살아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 흘러가는 소리, 작은 벌레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 햇살이 나무 줄기를 부러뜨리는 소리, 나비의 날개가 부딪치는 은밀한 소리, 그리고 침묵의 소리까지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전사가 입술이 하얗게 되고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듯이 홀로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오랫동안 갖지 못한 사람은 그 영혼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다. 그래서 인디언은 아이들을 키울 때 자주 평원이나 산림 속에 나가 홀로 있는 시간을 배려한다. 한두 시간이나 하루 이틀이 아니라 적어도 열흘씩 인디언들은 최소한의 먹을 것을 가지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장소로 가서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은 한 인간이 이 대지위에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기 확인 과정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인간은 신 앞에서 겸허해진다. 자연만큼 우리에게 겸허함을 가르치는 것은 없다. 자연만큼 순수의 빛을 심어 주는 것은 없다.
그가 인디언이든 아니든 누구나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도 자주. 특히 이른 아침이면 홀로 깨어 평원의 어린 안개와 지평의 한 틈을 뚫고 비쳐오는 햇빛 줄기와 만나야 한다. 어머니인 대지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 가만히 마음을 열고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보거나 꿈꾸는 돌이 되어 봐야 한다. 그래서 자기가 대지의 한 부분이며. 대지는 곧 오래전부터 자기의 한 부분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바위는 수세기에 걸친 지혜를 간직하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스승으로 일컬어진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바위를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바위로부터 우리는 내적인 힘과 인내를 배운다. 바위는 잘 움직이지 않지만 한번 움직이면 온 세상이 주목해야 한다.
나무는 우리에게 정직함을 가르쳐 준다. 나무는 뿌리로부터 꽃물을 밀어 올려 가지 꼭대기까지 전달한다. 나무껍질 속을 수액이 흐르듯이 진리가 우리 안에 흘러야 한다. 어떤 나무는 겉은 그렇지만 안은 썩어가고 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똑바르고 아름답고 정직하게 서 있어야 하며, 땅에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中에서 델라웨이 족 글
'공감 Best 20'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엔 ‘혼자’가 되자 (0) | 2020.09.23 |
---|---|
돌담, 그 몽상과 실제의 파타피직스 (0) | 2020.05.24 |
눈꽃 (0) | 2019.12.22 |
봄날은 간다 (0) | 2019.04.30 |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0) | 2019.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