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화가, 김홍도
< 1 >
홍도는 안산에 내려갈 때마다 강세황을 찾아 문안 인사를 했다. 강세황은 심사정의 안부를 물었고, 근황을 알려주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 공부는 잘되고 있느냐?"
"예, 스승님. 그러나 소인의 재주가 부족해서 아직 멀었습니다."
"공부에 끝이 있겠느냐. 그러나 열성을 가지고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게다."
"예, 스승님, 마음을 모아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능아, 산수를 그리면서 산수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
홍도는 그게 무슨 말인가 하고 스승을 바라봤다.
"그렇게 그림만 그리다보면 그림의 정신을 놓치고 재주에만 빠질 수 있다. 내가 이따금 거문고를 만져 곡조를 타면 그 소리에 취해 세찬 여울물이 돌에 부딪히는 듯하고, 더러는 잔잔한 바람이 솔숲에 드는 듯도 하며, 때로는 어부들의 뱃노래 같기도 하고, 조용한 절의 종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거문고 소리 속에서 산과 물과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기운을 따라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림이 거문고 소리가 되고, 거문고 소리가 그림이 되기도 한다."
홍도는 사람의 마음과 통할 수 있는 그림으로 가는 길에는 손과 눈뿐 아니라 귀까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거문고는 단순히 악기가 아니라 분심(分心, 마음이 분산되는 것)을 다잡고 성정을 기르는 악기다. 그래서 풍류를 좋아하는 사대부들 중에서는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언제 시간이 나면 너에게도 가르쳐줄테니 찾아오거라."
"예, 스승님. 고맙습니다. 꼭 가르쳐주십시오.
홍도로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몹시 바라던 바)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강세황의 집을 드나들며 거문고를 배웠다. 거문고 머리를 무릎에 놓는 법, 왼손가락으로 괘(줄 받침)를 짚어 운율을 맞추는 법, 오른손으로 가느다란 대나무로 만든 술대를 쥐고 줄을 처서 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강세황은 담담하고 꿋꿋한 느낌의 우조(羽調)와 슬프고 부드럽고 애절한 느낌의 계면조(界面調)를 즐겨 뜯으며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긴 곡조라 했다. 김홍도는 괘와 괘 사이를 짚는 법을 배워가면서 거문고의 둔탁하면서도 묵직한 소리 속으로 들어갔다.
< 2 >
홍도의 재주를 아끼는 마음이 커지던 어느 날, 심사정이 홍도에게 물었다.
"사능아, 너는 좋은 그림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과 통할 수 있는 그림이 좋은 그림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심사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 생각을 잊지 말고 간직하여라. 그러나 사람의 마음과 통하는 그림을 그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이 다 그리는 그림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사람들이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를 생각하고 궁구할 때라야 가능이한 일이다. 사능아, 나는 네가 사람의 마음과 통할 수 있는 너만의 그림을 그리는 화사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네가 가야할 궁극의 길이다 앞으로 붓을 잡을 때마다 이 말을 잊지 말고 명심, 또 명심하거라.”
홍도의 가슴에 '너만의 그림'이라는 말과 '가야 할 궁극의 길'이라는 말이 박혔다. 스승은 한 가지 더 당부했다.
"사능아. 도화서 화원이 되면 나라에서 그리라는 그림을 그려야 하기에 네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기회는 많지 않다. 너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그려야 한다. 꼭 후세에 이름을 남길 너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 3 >
홍도의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그는 형제 없이 혼자 외롭게 자란 탓에 마음이 여렸다. 그래서 기뻐도 울고, 슬퍼도 울고, 자신이 켜는 거문고 곡조에도 눈물을 흘리곤 했다. 8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동안 눈물도 쉴 새 없이 흘렀다. 심사정이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별제가 기다린다니 빨리 가보아라, 그리고 도화서에서 너희들의 꿈을 펼쳐라. 훌륭한 화원이 되어 좋은 그림을 남기는 것도 잊지 말고.”
"예, 스승님. 명심. 또 명실하겠습니다."
홍도와 인문은 다시 한 번 허리 숙여 절을 하고 사립문을 나섰다. 두 사람은 심사정을 뒤로하고 종종걸음으로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심사성은 뒷짐을 지고 인왕산과 백악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너희들의 시대가 오는구나. 그러나 사대부의 멸시와 천대를 견디는 게 쉽지는 않을 게다. 그래도 버티고 버텨 그들이 마침내 너희의 그림에 칭송의 필적을 남기는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그런 화원이 되어다오’
심사정은 역적의 후손으로 받아야 했던 수모와 '환쟁이'라 불리며 견뎌야했던 모멸을 평생 삼키며 살았다. 그래도 걸출한 제자 둘을 키워냈다는 자부심이 가을 햇살을 따라 그의 가슴으로 들어왔다.
