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설이

송담(松潭) 2019. 3. 26. 23:31

 

 심윤경 작가가 쓴 설이를 읽으면서 앞으로 소설을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2002년 제7회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이번에 쓴 설이는 성장소설로는 17년 만이라고 합니다.

 

 ‘설이는 부모한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란 열 세 살의 어린 소녀입니다. 입양과 파양을 여러 번 거쳤는데 작가는 풍부한 상상력과 부드러운 기교, 예리한 촉수로 어린 소녀의 심리와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마치 작가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착각을 느끼게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에 버려진 한 인간의 불운을 간접 경험하면서 그동안 별다른 관심 없이 무심하기만 했던 저 자신은 세상에 대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고뇌와 절망으로 얼룩진 생을 살면서 땅을 짚고 일어서려고 몸부림치는 자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베스트였습니다.

 

 

설이

 

 

심윤경 설이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1 >

 

 나는 태어나자마자부터 선생님들과 같이 살았다. 함께 자라던 아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항상 바뀌었다. 어떤 호칭을 들었을 때 변함없이 떠올릴 수 있는 얼굴이 없었다. 엄마 아빠라는 단어가 검은 동굴처럼 두려움을 주는 막막한 어둠이었다면 할머니 동생 삼촌처럼 혈육을 칭하는 말은 아예 아무런 의미나 형태를 가지지 않는 백색 평면이었다.

 

 동그라미를 그리려면 흔들리지 않는 중심점이 꼭 있어야 한다. 이모는 내가 어떤 호칭과 관련지어 변함없이 떠올릴 수 있게 된 이 세상 단 한 명뿐인 사람이었다. 이모는 내가 풀잎보육원에 처음 오던 날 우연히 그곳에 들렸고 그곳에서 아기들을 돌볼 일손이 필요하다는 말에 자원봉사자로 일하기 시작했다가, 나중엔 작은 월급을 받으며 눌러앉았다. 내가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늘 풀잎보육원에 있었고 원장님이 풀잎보육원을 떠난 뒤로는 위탁모가 되어 나를 아예 집으로 데리고 왔다.

 

 마른 들풀 같은 이모를 우주의 중심으로 삼아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TV를 볼 때면 당연하다는 듯 이모의 무릎을 베고 누웠고 이모는 참외를 깎아 내 입에 넣어주며 내 볼을 쓰다듬었다. 푸석푸석하고 부숭부숭한 이모의 손바닥이 내가 아는 인간의 감촉이었다. 이모가 아니었다면 나는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호칭들 속에 따뜻함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기운이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 2 >

 

 나는 이모에게서 한 번도 뭐를 해라, 하지 마라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모는 내가 뭘 하는지도 잘 몰랐고, 내 일이면 다 좋은 거려니 생각했다. 이모가 내 친부모가 아니라서 사랑과 관심이 부족해서 그랬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이모는 나에게 퍼부어준 그 많은 미소, 언제나 든든하게 안아준 팔뚝, 내 곁에서 하얗게 새운 많은 밤들, 그리고 내가 입양과 파양을 거듭하며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돌아올 때마다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내가 돌아온 그곳에 있어주었던 긴 세월, 친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이모가 나에게 준 것이 그보다 하찮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짧은 생각에 대해 훗날 지옥에서 알맞은 훈계를 받아야 한다.

 

 < 3 >

 

 그새 나는 못된 아이가 되어서 행복아파트의 허름한 출입구와 이모네 낡은 세간살이가 눈에 거슬렀다. 숲과 강을 끼고 있는 고급빌딩 48층에 살았던 지난 몇 달 사이에 눈이 높아져버린 것이다. 부자의 삶과 가난한 삶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조금은 맛을 보았다고 해도 좋다. 물론 나도 사람이니까 뭐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쪽이 더 좋다.

 

 하지만 이곳에 녹아 있는 진한 자유의 향기, 내가 무엇을 해도 별 관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 느긋함은 저녁 식탁에 앉을 때마다 무엇을 배웠고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꼼꼼하게 물어보는 시현이네 가족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시현이네 집에 있을 때 시현과 나는 항상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기분이었다. 어른들의 관심은 항상 우리에게 있었고 시선은 끊어지지 않았다. 눈부신 조명 아래 숨을 곳이라고는 없었다.

 

 < 4 >

 

 시현이 이모네 집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나는 시현이네 집에서 살아보았지만 시현이는 이모네에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 허름함의 첫 충격을 극복하기만 하면 시현은 스마트폰 아니라 무엇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곳을 좋아할 것이다. 하루 종일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춤동작을 연구할지도 모른다. 곽은태 선생님 부부가 꿈꾸는 시현의 미래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될지도 모르고 나는 그런 시현의 미래에 대해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달콤한 무심함을 시현에게 한 숟갈만 떠먹여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가정에서 자란 시현이 단 하나 가지지 못한 바로 그것.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인 부모 밑에서 누리는 내 마음대로의 씩씩한 삶 말이다.

