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송담(松潭) 2018. 7. 10. 20:47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길을 잃은 여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라 트라비아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동백꽃 여인>을 원작으로 한 <라 트라비아타> 는 베르디 오페라를 통틀어, 아니 세상의 모든 오페라를 통틀어 가장 자주 상연되는 작품입니다. <트라비아타>는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853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초연되었습니다.

 

 트라비아타Traviata'정도를 걷지 않고 옆길로 새다travare'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여성 명사입니다. ‘길을 잘못 든 여자', '타락한 여자'라는 뜻이지요. 제목에서부터 우리는 주인공의 정체성 혹은 운명을 예감할 수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잘못된 길을 가게 한 것일까요. <라 트라비아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품의 배경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비올레타의 실존 모델, 마리 뒤플레시스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 발레리는 마리 뒤플레시스 Marie Duplessis. 1824-47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뒤플레시스의 본명은 알퐁신 플레시스로, 1824년 프랑스 노르망디 남부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사제와 매춘부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착한 사람이었지만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고, 뒤플레시스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뒤플레시스의 아버지는 어린 딸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돈을 벌어오라며 세탁소에서 고된 육체노동을 하도록 시키는가 하면, 수시로 어린 딸을 늙은 홀아비에게 팔아넘기는 짓을 저지르곤 했습니다. 견디다 못한 뒤플레시스는 아버지의 마수로부터 벗어나 파리로 와서 여관과 양장점 등을 전전합니다. 뒤플레시스는 남다른 미모를 지닌 여성이었습니다. 키가 크고 늘씬했으며 검은 머리에 달걀형의 갸름한 얼굴, 크고 검은 눈을 지녔지요. 그녀는 어느 식당 주인의 눈에 띄어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의 정부가 되어주는 대신 후원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녀는 물질에 대한 욕망에 눈을 떴고, 곧 그 욕망은 후원자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당시에는 코르티잔이라 불리는 고급 매춘부들이 존재했습니다. 코르티잔 courtesan이란 권력이 있는 사람들의 대저택court에 초대된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시작詩作에 능하고 노래와 춤 등 재색을 갖춘 19세기 유럽의 코르티잔들은 권력자들의 애인이나 정부로서 파티에 공개적으로 참석하곤 했습니다.

 

 뒤플레시스가 코르티잔으로 변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아제노르 드 귀슈라는 젊은 귀족이었습니다. 매우 매력적인 남자였지요. 금발의 곱슬머리인 이 장신의 꽃미남은 지적 수준도 높았습니다. 그가 뒤플레시스와 만났을 때 두 사람의 나이는 각각 스물한 살, 열여섯 살에 불과했습니다.

 

 이 젊은 귀족은 뒤플레시스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사교계의 총아였던 그는 야생화 같은 뒤플레시스를 잘 교육시키면 완벽한 여인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는 뒤플레시스에게 개인 교수를 붙여주어 피아노와 무용을 배우도록 했습니다. 물론 비용은 모두 그가 부담하고요. 뒤플레시스는 머리도 영특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모든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고 예술적으로도 뛰어난 자질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방대한 양의 책을 구입하여 탐독했습니다. 또한 귀족사회의 세련된 에티켓과 매너를 몸에 익혀 누구와도 능숙하게 대화를 해나갈 수 있게 되었지요.

 

 그녀는 이제 알퐁신 플레시스라는 본명을 버리고 마리 뒤플레시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합니다. 뒤플레시스는 당시 코르티잔 가운데 가장 교양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고, 수많은 작가와 철학자, 음악가들이 그녀와 대화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당대의 거장 프란츠 리스트도 뒤플레시스와 교류했던 명사들 가운데 한 명이었지요.

 

 아제노르 드 귀슈가 마리 뒤플레시스를 탄생시킨 사람이었다면,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피스는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한 최초의 남자였습니다. 뒤마 피스가 그녀와 사귀었을 때는 작가로 명성을 떨치기 전이었습니다. 뒤마 피스는 소설 <삼총사><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서자이기도 합니다.

 

 뒤마 피스가 뒤플레시스를 처음 본 것은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였습니다. 그는 오페라를 관람하러 온 뒤플레시스의 우아한 자태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이 문학청년은 마리 뒤플레시스에게 연정을 품고 그녀의 살롱에 드나들기 시작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뒤플레시스가 각혈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녀가 폐병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연민을 느끼고 뒤플레시스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합니다.

 

 그때까지 남자의 진정한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던 뒤플레시스는 이 문학청년에게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지요. 두 사람은 곧 동거를 시작해 신혼과도 다름없는 꿈같은 시간을 보내지요.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한 달 만에 끝납니다. 파리 사교계에서 여신처럼 추앙받던 뒤플레시스는 재력 있는 남자들의 후원을 받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려왔습니다. 스폰서들은 말을 좋아했던 그녀에게 곧잘 명마를 선물하곤 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벤틀리나 롤스로이스 같은 명차를 선물받는 격이었지요.

