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스님’이 못하면 ‘재가 불자’가 나서야
불교의 수계의식은 엄숙함을 넘어 장엄하다. 10계를 받는 사미·사미니의 수계든, 250계 비구계와 348계 비구니계를 받는 비구·비구니의 구족계 수계의례든 마찬가지다. 수계의식 때면 밤을 꼬박 새워 3000배를 한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세속의 질긴 인연을 끊고 스님으로 살아가려는 다짐의 결정체다. 연비의식도 치른다. 촛농을 물들인 삼베실의 불이 살갗을 태운다. 오직 부처님 법대로 살겠다는 발원의 상징이다. 부모도 속세도 등진 불제자가 초발심을 잊지 않게 연비는 팔뚝에 귀한 상처까지 남긴다.
아무나 스님이 되진 못한다. 인간의 본능마저 거스르는 ‘독한’ 이들이다. ‘우파니샤드’ 경구처럼 버림으로써 영원하고 청정한 진리를 얻는 이들이 스님이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실천자들이다. ‘잡아함경’에서처럼 마음의 밭을 갈기에 불자들은 기꺼이 시주하고 두 손 모아 고개 숙인다.
이 땅의 스님이라면 누구나 초발심을 내고 운수납자의 길을 잡았다. 그 스님들의 공동체이자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이 볼썽사납다. “견지동 정치가 여의도 정치를 뺨친다”는 뒷말이, “해도 너무한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총무원장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 스님의 근기(根機)가 문제이든, 조계종 정치의 희생양이든, 이름난 문중 선승의 민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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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자 스님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재가불자들이 나설 수 있다. 최근 월정사에서 열린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전국동문대회에서는 “종단의 무능함을 보았다”며 “파사현정의 정신으로 범계비리승을 축출하고 권승카르텔을 해체하는 인적청산과 사부대중의 평등한 참종권 부여, 수행과 재정의 분리, 총무원장 직선제 등 제도개혁”을 추진한다는 결의문이 채택됐다.
무엇보다 한국불교의 갈 길을 ‘승가공동체’가 아닌 ‘재가공동체’에서 찾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정의평화불교연대가 연 포럼에서는 “대만의 거사불교운동처럼 종단 바깥에 청정한 불교를 만들고, 종단에 대한 불복종운동, 시주 거부운동 전개”까지 제안됐다. 청나라 말 중국에서 일어난 거사불교운동은 기득권 스님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거사들이 나섰다. 그 영향을 받은 대만불교는 지금 다양한 재가공동체가 활성화돼 대승불교 정신을 널리 퍼뜨리고 있다. 재가불자가 스님에게 종속된 게 아니라 불법을 펴는 불교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 몫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출가자 중심이 아닌 재가자 중심의 ‘종단’이 세워질 수도 있다. 종교적 청정성, 도덕적 정당성이 더 반듯한 쪽으로 사람들은 모인다. 신심 깊은 불자가 만나고자 하는 것은 ‘스님’이 아니라 ‘부처’요, 얻고자 하는 것은 ‘스님법’이 아닌 ‘부처법’이기 때문이다. 충남 당진으로 귀촌한 불교신자 지인이 전화를 했다. “신도증 반납했어요. 이젠 절, 스님 말고 서산 마애삼존불을 찾으려고요.”
도재기 / 문화에디터
(2018.8.24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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