< 4 >
김홍도는 초조하게 스승의 한마디를 기다렸다. 한참 동안 그림을 보던 강세황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능아, 놀랍구나. 이것은 옛적에 없던 솜씨다. 너는 어릴 적부터 그림 공부를 할 때 인물. 산수, 신선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특히 신선과 화조를 잘 그려 그것만으로도 도화서 화원이 될 실력이 충분했다. 그런데 이 속화를 보니 너의 재주가 인물의 표정과 풍속을 묘사하는 데는 더더욱 뛰어나구나. 그 형태를 곡진하게 그려서 어느 한 부분 어색한 데가 없으니, 사람들이 너의 절묘한 재주에 놀라 손벽치며 신기하다고 감탄할 것이다."
옛적에 없던 솜씨라니, 김홍도는 스승의 칭찬에 얼굴이 벌게졌다.
"스승님, 그래도 속화인데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아니다. 너의 속화는 이제까지 내가 본 속화와는 다르다. 네가 화구통을 들고 들어올 때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저잣거리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그려야겠다는 깨달음이 있었기에 이런 독창적인 그림이 나온 것이다. 너의 천부적인 소질과 오묘한 터득 덕분이겠지, 내가 볼 때 이 그림은 왕조 사백 년 동안 이룩한 것 중에서도 새로운 경지다. 정말 장하다. 무릇 그림을 그리는 화사는 모두 종이나 비단에 그려진 것을 보고 배우고 익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력이 쌓이면 비슷하게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 터득하여 독창적인 경지에 이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김홍도는 큰절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방 안에 들어가 저녁도 거른 채 초본을 보며 씨름판에서 본 모습과 표정을 섬세하게 마무리했다.
< 5 >
의원은 탕제를 준비하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심상규도 그렁그렁한 김홍도의 숨소리를 뒤로하고 문을 나섰다.
고요했다. 비가 내렸지만 천둥이나 번개 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직 적막이 흐를 뿐이었다. 김홍도는 아들 양기의 손을 잡았다. 녹아야, 네 손은 따스한데, 아비의 손은 차갑구나. 아비는 도화서 화원이 되고 어용화사가 되면 고달픈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줄 알았다. 그러나 남은 건 늙고 병든 육신뿐이구나. 그림을 원 없이 그렸지만 너에게는 한 점도 남겨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김홍도의 머릿속에서 60년의 삶이 하나 둘 펼쳐졌다. 성포리에서 아버지와 함께 강세황의 집에 가던 일, 《개자원화전》을 열심히 모사하던 일, 노들나루까지 걸어가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심사정의 집으로 가던 일, 이인문과 함께 도화서 화원이 되던 일, 영조의 수작연을 그리던 일, 어용화사가 되어 '수로지은'으로 사재감의 종6품 주부직을 제수받던 일, '삼책불통'으로 파직되는 수모에 얼굴이 화끈거리던 일, 장원서와 사포서 별제가 되었던 일, 그곳에서 강세황을 만나 깜짝 놀라던 일, 속화를 그리러 화구통을 메고 삼청동 계곡과 광통교를 다니던 일, 울산목장 감목관이 되어 목자와 어부의 비참한 삶을 만나던 일, 영조가 승하하자 보불화원이 되어 다시 한양으로 돌아온 일, 강희언의 집에서 주문 그림을 그리며 중인 묵객들을 만나던 일, 강세황으로부터 속화가 대단한 그림이라고 칭찬받던 일, 백운동천 위에 집을 마련하고 당호를 '단원'이라 부르며 기뻐하던 일, 정조의 어진을 그리면서 두 번째로 어용화사가된 일, 동빙고 별제로 일하면서 추운 한강에서 고생하던 일. 안기 찰방에 제수되던 일, 임기를 마치고 한양에 올라와 김응환과 함께 영동 9군과 금강산으로 봉명사행을 떠나던 일, 세 번째 어용화사가 되어 연풍현감에 제수되던 일, 상암사에 올라가 열심히 불공을 드려 아들 양기를 얻었을 때의 기쁨, 파직을 당해 의금부 관원들을 기다리던 일, 방외화사가 되어 김한태의 집에서 그림을 그리던 일, 다시 도화서로 돌아가 <주부자시의도>를 그려 정조의 칭찬을 받던 일, 정조의 갑작스러운 승하소식에 곡을 하던 일, 순조의 수두 완쾌를 기념해서 <삼공불환도>를 그리던 일, 전주에 내려와 추성부도를 그리던 일.....
