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저마다의 꽃술이 있다
접시꽃이나 나리꽃처럼 꽃술 모양이 밖으로 돌출된 것은 화려해 보이고 치자꽃이나 민들레꽃처럼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는 것은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영산홍이나 옥잠화처럼 꽃술이 가느다란 것은 섬세해 보이며, 초롱꽃과 둥굴레처럼 고개를 숙여야만 볼 수 있는 꽃술은 겸손해 보인다. 백일홍이나 해바라기 꽃술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촘촘히 붙어 있어서 친밀하고 다정한 결속력이 있어 보이고 얼레지나 달개비꽃(닭의장풀)은 꽃잎보다 오히려 꽃술이 더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날마다 꽃밭에 나가 꽃술을 보며 묵상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모른다. 마침 주변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로 내적 어둠과 갈등을 겪으며 우울해 있던 나에게 ‘꽃술 순례’는 큰 위로가 되어줬다. 꽃들 안에 감추어진 꽃술을 향해 가다가 꿀을 먹는 꿀벌을 만나기도 하고 꽃들의 주변을 맴도는 나비나 새를 만나 이야기도 하면서 산책하니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공동체에서 함께 사는 이들의 겉모습이 하나의 꽃이라면 겉만 보고 잘 알 수 없는 그들의 내면이 꽃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양한 모습을 한 여러 꽃이 저마다의 다른 꽃술을 지니고 있듯 사람 또한 그러하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을 있는 그 모습으로 존중하고 인정할 때 참된 우정과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못할 적이 많아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성격이 급하고 날카로워 보여 다가가기 힘들지만 그 속을 잘 들여다보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지혜와 분별력의 예리한 꽃술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꽃술은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정리해주는 명쾌함이 있다. 어떤 사람은 매우 느리고 답답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모든 이를 차별 없이 감싸 안는 포근한 사랑의 꽃술로 위로를 준다. 어떤 사람은 덜렁대고 말이 많아 보여도 그것은 부분적일 뿐, 항상 주위를 밝고 환하게 만드는 명랑함의 꽃술로 기쁨을 준다. 또 어떤 사람은 무뚝뚝하고 재미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깊고 어진 심성을 지니고 있어 신뢰를 주며, 어떤 일이 닥치면 희생과 책임감의 꽃술로 의리를 지킨다.
그러니 나와 다른 여러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숨어있어 못 보았던 그들의 장점과 특성을 잘 발견해 기쁨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매일매일 다시 걷는 삶의 길 위에서 오늘도 나는 함께 생활하는 사람꽃들, 나의 도반인 꽃들에게 밝고 맑은 동심을 새롭게 꽃피우며 이렇게 말을 건네고 싶다.
너는 꽃이니?
나도 꽃이야
너는 나랑
다르게 생겼지만
참 예쁘구나
나비나 꿀벌이오면
너도 기쁘니?
바람이 불면
무슨 생각하니?
달 뜨고 별 뜨면
무슨 생각하니?
나하고 친구하자
서로의 다름도 기뻐하면서
살아 있는 모든 날을
더 예쁘게 사랑하자. 우리
-이해인,<꽃이 되는 기쁨> 전문
시간을 사랑하는 영성
내가 살아 있기에
새롭게 만나는 시간의 얼굴
오늘도 나와 함께 일어나
초록빛 새 옷을 입고
활짝 웃고 있네요
하루를 시작하며
세수하는 나의 얼굴위에도
아침 인사를 나누는
식구들의 목소리에도
길을 나서는
나의 신발 위에도
시간은 가만히 앉아
어서 사랑하라고 나를 재촉하네요
살아서 나를 따라오는 시간이
이렇게 가슴 뛰는 선물임을 몰랐네요
- 이해인, <시간의 선물> 전문
누구라도 세월이 주는 변화는 막을 수가 없고 이 무게를 선물로 받아 안아야 평화가 찾아옵니다. 거울을 자주 보진 않지만, 얼굴의 주름과 흰머리가 말해주는 나의 노년을 깊이 실감할 때가 있습니다.
성당이나 식당에 앉아 까마득한 후배들을 바라보면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느끼곤 합니다. 빨리 가는 시간에 대한 불평과 탄식을 새로 오는 시간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삶의 지혜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대체 시간이 왜 이리도 빨리 가는지!’라고 푸념하고 싶을 때 나는 ‘가기도 하지만 다시 오는 시간이 얼마나 고마운지!’라고 바꾸어 말해봅니다.
어느새 인생의 오후를 살고 있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새로 오는 시간이 고맙고 소중하고 다시 한 번 사랑할 기회를 선물 받은 기쁨에 새삼 설렐 적이 많습니다. 게으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없지 않지만,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오늘의 나를 지탱해주는 힘입니다.
일상의 길 위에서 한 번이라도 더 감사하고, 한 번이라도 더 웃고, 한 번이라도 더 용서하는 수련생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내게 오는 시간을 새롭게 사랑합니다.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입니다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입니다'라는 이 말을 나는 요즘도 강연 중에 자주 인용한다. 독자들이 책에 사인을 요청해도 이 구절을 많이 적어 주곤 한다. 아주 오래전 내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갔을 적에 어느 날 친지들이 안내하는 선물의 집에 들른 일이 있다. 거기서 조그만 크기의 책갈피를 하나 사게 되었는데 그 안에 적혀 있는 바로 이 글귀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rest of your life(오늘은 그대의 남은 생애의 첫날입니다)’
그 순간 이 글이 내 마음에 어찌나 큰 울림을 주었는지!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 위로를 주는 멋진 메시지로 다가왔다. 그래서 평소에 늘 “오늘이 마지막인 듯이 살게 하소서!” 하던 기도를 “오늘이 내 남은 생애의 첫날임을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라고 바꾸어서 하게 되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왠지 슬픔을 느끼게 하지만, ‘첫날’이라는 말에는 설렘과 기쁨을 주는 생명성과 긍정적인 뜻이 담겨 있어 좋다.
오늘도 새소리에 잠을 깨면서, 선물로 다가온 나의 첫 시간을 감사하였다.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시간, 새로운 기회를 더욱 잘 살리도록 노력해야지’ 하고 다짐하였다. 해야 할 일을 적당히 미루고 싶거나 게으름을 부리고 싶을 적엔 나 자신에게 충고한다.
‘한 번 간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아요. 정신을 차리고 최선을 다하세요. 성실하고 겸손하게!’
이해인 / ‘기다리는 행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