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미신에 빠져드는가
이미지 출처 : 서울신문
빨간색 펜으로 이름 쓰기
빨간색으로 사람 이름을 쓰면 안 된다. 모두가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죽는다, 혹은 그 사람의 엄마가 돌아가신다는. 물론 미신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빨간색으로 이름을 써본 경험이 있습니까? 그래서 확인해본 적 있습니까?
저는 이 미신과 관련해서 인생 경험이 있습니다. 미국에 연구원으로 처음 유학을 갔을 때 얘기입니다. 첫날 대학교에 서류를 제출하는데, 행정 직원이 제 이름을 빨간색 펜으로 적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어, 왜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세요? 검은색 펜을 줄까요?” 했더니 그분이 저를 황당한 표정으로 보면서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안 되나요?”라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죽습니다!" (웃음) 그랬더니 그분이 황당한 표정으로 장난치지 말라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제 이름을 빨간색으로 쓴 거죠.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찜찜했습니다. 그날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 거예요. 아, 이번 미국 생활은 망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빨간색이라도 영어로 이름을 썼으니 괜찮지 않을까? (웃음) 별의별 생각이 다 났습니다. 그러다가 새벽 무렵, 갑자기 오늘의 제 행동, 빨간색 이름에 대한 제 태도, 그리고 이렇게 하루 종일 찜찜해했던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졌습니다. 과학자라는 인간이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라는 미신에 휘둘려 이렇게 평정심을 잃은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비과학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안 된다고 믿고 있을까요? 다양한 가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진시황 때 중국에서는 빨간색이 너무나 귀한 색이어서 왕만 쓸 수 있었다는 설입니다. 그래서 왕이 아닌 사람이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왕을 모욕하거나 자신이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진시황이 다 죽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지 않는 풍습이 지금까지 내려왔나는 거죠.
미신(迷信, superstition)이란 인과관계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비이성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믿음 혹은 그것을 믿는 행위이지요. 그러니까 현실과학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데도, 이성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데도 우리는 이런 것들을 오랫동안 믿고 살았습니다. 대개 미신은 행운 혹은 불행과 관련이 깊습니다.
우리 주변의 미신들
서양인들이 한국에 와서 황당하게 여기 는 미신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숫자 4가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고 죽음을 연상킨다고 해서 엘리베이터 층 표시가 1, 2, 3, F로 되어 있지요. 너무 흔해서 이상하지도 않으시겠지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온 나라가 이걸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것이 말이에요 아예 건물에 4층이 없는 경우도 봅니다.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라거나, 사랑하는 연인에게 신발을 선물하면 떠난다거나, 우리는 오늘도 이런 유의 미신을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옛날부터 어르신들이 믿었던 금기들이 많죠. 밤에 휘파람이나 피리 불면 무슨 일이 벌어지죠?" 뱀이 나와요!(웃음) 집 근처에서 뱀 보신 분 있으십니까?(웃음) 인도에 사시나요?(웃음) 밖에 손톱 깎으면 왜 안 되나요? 손톱을 깎으면 종종 엉뚱한 곳으로 튀는데, 쥐가 그걸 먹으면 내 영혼이 쥐한테 간다고들 하죠..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 아닙니까? 영혼 이동설? 그 현장을 너무나 관찰하고 싶은, 일부러 밤에 쥐에게 손톱을 먹이는 실험을 하고 싶어지는 흥미로운 미신입니다. 앉아서 다리를 떨면 복 나간다. 테이블 모서리에 앉으면 안 된다. 베개는 세우지 마라. 밥에 숟가락을 세워서 꽂으면 안 된다. 이런 말대로라면 우리나라는 도처에 위험이 산재해 있는 나라입니다. (웃음) 여차하면 뱀이 나타나고, 쥐가 영혼을 앗아가고, 죽거나 불행이 닥칠 상황들이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는 위험천국이에요.
별거 아닌 재미로 본다는 미신이 연인을 갈라놓기도 합니다. 궁합이 나쁘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가끔 봅니다. 부모가 자식의 결혼을 반대하는 강력한 명분이 되기도 하지요. 심지어 궁합이 나쁘다는 말 자체가 연인의 사랑을 식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요.
마녀사냥은 바로 이런 근거 없는 속설이 만들어낸 대규모 학살이었습니다. 15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 유럽에서는 최소 20만 명의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누군가를 마녀로 몰면 그 협의를 벗어나기가 어려웠어요. 마녀로 몰리면 스스로 자신이 마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지요. 그 당시의 마녀 구별법은 여성을 물에 빠뜨려보는 것이었습니다. 마녀는 물에 뜬다고 믿었거든요. 결국 여성들은 물에 빠져 죽거나 물에 뜨는 경우 화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무려 300년 동안 죄 없는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마녀사냥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인 믿음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이 희생당한 사건은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으로 벌어져 왔습니다.
미신 경제학이라는 말이 나올 정 도로 미신 관련 산업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합니다. 세금을 내거나 국가의 규제를 받는 것도 아니어서, 미신 산업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수조원대 규모가 아닐까 추측할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미신이 '재미' 이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미신에 빠지는 이유
우리가 미신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전에 중요한 개념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우리가 평소 일상에서 자주 범하는 실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바로 제1종 오류(type 1 error)와 제2종 오류(type ll error)입니다. 제1종 오류는 아닌 것을 맞다고 판정하는 오류, 없는데 있다고 판정하는 실수, 즉 기각해야 할 가설을 채택하는 오류를 말합니다. 환자를 진단해서 암이라고 판정을 내렸으나 사실은 암이 아닌 경우, 임신을 안 했는데 임신이라고 판정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이를 긍정 오류(false positive)라고도 합니다. 사실은 아닌데, 맞다고 판단하는 식의 오류인 거죠.