김홍도는 노적봉 박달나무 숲에 앉아 성포리 앞바다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을 바라봤다. 내가 떠나도 그림은 남을까? 멀리 성포리 어랑에서 풍어가가락이 들려왔다.
넘실대는 파도 위에 어-야-디아-
갈매기 떼 춤을 춘다 어-야-디야-
밀물 썰물 드나드는 깊은 물에-
고기들이 걸렸구나- 어-야-디야-
어-야-디아- 어-기-야-디야-에 - 헤-
김홍도는 가쁜 숨을 내쉬며 아들에게 물었다. 노을이 아직 바다 위에 있느냐고, 아들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 6 >
김홍도 연보
1745년(영조 21년)
경기도 안산 성포리에서 중인 무반 가문의 김석무와 장담 문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 본관은 김해.
1755년(영조 31년) 10세
안산에 거주하던 표암 강세황에게서 그림의 기본인 화결을 배움.
1761년(영조 37년) 16세
이즈음 관례를 하고 자(字)를 '사능(士能)'이라고 함.
비슷한 시기 현재 심사정에게 그림을 배우고 평생의 벗이 될 이인문을 만남.
1763년(영조 39년) 18세
이해 말 즈음 도화서 화원이 됨.
1772년(영조 48년) 27세
첫 번째 아호(雅號)인 서호(西湖)를 사용하기 시작.
1773년(영조 49년) 28세
1월 9일 영조의 어진을 그리는 어용화사에 선출됨.
2월 4일 어진을 그린 공로로 사재감의 종6품 주부에 임명됨.
6월 13일 수령강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사재감 주부직에서 파직당함.
7월 16일 장원서 종6품 별제에 제수.
1775년(영조 51년) 30세
이즈음부터 풍속화를 그리기 시작함,
1776년(영조 52년, 정조 즉위년) 31세
2월 9일 울산목장 종6품 감목관에 임명될
5월 6일 영조 국장의 '구의화보불화원'으로 임명되어 한양으로 올라감.
<군선도(국보 제139호)>
1777년(정조 1년) 32세
풍속화를 많이 그림.
박유성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중인 화원들과 담졸 강희언의 집에 모여 주문 그림을 그림.
1780년(정조 4년) 35세
백운동천 꼭대기 성벽 아래에 집을 마련하고 당호를 단원(檀園)이라고 지음.
1791년(정조 15년) 46세
1월 말 스승 강세황 별세.
9월 22일 정조의 어진을 그리는 어용화사에 선출됨
12월 22일 충청도 괴산 옆에 있는 연풍현의 종6품 현감에 제수.
1793년(정조 17년) 48세
아들 김양기 출생(훗날 화원이 됨).
1795년(정조 19년) 50세
1월 7일 외유사 홍대협이 올린 서계로 인해 정조가 김홍도의 파직을 명함.
1월8일 홍대협의 서계를 검토한 비변사의 보고를 듣고 정조가 김홍도를 의금부로 압송하는 것을 윤허함.
1월 17~18일 정조가 혜경궁의 회갑을 맞아 대규모 사면령을 발표. 김홍도는 1월 18일에 '의금부에서 압송하지 않은 죄인' 명단에 포함되어 사면.
윤2월 28일 현륭원 행차 목판본 의궤 밑그림을그릴 화원으로 선출됨.
이해에 소금 부자 김한태의 집으로 이사.
1800년(정조 24년) 55세
6월 28일, 정조가 48세를 일기로 창경궁 영춘헌에서 승하.
<주부자시의도> (8폭병풍), 《병암진장첩》
1804년(순조 4년) 59세
5월 5일 제자 박유성과 함께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이 됨.
1805년(순조 5년) 60세
천식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듦.
9월 중순 차비대령화원직에서 물리남.
10월 초 제자 박유성의 초대를 받아 전주에 내려감.
12원 19일 이들에게 "월사금을 보내주지 못해 탄식한다. 정신이 어지러워 더 쓰지 않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냄.
12월 20일 전라감사 심상규의 부탁으로 부채에 '일지매'를 그림. 같은 날, 심상규는 자신의 벗 예조판서 서영보에게 “화사 김홍도가 굶주리고 병들어 여기에 왔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냄.
1806년
정월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
이충열 / ‘천년의 화가, 김홍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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