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음악을 화려하게 꽃피우다
바흐 Vs 헨델
고전 음악의 모태, 바로크
바흐와 헨델이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리게 된 것은 근대 서양음악의 발전에 가장 앞장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학하게 말하면 이들은 고전파 음악의 바탕을 마련했습니다. 고전파 음악의 밑거름이 된 이 시대를 사람들은 '바로크 시대'라고 부릅니다. 바흐와 헨델은 바로크 시대를 완성한 장본인이었습니다.
바로크란 16세기부터 약 1세기 반에 걸쳐서 유행한 예술의 경향을 일컫는 말입니다. 바로크라는 말은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바로코baroco’에서 유래했습니다. 왜 하필 ‘일그러진 진주’냐고요?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이 새로운 스타일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하겠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문화란 없습니다. 달이 차면 기울듯이 한 가지 문화 양식이 번성한다 싶으면 언젠가는 싫증이 나고, 기존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양식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바로크도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바로 전 시대에 유럽을 휩쓸었던 르네상스 열풍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르네상스가 퇴조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이 유행하자 르네상스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뒤틀리고 일그러진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바로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탐험 시대가 낳은 흐름, 바로크
그렇다면 바로크 예술, 바로크 음악은 어떤 걸까요? 흔히 바로크라고 하면 웅장하고 거대한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늘높이 솟은 교회 지붕 그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엄숙하고 장중한 오르간 소리같은....
르네상스 시대가 끝나고 바로크 예술이 등장한 데에도 그럴 만한 배경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럽 사회의 변화였지요. 바로크가 꽃피던 시기, 다시 말해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약150년 동안 유럽 사회는 급격하게 변화를 겪었습니다.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변화는 탐험과 항해 시대의 도래였습니다. 1492년 인도를 향해 떠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탐험 행렬이 마젤란과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세계일주로 이어지면서, 베일 속에 숨어 있던 지구의 모습이 차츰차츰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탐험 시대의 도래는 인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선 항해술이 발달했고 이어 천문학과 과학의 발달이 뒤따랐습니다. 또 동서양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서양인들이 동양의 자원을 약탈하기 시작했고, 이는 훗날 제국주의로 발전하게 됩니다. 세계가 넓고 크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취향도 달라졌습니다. 건축물은 더욱 크고 넓고 높아졌고, 음악과 미술도 장엄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바로크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한편 지동설과 뉴턴의 만유인력의 발견으로 이어진 천문학 혁명은 과학은 물론 철학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던 종교적 사고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과학적 합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종교에서도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15세기에 부패한 가톨릭을 비판하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이 유럽의 전 지역에 뿌리내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개신교로 불리는 새로운 교회는 권위적인 가톨릭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얻었습니다. 불안해진 가톨릭은 갈수록 덜어지는 권위를 되찾기 위해 성당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보다 더 크고 웅장하게... 이처럼 바로크는 권위를 되찾으려는 가톨릭의 의도와 탐험시대에 달라진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장엄하고 웅장한 스타일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크 음악의 특징
바로크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성악 중심에서 기악 중심의 음악으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성가대의 반주로나 쓰이던 기악 음악이 독자적인 곡으로 연주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음악가들은 이때부터 오르간과 바이올린, 쳄발로 둥 악기로만 이루어진 곡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물론 기악 음악에 대한 음악가들의 관심이 커진 덕분도 있었지만, 악기가 발달한 것도 중요한 계기입니다.
악기의 발달은 이 시기에 새롭게 나타난 대규모 연주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왕궁이나 귀족의 거실에서 몇몇 사람을 모아놓고 연주할 때는 그다지 많은 악기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수백 명을 모아놓고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악기의 종류도 다양해야 하고 수도 많아야 했던 것입니다. 건반 악기로는 파이프 오르간보다 휴대하기 간편하고 연주하기 쉬운 쳄발로가 발명되었고, 바이올린·비올라·첼로 등 바이올린족 악기들도 생겨났습니다.
악기가 다양해지면서 자연히 기악 음악이 발전하게 되었고, 악기로만 연주하는 기악 형식인 토카타·푸가·소나타 등이 등장했습니다. 또 대규모 극장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되면서 많은 악기들을 함께 연주하는 협주곡도 발달했습니다.
바로크 이전에는 거의 성악과 종교 음악이 중심이었습니다. 음악은 대개 교회의 예배용으로 작곡되었고, 기악은 성악의 반주로나 쓰였습니다. 자연히 음악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신을 찬미하고 경배하는 수단으로 여겨졌고, 기악에 대한 관심이 적은 만큼 악기도 발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 곳이 바로 앞서 말한 17세기 이탈리아였습니다. 종교 음악이 아닌 세속 음악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했고, 그 대표적인 예가 오페라였던 거죠.
바로크 시대는 ‘다성음악 polyphony’의 시대라고 일컬어집니다. 다성음악이란 두 개 이상의 독립된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 방법인 대위법對位法을 활용한 음악입니다. 대위법이라는 말은 ‘점 대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서 점이란 음표를 의미합니다. 즉 두 개 이상의 성부聲部를 결합하면서 서로 다른 선율을 동시에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잘 안 간다고요? 그렇다면 바흐나 헨델의 음악을 한번 들어보기 바랍니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나 헨델의「메시아」같은 곡을 자세히 들어보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곡과는 다른 느낌이 들 것입니다. 주요 멜로디와는 별개로 동시에 연주되는 멜로디 때문인데요. 이처럼 다성음악은 독립적인 멜로디가 동시에 연주되기 때문에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만든 화성음악에 비해 복잡한 느낌을 줍니다.
다성음악이 발달하면서 통주저음, 토카타 등 여러 종류의 기법이 등장했습니다. 바로크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손꼽히는 통주저음은 즉흥성이 강한 연주법으로, 주요 멜로디가 연주될 때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저음의 화음을 만들어서 연주하는 방식입니다 이 연주법은 바로크 시대에 크게 유행하다가 바로크가 쇠퇴하면서 사라져 바로크만의 독특한 음악 양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푸가 등의 기반이 되는 대위법은 오늘날에도 독립된 작곡 기법으로 남아 있습니다.
‘금난새의 클래식 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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