 

 < 5 >

 

 나는 내가 왜 우는지 스스로도 잘 몰랐다. 숨도 쉬기 힘들 만큼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 마음은 안 우는데 몸이 혼자 우는 희한한 상태였다. 내 몸 깊은 곳에서 폭약이 터지듯 울음이 터져 나왔고 마음의 냉기로는 도저히 그 폭발을 잠재울 수 없었다. 그냥 나는 저항할 수 없이 울었다.

 

 사랑과 욕심, 감사와 미움처럼 극과 극으로 다른 것이 그 경계조차 알 수 없을 만큼 한 덩어리로 합쳐진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원래 그렇게 뒤섞여 있는 거라는 결론으로 끝나는 게 분하고 억울했다. 내 인생을 다 바쳐서라도 그것들을 한 겹 한 겹 발라내 각각의 요소로 분리해놓고 싶었다. 온통 뒤섞인 감정들의 무더기 속에 화사한 사랑과 감사는 맨 거죽에 겨우 한 줌뿐, 뒤로는 시커먼 욕심과 날선 미움들뿐이었다고 세상에 목청껏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 폭발적인 눈물은 원장님과 나 사이에 사랑과 감사가 겨우 한 주먹은 아니었다고 소리 없이 속삭였다.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웠다. 사랑과 감사가 욕심과 미움이 각각 얼마큼인지 따지는 건 의미 없다고, 하나하나 발라내서 확인하려면 어쩌면 내 인생을 다 털어 쓰고도 모자랄 만큼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소리 없이 속삭였다.

 

 눈물은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린 것을 향한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모두 실어 떠나보내라고 흐르는 투명한 강이었다. 사랑인지 욕심인지 감사인지 미움인지 집착하느라 피가 나도록 움켜쥔 두 주먹이 강물 속에서 스르르 풀렸다. 나는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가는 맑은 물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모두 떠나보내고 그저 울 때였다.

 

 그렇게 통곡의 강물에 몸을 맡기고 서 있자 조금씩 평화로운 기쁨이 찾아들었다. 원장님의 납골당에서 울지 않겠다는 건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새해 첫날 납골당을 찾은 가족들이 우리 말고도 여럿 더 있었지만 그 어떤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우리만큼 엄청나게 통곡하지 않았다. 이건 왠지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원장님은 저세상에서 이 순간을 기뻐하셨을 것이다. 울고 있는 내 마음속에 미움과 사랑과 포기가 각각 얼마큼인지 따지지 않고, 분명히 그러셨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뽐내기 좋아하셨던 그분을 나는 잘 안다. 뽐낼 것이 없어진 노년에는 화를 잘 내고 어두운 분이 되었지만 뽐낼 것이 많았던 시절에는 잘 웃고 활기찼다. 그리고 나는 우쭐우쭐 뽐낼 때 가장 아름다웠던 그분을 사랑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물기를 빼내서 우리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우리는 벽을 짚고 걸어야 했다. 온몸이 파삭파삭한 마른 종이가 된 기분으로 이모와 나는 서로를 부축하고 휴게실에 앉았다. 둘 다 두꺼비처럼 눈이 붓고 목이 컥컥 메어서 애써 싸온 김밥엔 손도 대지 못했다. 보온병에 싸온 따뜻한 된장국만 몇 번 홀짝거리며 하얗게 얼어붙은 겨울 정원을 내다보다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얼굴을 때리는 쨍한 추위가 퉁퉁 부은 얼굴을 가라앉혀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버스에 나란히 앉아서 이모가 속삭였다.

 

 “ 설아, 우리가 제일 많이 울지 않았니?"

 “.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 방을 들여다볼 지경이었다니까

 “원장님도 기뻐하셨을 거야. 그깟 가족이 무슨 대수냐

 “맞아, 우리가 제일 많이 울었으니까.”

 이모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좀 전까지 몸부림치며 통곡한 것이 생각할수록 기특해서 히죽히죽 웃었다.

 “이모, 난 아직도 속상해, 원장님이 기부금을 많이 받아서 우리가 잘살 수 있었다고 하지만 난 그 거짓말이 정말 싫어. 돈을 돌려주고서라도 아닌 거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6 >

 

나는 시현을 데리고 아파트 뒤쪽으로 향했다. 우리 아파트 뒤편에는 지하실 출입구가 있었다. 사철 어둡고 습해서 꺼뭇꺼뭇한 이끼가 앉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단단히 틀어막힌 지하실 출입문 옆으로 버려진 폐자재를 방수 비닐로 아무렇게나 덮어둔 으슥한 무더기가 있었다. 시현은 호기심을 가지고 내 뒤를 따랐다. 나는 폐자재 무더기를 덮은 비닐 포장 모퉁이를 살짝 들추어 안쪽을 보여주었다.