반면 제2종 오류는 맞는 걸 아니라고 판정하는 오류, 있는데 없다고 판정하는 실수, 채택해야 할 가설을 기각하는 오류를 말합니다. 부정 오류(false negative)라고도 하지요. 그러니까 암에 걸렸는데 안 걸렸다고 잘못 판단하는 상황, 임신을 했는데 안 했다고 잘못 진단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사실은 맞는데 아니라고 판단하는 실수인 거죠.
우리는 살면서 이와 같은 종류의 실수를 종종 범합니다. 그런데 제1종 오류와 제2종 오류 중에서 어떤 실수가 우리 삶에 더 치명적일까요?
우리의 뇌는 제1종 오류보다 제 2종 오류에 훨씬 민감합니다. “뱀이 나타났다!” 같은 외침에 매번 반응하도록 우리 뇌는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생존에 절대적으로 민감한 겁쟁이들의 후손입니다. 뭔가 길쭉한 것만 보면 “어 저거 혹시 뱀 아니야?"라고 의심하고 조심했던 조상들은 뱀에 물리지 않고 자식을 낳아서 우리를 만들어 냈고요. "야! 뱀이 어딨…… 윽!" 이렇게 대범했던 조상들은 뱀에 물려서 다 죽었어요. (웃음) 자식을 못 만들었어요. 우리는 어떤 인간들일까요? “저거 뱀일지도 몰라” 하면서 늘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현상에 민감한 겁쟁이들인 겁니다. 우리 인간은 이런 겁쟁이 뇌를 수 만년 전에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복잡한 현대사회, 굉장히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회에서도 정글에서나 통할 법한 규칙들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는 거죠.
미신에 친화적인 ‘뇌’
회의주의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셔머는<믿음의 탄생(The Believing Brain)>이라는 책에서 신경과학자 수전 블랙모어(Susan Blackmore)의 이론을 빌려 우리 뇌에 믿음 ‘엔진(belief engine)’이라는 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블랙모어에 따르면, 초자연적인 현상을 쉽게 믿는 사람들일수록 무작위 패턴 속에도 의미 있는 패턴이 존재한다고 믿고 자연의 무작위적인 패턴을 보면서도 신의 메시지를 읽습니다. 누구나 믿음 엔진을 가지고 있는데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미신을 쉽게 믿는 분들은 강력한 믿음 엔진을 뇌에 장착하신 분들이죠.
미신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쉽게 믿는 사람들은 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를 절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려는 메시지로, 즉 자기중심적으로 파악하려는 특징이 있습니다. 파프리카를 딱 잘랐는데 그 단면에서 우울한 모습을 발견하면 ‘어, 나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려나. 신이 계시를 내린 것 같아. 나 오늘 밖에 안 나갈 거야..’ 이런 유의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아, 하늘에 구름이…… 다음 대통령은 링컨을 닮으려나, 왜 이런 구름이 뜨는 거지? 어, 지금 저거, 신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같지 않나? 나만 본 건 아닌가?' 이러고요.
우리 뇌에는 도파민(dopam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습니다. 뇌 전역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이 화학물질은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라 불리는 뇌 영역에서 아주 흥미로운 역할을 합니다. 바로 무작위적인 패턴 사이에서 어떤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는 역할이지요.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뱀을 발견하는 능력, 사막의 모래언덕 사이에서 도마뱀을 찾아내는 능력, 숲속에서 군복 입은 군인을 찾아내는 능력은 이곳에서 비롯됩니다.
만약 전대상피질에 도파민이 부족하면 패턴을 잘 발견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제2종 오류를 범할 확률, 패턴이 있는데 보지 못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뱀이 바로 앞 풀숲 사이에 있어도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도파민 분비가 적절하면 패턴을 잘 찾을 뿐 아니라 창의적으로 패턴을 해석하기도 합니다. 복잡한 패턴 사이에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발견하는 창의 적인 예술가 혹은 과학자는 전대상피질의 도파민이 제구실을 잘하는 분들인 겁니다. 그런데 만약 이곳의 도파민 분비가 지나치면, 무작위적인 패턴에서도 쉽게 특정 패턴을 ‘만들어’ 발견하게 돼요. 예를 들어 코카인이라는 마약은 도파민 상승제(dopamine agonist) 역할을 하는데, 코카인을 섭취하면 없던 패턴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현증 환자처럼 도파민 분비가 과도한 경우에는 환청, 환상, 강박 등 존재하지 않는 것을 듣거나 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 분들에게 도파민 억제제 (dopamine antagonist)를 투여 하면 증세가 완화됩니다. 아직 진실은 잘 모르지만 미신을 쉽게 믿는 분들의 뇌에선 전대상피질의 도파민 분비가 지나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운세가 살아지는 날
제가 꿈꾸는 사회는 주요 일간지에서 오늘의 운세가 사라지는 사회입니다. 오늘의 운세 믿나요? 다들 안 믿으시죠. 그런데 오늘의 운세가 나오면 안 봅니까? 있는데도 안 보시나요? 안 믿지만 있으면 보죠. 그것이 비합리의 시작입니다. 주요 일간지에서 오늘의 운세가 사라지는 날을 꿈꿔 봅니다. 궁합이나 사주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의지와 노력으로 우리의 행복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으면 합니다. 합리적인 사회를 우리 함께 만들어갑시다.
정재승 / ‘열 두 발자국’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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