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헨델과 바흐의 평행이론

송담(松潭) 2018. 7. 19. 14:27

 

헨델과 바흐의 평행이론

 

 

헨델과 J.S. 바흐의 초상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동시대를 살아간 같은 독일 출신의 음악가였습니다. 그래서 헨델을 가리켜 음악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흐의 수식어인 음악의 아버지는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으로, 구글에서 'Father of music'을 검색하면 결과 창에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나오고 위키피디아의 바흐 섹션 링크가 뜨지만, "Mother of music'을 검색하면 결과 창에 게오 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이름은 찾기 힘들뿐더러 바흐를 검색했을 때와 달리 위키피디아 링크도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는 음악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일본에서 붙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왜 이런 호칭을 헨델에게 붙인 걸까요?

 

 헨델이 바흐에 견주어지는 데는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독일의 음악가라는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두 사람이 걸은 길은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바흐는 평생 교회음악을 작곡하며 교회에 소속되어 일했고, 헨델은 하노버 궁정, 영국 궁정, 그리고 영국 궁정에서 나온 이후에는 극장주가 되어 극장을 경영했습니다. 사생활도 무척 대조적입니다. 바흐는 두 번의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아내들만 바라본 반면, 헨델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냈습니다.

 

 두 사람의 음악 스타일도 차이가 큽니다. 바흐는 정적이며 고요한, 전형적인 교회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아무래도 바흐가 교회에 소속된 음악가였기 때문에 그의 음악 성격도 교회음악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겠죠. 하지만 헨델은 인기에 부합하는 음악을 주로 만들었습니다. 궁정에서 활동하다 보니 화려하고 밝은 분위기의 음악을 많이 작곡했고, 대중적인 인기를 끌만한 작품,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같은 곡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흐의 음악을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끼는 사람도 이런 두 사람의 작품 성격의 차이 때문인지 헨델의 음악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접하곤 합니다.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등을 포함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분이라면 매년 부활절마다 들을 수 있는 할렐루야도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 나오는 합창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두 사람의 인생이 비슷하게 흐른 적이 있었습니다. 헨델의 오르간 스승이었던 북스테후데는 헨델을 사위로 삼아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려 했었는데, 바흐도 사위로 삼아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바흐와 헨델 모두 그의 제의를 거절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했죠. 그리고 두 사람의 죽음 직전의 모습도 무척 비슷했습니다. 두 사람 다 만년에 백내장이 생겼는데, 존 테일러라는 돌팔이 의사가 수술한 후 실명했고 그 이후 사망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인생을 살아간 두 사람이기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호칭이 붙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어쨌건 두 사람 다 바로크 음악의 마지막 세대로 활동했고, 그 덕분에 고전파에 이어 현대음악까지 음악의 역사가 흐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류인하 / ‘이지 클래식중에서

 

 

 

진지한 바흐 vs. 대중적인 헨델

 

 바흐와 헨델의 음악은 똑같이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아주 다릅니다. 일생 동안 교회의 연주자나 음악 감독으로 살았던 바흐가 본질적인 요소에 충실하면서 단순한 진리와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면 헨델은 왕과 왕비의 후원을 받아 온갖 기교를 살린 오페라 공연으로 화려한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맛으로 친다면 바흐 음악은 깔금 단백한 맛으로, 헨델은 온갖 양념이 가미된 특별한 맛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사실 두 사람이 사는 시대에는 작곡가 자신의 개성을 살린 음악을 만들기 어려운 조건이었습니다. 그 당시 음악가들은 귀족에게 고용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용주가 주문하는 대로 일정한 형식에 따라 음악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두 사람의 음악은 개성을 나타냈습니다. 음악의 형식을 응용하는 스타일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헨델은 다 카포da capo형식의 음악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다 카포란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형식입니다. 작곡가는 조금만 작곡해도 되니 좋고, 청중은 좋은 멜로디를 거듭 들으면서 익힐 수 있어서 좋았지요. 헨델은 오페라를 작곡할 때 다 카포를 마음껏 활용해 톡톡히 재미를 보았습니다.

 

 헨델이 '다 카포'로 편안하게 돈을 벌고 있을 때 바흐는 사서 고생을 했습니다. 엄지손가락까지 써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방법에 매달린 끝에(그전까지는 오르간을 연주할 때 엄지손가락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르간과 하프시코드의 일인자가 되었고, ‘푸가형식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헨델은 비교적 쉬운 방법으로 화려한 음악을 만들어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바흐는 마치 수학 공식을 대입하듯 엄격하고 절제된 음악을 만들어 당시에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헨델은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바흐는 헨델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헨델은 독일 변두리의 교회 학교에 틀어박혀 있는 바흐의 존재 따위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운명은 100년 후, 바흐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역전되었습니다. 완전히 묻혀버릴 뻔했던 바흐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대선배의 뒤를 이어 라이프치히에서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활동하던 멘델스존이었습니다. 음악학자이기도 했던 멘델스존은 바흐의 음악에 감탄한 나머지 사라진 악보들을 찾아내어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만일 멘델스존이 바흐 음악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도 오늘날 인류의 가장 위대한 보물로 손꼽히는 그의 음악도 영영 사라져버리고 말았겠지요?

 

헨델의 수상음악

 

 헨델이 조국 독일로 들이가지 않고 영국에 주저앉은 것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영국으로 가기 전에 헨델은 독일 하노버 왕조 선제후의 악장으로 있었는데, 영국에 눌러앉아 선제후의 미움을 샀습니다. 그런데 영국의 앤 여왕이 죽자 독일의 그 선제후가 조지 1세로 영국 왕위에 오른 것입니다. 헨델의 입장에서는 난처하기 짝이 없었지요. 고민하던 헨델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습니다. 국왕이 템스 강에서 물놀이를 하는 날, 자신이 작곡한 관현악곡 수상음악을 연주한 것입니다. 조지 1세는 갑자기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자 시종에게 무슨 음악이냐고 물었는데, 헨델이 자신을 위해 바친 곡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노여움을 풀었다고 합니다.

 

 ‘금난새의 클래식 여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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