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반격
우리가 어떻게 제4차 산업 허명 시대에 행복할 수 있을까, 좀 더 인간적으로 살 수 있을까를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흥미로운 책 한 권을 소개해드리려 하는데요, 바로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가 쓴 <아날로그의 반격 The Revenge of Analog>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색스가 말한 '아날로그의 반격' 현상이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습니다. LP 레코드로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카페들이 성행하고, 작은 동네서점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중심가로부터 떨어져 있거나 주택가에 있는데도 애써 찾아가는 마니아층도 상당합니다. 아마도 음악과 책 향기 속에서 나와 취향이 비슷한 동시대인들과 소통하고 싶어서이겠지요.
제 지인 중에는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목공’을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 취미로 즐기는 경우가 부쩍 늘었습니다. 만년필을 사용하는 학생들, 수제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젊은이들도 많이 늘었고요. 폴라로이드나 로모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인터넷 게임이 아니라 직접 만나서 즐기는 보드게임도 유행이 된 지 오래입니다.
아날로그의 반격 현상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제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왜 사람들은 아날로그를 다시 찾는 걸까요? 아마도 그것을 ‘복고의 귀환’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요? 인간은 행복을 ‘상태’로 인식하지 않고 ‘기억’에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시엔 힘들였지만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으로 뇌 속에 저장됩니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과거의 한 순간에서 애써 찾지만, 당시에 그 시간이 행복인지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행복으로 덧칠된 복고의 기억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시대가 바뀌어도 종종 소환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때가 참 좋았지.”하면서 말입니다. 실제로, 미국 작곡가 오스카 레빈 이런 말을 했습니다.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색스는 아날로그의 반격 현상을 복고의 귀환이 아니라 디지털 문명의 반동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결핍은 욕망을 낳는다고 했지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잠자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소셜미디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아날로그의 결핍은 욕망과 동경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디지털은 우리에게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디지털만으로 궁극의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아날로그 경험을 통해 '진짜 세계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노력이 아날로그의 반격을 만들어낸 동력이라고 설명하는 겁니다. 그의 말이 맞다면, 이제 우리는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만이 아니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디아밸)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주장이 아날로그 시대를 향수처럼 추억하는 중년 세대에게나 통하는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린 것처럼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일치되고 두 세계가 빠르게 뒤섞인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점점 불분명한 세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LP를 재생하는 소음이 아날로그적인가요, 음악회 현장의 관객 숨소리까지 재생하는 블루레이가 더 아날로그적인가요. 3D프린터로 만년필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게 더 아날로그적인가요? 우리가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지요. 특히나 태어나서 처음 읽은 책이 애플리케이션 동화이고 이북(e-book) 교과서로 세상을 배운 세대들에게는 아날로그 결핍으로 인한 욕망 자체가 결핍돼 있을지 모릅니다.
아날로그 반격의 기원을 ‘아날로그가 대면접촉을 늘리고 사회성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목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이 1937년부터 75년간 800여 명을 대상으로 추적 조사해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행복과 건강의 핵심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였다고 합니다. 배우자·가족·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맞다면, 아날로그 경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대면접촉과 사회적 관계 맺기를 증진시키는 경험이 중요한 거지요. 어릴 때부터 친구가 아니어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는 걸 충분히 경험한 세대는 관계 맺기에 서툴고 타인과의 대화, 논쟁, 화해, 설득의 경험이 부족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이별 통보를 문자메시지로 하는 건 매너가 없어서가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고 이별을 말할 사회성이 부족해서인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아날로그의 반격을 충분히 설명하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디지털 문명이 대면접촉을 줄였다는 증거가 불명확하고요. 우리의 사회성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광범위하고 느슨한 구조로 바뀌었을 뿐 사회성 자체가 부족해진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족관계는 붕괴하고 있지만 친구, 반려동물 등과 대안가족을 만들고 있으며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장착된 로봇으로 사회적 관계 맺기가 확장될 것입니다.
로봇은 그 자체로 아날로그이지만 그 안에 디지털이 장착되면서 우리의 사회성 또한 확장되고 있습니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가 아니라 ‘반려동물, 로봇 등 누구와든 사회성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해질 것이다’가 맞는 답일 겁니다. 그렇다면 사회성의 갈구만으로는 아날로그의 반격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제가 가장 신뢰하는 아날로그 반격에 대한 기원 가설은 ‘뇌와 몸의 균형’을 향한 갈구입니다. 디지털은 뇌만 자극하지만, 아날로그는 몸도 자극합니다. 디지털 문명 세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현대인의 뇌는 지나치게 많은 자극을 받는 반면 몸을 쓰고 반응하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몸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뇌가 그것을 해석하고 결정하면, 다시 몸이 세상에 적용하는 일상적 경험을 우리는 회복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워라밸만큼이나 몸(바디)과 뇌(브레인)의 균형, 즉 ‘바브밸’을 중시해야 합니다. 디지털 문명이 우리를 뇌와 손가락만 발달한 E.T로 만들지 않도록, 아날로그 경험을 통해 몸의 자극과 반응에 균형을 잡아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날로그의 반격이 반갑습니다.
정재승 / ‘열 두 발자국’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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