 

뭐야?”

.”

 

층층이 쌓여 있는 오래된 나무판 틈새로 빛나는 두 눈이 보였다. 경계심 많은 어미 고양이는 죽은 듯이 아무 기척도 내지 않았지만 제법 다리에 힘이 붙어 비틀비틀 돌아다니던 아기 고양이들은 고개를 길게 빼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 온 고양이용 참치캔을 까서 나무 틈새 아래로 살그머니 밀어 넣어주었다.

 

예쁘다 몇 마리야?”

다섯 마리.”

네가 키우려고?”

엄마 고양이는 자기가 다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제일 약한 새끼들을 두고 떠나. 사람들한테 대신 키워달라고 부탁하는 거지. 내가 잘 키워줄 거야.”

 

우리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놓고 떠나가듯이 나를 풀잎보육원 앞 모퉁이에 두고 갔을 것이다. 이모와 원장님은 우리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한 사람은 악착같이 기부금을 받고, 한 사람은 하염없이 사랑을 주었다. 이제는 그 일이 기분 나쁘거나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에게도 자식을 키우는 건 몹시 힘든 일이라서 곽은태 선생님처럼 훌륭한 사람조차 완전히 길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가 그분들께 나를 맡긴 건, 비록 스스로 키우지 못했지만 좋은 결정이었다.

 

어미 고양이는 낯선 사람에게 은신처가 발각되었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떠난다. 우리는 어미 고양이의 성미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지하실 앞을 떠났다. 고등어 등짝을 연상시키는 멋진 회색 줄무늬의 어미 고양이는 전성기 때의 나처럼 아이라인이 진하고 노란 눈이 날카롭다. 나에게 몇 번이나 통조림을 얻어먹었지만 경계를 풀지 않고 사납게 하악질을 한다. 어미 고양이가 나에게 어떤 아기를 줄까? 어미를 닮은 회색 줄무늬 아기 고양이가 나에게 오면 좋겠다. 호랑이처럼 멋진 놈으로 자랄 것이다.

 

 

 < 7 >

 

 이모는 설날 새벽에 버려진 아기를 사랑했다. 그 아기가 바로 나였다. 그것이 기적 같은 일이었다는 걸 이제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모가 당연해서 감사하기는커녕 값없고 하찮게 느껴졌고, 다른 아이들이 가진 젊고 세련된 진짜부모들이 부러워 입술을 삐죽거렸다. 어버이날 감사 편지는 항상 원장님께 썼다. 이모의 몫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이모는 아무 불만이 없었다. 복잡한 조건법 시제 따윈 없이 나는 그렇게 사랑받았다. 별다른 감사조차 없이 당연하게 받아먹었던 그 소박하고 따스한 사랑이 기적인 걸 이제 알았다.

 

 풀잎 위에서 자란 것도 괜찮았다. 그 풀잎을 지키려 애썼던 원장님의 투쟁과 이모의 순박한 사랑 그리고 참을 수 없이 싫었던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그 무엇도 빼거나 더할 수 없이 하나인 것을 이제는 알겠다. 많이 흔들렸지만, 나는 엄마가 나를 내려놓은 그곳에 두발로 섰다. 그것을 생각하면 자꾸 콧대가 높아졌다. 새해 첫날 나는 언제나 얼굴을 찌푸리고 지냈는데, 이렇게 웃으며 맞이한 새해는 처음인 것 같았다.

 

 “너도 같이할래?"

 “?‘”"

 “공연.”

 

 이런.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위대하신 곽시현, 우상초등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졸업식 날 아이돌댄스 공연을 하는 건 알겠는데, 그 무대에 나더러 같이 가자고?

 

 추위를 핑계 삼아서 우리의 춤은 더욱 과감해졌다. 우상초등학교의 롤러코스터 같았던 6개월, 처음 들어갈 땐 납작 엎드려 눈에 보이지 않게 버티다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기 만을 소망했지만, 엄마가 나를 풀잎보육원 앞에 내려놓았던 그 밤의 별자리엔 누구보다 떠들썩하게 초등학교를 졸업할 팔자가 아로새겨져 있었던 모양이다. 흔들리는 풀잎 위에 내 두 발로 섰듯이, 나는 우상초등학교의 사악한 슈퍼스타 시현과 졸업 무대에 설 것이다. 우상초등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졸업식에서 아이돌댄스 공연을 하는 아이가 될 것이다. 나의 무모함에 모두 놀라겠지만, 공연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시현을 잊을 것이다. 나는 춤출 것이다.

 얼어붙은 추위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귓가엔 음악이 흐르고 있다.

 나는 어디에도 설 수 있다.

 나는 춤추고 있다.

 

심윤경 / ‘설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