 

 가난한 문학청년 뒤마 피스는 그렇게 화려한 생활에 젖어 있던 뒤플레시스를 경제적으로 만족시켜줄 수 없었습니다. 뒤플레시스 역시 뒤마 피스만 바라보고 살아갈 여자는 아니었지요. 뒤플레 시스는 다시 예전처럼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뒤마 피스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뒤마 피스는 참다못해 이별의 편지를 남깁니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만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부자도 아니고, 당신이 원하는 만큼만 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가난뱅이도 아니야.....”

 

 부르주아의 왜곡된 문화가 낳은 코르티잔

 

 뒤플레시스와 같은 코르티잔은 대부분 신분이 낮거나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코르티잔이 되기 전에는 그리제트'라 불리는 존재로서 생활했습니다. 시골에서 파리로 무작정 상경한 10대 소녀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묘사했듯이 소녀들은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거나 몸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비참한 생활을 했지요.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집시들과 다를 바 없는 신세였습니다.

 

 소녀들이 공장에서 작업할 때 입었던 회색 치마를 그리제트라 불렀는데 이 이름이 그대로 그들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제트는 공장 노동자로는 살아가기 힘들어 몸을 팔기도 했습니다. 미모가 출중한 그리제트는 행여 돈 많은 부르주아의 눈에 띄어 그들의 정부가 되면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로레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로레트라 불리게 된 것은 이들이 파리의 로레트 성당 부근에 있는 무도회장을 활동 본거지로 삼았기 때문이지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에 나오는 여주인공 미미도 병에 걸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다시 로레트의 생활로 돌아가지요.

 

 로레트 중에서 재색이 뛰어난 이는 코르티잔으로 신분 상승을 하게 됩니다. 코르티잔은 돈 많은 부르주아나 귀족의 후원금을 받아 밤마다 파티를 여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19세기에 활약한 프랑스 배우 사라 베르나르도 코르티잔이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가 실제로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 연극인 <동백꽃 여인>에서 주인공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영화 역사의 초창기에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던 스타였습니다. 사라 베르나르와 동시대를 살았던 세계적인 디자이너 코코 샤넬도 코르타잔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파리의 마지막 코르티잔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녀가 샤넬 브랜드의 로고로 동백꽃을 채택한 것은 전설적인 코르티잔인 마리 뒤플레시스에 대한 오마주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요.

 

 코르티잔으로 화려한 생활을 누리던 뒤플레시스는 당시로서는 불치병이었던 결핵을 앓았고 스물셋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뒤플레시스와 헤어진 후 외국으로 여행을 떠났던 뒤마 피스는 옛 연인의 사망 소식을 한참 뒤에야 들을 수 있었지요. 죽은 뒤플레시스의 집을 방문하여 남다른 감회에 젖은 그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편의 소설을 씁니다. 바로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이 되는 <동백꽃 여인>입니다. 좀 더 뒤에 뒤마 자신이 각색한 동명의 희곡은 연극으로 제작돼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기는 했지만 작품의 내용은 픽션이어서 사실과 다른 면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작품 속의 주인공은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외롭게 죽어가지만 뒤플레시스는 많은 사람이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프란츠 리스트는 명의를 보내 치료를 받게 해주었고, 몇몇 후원자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그녀를 보살폈습니다.

 

 <동백꽃 여인>을 보고 동병상련을 느끼다

 

 베르디가 뒤마 피스의 원작을 접한 것은 파리에서였습니다. 소설을 각색한 연극을 스트레포니와 함께 관람한 뒤 깊은 감명을 받았지요. 그리고 곧바로 오페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사회적으로 버림받는 주인공에게서 베르디는 스트레포니를 보았습니다.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른 여자로 낙인 찍혀 공개적으로 베르디와 결혼하지 못하는 처지였던 스트레포니도 주인공의 이야기에 공감했지요.

 

 주로 역사물을 창작해온 베르디는 그 즈음 옛이야기가 아닌 동시대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있던 터였습니다. <리골레토>에서 곱사등이 광대를 통해 당시의 타락한 귀족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던 베르디는 후속작인 <라 트라비아타>에서도 당대의 사회상을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대성공을 거둔 원작과는 달리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큰 비난을 받으며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우선 캐스팅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주인공을 맡은 가수의 풍만한 몸이 폐병으로 죽어가는 비올레타 역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역사물에 익숙한 관객들에 현대 의상을 입장인물들이 낯설었던 것도 실패의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에게는 자신들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는 이 오페라가 달갑지 않았고요. 당시 유럽의 부르주아 사회는 물질 만능주의와 형식적인 결혼, 코르티잔과의 문란한 성생활이 만연한 상태였습니다. <라 트라비아타>는 그런 어두운 면들을 적나라하게 들춰냈을 뿐 아니라 자신들에게는 한낱 노리개에 불과한 코르티잔을 귀족들의 왜곡된 문화에 희생된 가련한 여성으로 부각시키기까지 했으니 거부감을 가졌지요. 코르티잔은 남성을 통해 사교계의 권력과 재산을 거머쥘 수 있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천대받는 신분이었습니다.

