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고전주의 이상을 음악으로 실현하다

송담(松潭) 2018. 8. 23. 11:45

 

고전주의 이상을 음악으로 실현하다

모차르트 Vs  하이든

 

 

 

 

 교향곡의 아버지 히이든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밑에서 일하는 31년 동안 수많은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교향곡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평생 100곡 이상의 교향곡과 70여 곡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다고 하니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도 하지요.

 

 하이든은 왜 그토록 교향곡을 좋아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교향곡이야말로 고전주의의 이상, 즉 균형과 조화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 형식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향곡은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독주 악기를 위해 작곡된 소나타관현악으로 연주하는 작품입니다. 소나타와 마차가지로 1악장은 빠르게, 2악장은 느리게, 마지막 악장은 아주 빠르게 연주하며 3약장에는 대개 미뉴에트 같은 3박자의 춤곡을 넣는 것이 기본적인 형태이지요. 이처럼 분위기와 빠르기가 다른 곡들을 번갈아 연주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교향곡은 당시에 유행하던 고전주의 정신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장르였습니다.

 

 

자유를 갈망한 모차르트

 

 31년 동안 궁정악단에서 일한 하이든과 달리 모차르트는 어느 한 군데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잘츠부르크 궁정 음악단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잠시 일하기도 했지만 그는 곧 그곳을 나와서 독립된 음악가로 활동했습니다.

 

 모차르트가 여느 음악가들처럼 궁정이나 귀족 밑에서 일하지 않은 것은 귀족들이 음악가들을 하인처럼 다루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온화한 하이든과 달리 모차르트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자존심이 매우 강했던 것입니다.

 

 또 유럽 사회의 변화도 음악가의 독립을 부추기는 요인이었습니다. 모차르트가 성인이 될 무렵, 18세기 후반의 유럽은 정치·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폭풍과도 같은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된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왕과 귀족은 힘이 약화된 반면 중산층 시민은 힘이 강화되었습니다. 이미 상업으로 많은 돈을 번 중산층 시민들이 공장을 세워 더 많은 돈을 벌어들임으로써 왕과 귀족들보다 더 큰 부자가 된 것입니다.

 

 경제력을 갖게 된 시민들은 왕과 귀족에게 무조건 복종하던 과거의 사회제도를 비판하고 평등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더 이상 왕과 귀족 밑에서 하인 대우를 받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경제적인독립을 통해 예술가로서 자존심을 찾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하이든은 마지막 궁정 음악가였고, 모차르트는 고용된 신분에서 독립적인 음악가로 가는 과도기에 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보다 14년 뒤에 태어난 베토벤 시대부터는 음악가들이 왕이나 귀족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게 되었으니까요.

 

 

 모차르트의 오페라

 

 모차르트는 35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소나타와 협주곡, 교향곡과 오페라 등 매우 다양한 장르의 곡을 수없이 작곡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오페라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빈으로 나와 자유인이 된 이후 모차르트는 오페라 <후궁 탈출>과 피아노 협주곡 등을 작곡했습니다. 이즈음 모차르트는 고전주의 정신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고전파 음악을 확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기 모차르트는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꿈꾸면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타락한 귀족들을 비웃는 내용의 <피가로의 결혼>이나 <돈 조반니> 같은 작품은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이 두 작품은 이후에 만들어진 <마술피리>와 함께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로 꼽힙니다.

 

 

 

 

 

 고전주의 음악을 완성하다

 

 천재 소년 모차르트와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 하이든은 서로 다른 과정을 거쳐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비록 환경은 달랐으나 두 사람은 당시 유럽을 휩쓸기 시작한 고전주의의 이상을 음악으로 실현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형식과 내용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통해 완벽한 아름다움을 실현하려는 고전주의의 이상은 전체적인 조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형식으로 나타났는데, 그 결과 음악에서는 소나타와 화성악 등이 발달했습니다.

 

 소나타는 바로크 시대에도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기악곡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쓰였습니다. 그러다가 고전주의 시대에 와서 일정한 형식을 일컫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소나타 형식은 1720년대에서 18세기 중엽에 걸쳐 유럽 각지에서 활약했던 음악가들이 점차 완성한 형식으로, 1780년대 이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작품에서 완숙한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하나의 악곡에는 하나의 주제만 표현하는 단일 주제성이 특징이었지만 서로 다른 것의 조화를 추구하는 고전파에서는 여러 가지 주제를 두고 재미와 다양함을 추구했습니다.

 

 즉, 서로 다른 분위기를 가진 세 부분 -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 - 이 각각 완결성을 갖되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통일을 추구한 것입니다. 대개 제시부는 밝고 빠른 느낌으로 연주되다가 전개부에서는 차분하고 느린 곡조로 바뀌고 다시 재현부에서는 제시부의 밝은 느낌으로 돌아갑니다. 고전주의 교향곡 작품들은 대체로 1악장이 소나타 향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소나타 형식은 '1악장 형식이라고도 불립니다.

 

 소나타 형식은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의 바탕이 되는 형식으로 고전주의 음악을 대표하게 되었고, 이 소나타 형식의 완성을 통해 서양 음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봉건제도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던 습성을 버리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앞서 말한 것처럼 조화와 통일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음악도 합리성과 조화를 추구하는 쪽으로 변화했습니다.

 

 바로크 시대에 유행하던 복잡한 대위법을 버리고 주 멜로디에 화음 반주를 넣어 조화를 이루는 음악을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음악은 화음, 즉 화성으로 만들었다 하여 화성음악homophony’이라고 불렀는데, 바로크 시대의 다성음악과 달리 주된 멜로디가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까지 협주곡은 주로 합주 협주곡, 즉 독주 악기군과 관현악이 대립하는 형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오면,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를 대등하게 놓고 다채롭게 대비하는 형태가 많아졌습니다. 이 또한 서로 다른 것이 조화를 이루는 고전주의의 이상이 낳은 변화였습니다.

 

 교향곡은 다악장 형식의 관현악곡입니다 원래 신포니아라는 것은 오페라·칸타타·오라토리오 등 여러 곡으로 이루어진 성악곡을 연주하기 전에 순수한 기악곡으로 연주하던 것이었는데,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 독립적인 다악장의 곡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형식상으로는 피아노 소나타 등 많은 악곡이 3악장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교향곡은 현악 4중주곡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4악장입니다 구성은 보통 소나타 형식의 빠른 악장인 제1악장, 조용한 느낌의 제2악장, 미뉴에트 또는 스케르초의 제3악장, 그리고 론도 또는 소나타 형식의 매우 빠른 악장인 제4악장입니다.

 

 ‘금난새의 클래식 여행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