 

 베르디는 비올레타라는 비운의 캐릭터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작곡에 임했습니다. 그래서 여주인공이 온전히 부각되는 여주인공을 위한 오페라를 탄생시켰지요. <라 트라비아타>는 소프라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한 이른바 프리마돈나 오페라입니다. 비올레타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 가수는 리리코와 스핀토, 드라마티코, 콜로라투라를 넘나들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쉴 틈이 거의 없기 때문에 체력도 좋아야 하지요. 공연의 성패가 소프라노의 역량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올레타를 연기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프라노라고 말할 정도로 <라 트라비아타>는 소프라노들에게는 선망과 도전의 대상이지요.

 

 초연 실패 후 수정을 거쳐 이듬해에 다시 무대에 올린 <라 트라비아타>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어울리는 가수로 여주인공을 교체하고 시대배경을 1700년대로 옮기는 등 공연의 완성도를 높인 것이 주효했습니다. 그 후 <라 트라비아타>는 감동적인 음악으로 관객의 심금을 울리며 유럽을 열광시킵니다.

 

  (...생략...)

 

라 트라비아타 3막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3

 

 1막의 전주곡에서 등장했던 비올레타의 죽음을 나타내는 주제선율이 3막의 전주곡에서 다시 흘러나옵니다. 1막의 전주곡이 비극적인 사랑의 시작을 알렸다면 3막의 전주곡은 사랑의 종말을 알립니다.

 

 이른 아침, 비올레타의 침실, 비올레타는 침대에 누워 있고, 병간호를 하던 하녀는 난로 옆에서 졸고 있습니다. 의사가 찾아와 비올레타를 진료합니다. 의사는 비올레타에게 회복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비올레타는 의사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의사는 돌아가면서 하녀에게 비올레타의 생명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고 귀띔합니다.

 

 창밖이 떠들썩합니다. 사육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비올레타는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는 이 시간에도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하녀에게 남은 돈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말하지요. 하녀가 나간 후 비올레타는 가슴 속에 품고 있던 편지를 꺼내어 읽습니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의 편지입니다. 편지에는 알프레도가 듀플 남작과 결투를 벌인 후 외국에 잠시 피신해 있으며, 비올레타의 갸륵한 희생을 알게 되었고, 곧 비올레타를 찾아갈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그러나 비올레타는 이미 늦었다며 탄식합니다. 거울에 비친 창백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그녀는 지난날을 쓸쓸히 반추합니다.

 

 안녕, 지난날의 행복한 꿈이여

 이미 사라진 장밋빛 내 뺨이여

 알프레도의 사랑도 이젠 없네

 내 영혼을 위로하고 돌봐주소서

 오,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격려해주소시

 신은 나를 용서하고 거두어주시리

 아 모든 게 끝나버렸네

 이제 모든 게 끝나버렸네

 

           - 아리아 <안녕, 지난날의 꿈이여>

 

 밖에서는 살아 있는 것들의 생명을 노래하는 합창으로 떠들썩한데, 어두운 방 비올레타의 생명은 껴져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마치 <카르멜>의 마지막 장면(투우장의 축제 분위기와 카르멘의 죽음)처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비극을 강조합니다.

 

 하녀가 황급히 들어와 비올레타에게 알프레도가 도착했음을 알립니다. 곧 지친 모습의 알프레도가 들어오고 두 사람은 뜨거운 포옹을 하며 재회의 기쁨을 나눕니다.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에게 파리를 떠나 새로운 생을 시작하자고 노래합니다. 이에 화답하며 비올레타 역시 그런 희망을 노래해 보지만 이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알프레도에게 성당에 가자면서 일어서지만,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비올레타는 다시 소파에 쓰러지고 맙니다. 알프레도가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아버지 제르몽과 의사가 황급히 들어옵니다, 제르몽은 들어오자마자 비올레타를 자신의 며느리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바올레티는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면서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죽게 되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제르몽은 바올레타에게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용서해달라고 말합니다. 비올레타는 알프레도가 좋은 여자와 안연을 맺기를 기원합니다. “꽃다운 나이의 참한 여자가 나타나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세요. 내 마지막 소원이에요. 이 초상화를 보여주면서 그녀에게 말해주세요. 하늘에 오른 어떤 여인이 천사들 가운데서 그녀와 당신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고...”

 

 이 마지막 말을 남긴 후 고통이 사라진 행복감을 느끼며 비올레타는 숨을 거둡니다.

 

 ‘금난새의 오페라 여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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