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
법정 스님에게 어느 신도가 물었다. “스님 세상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법정 스님 왈 "인간관계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혼자 살기 위해서 심산유곡 귀신도 살기 어려운 깊고 깊은 산중을 찾아다니며 평생을 부처님과 살았던 분이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이다.
그분은 강원도 산골 옛 화전민이 버리고 떠난 외딴 오두막에서 개울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호롱불 밑에서 글을 쓰며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자연의 오케스트라 삼아 속인의 눈을 피해 홀로 고행의 수도 생활을 했던 특별한 스님이었다.
그렇게 세속을 피해 홀로 고행했던 스님이 인간관계가 제일 어렵다고 하니 속세에서 온갖 이해관계와 충돌하면서 사는 속인들은 오죽하겠는가.
인간만이 약속을 하고 산다
이 세상에 숨 쉬고 사는 수많은 동물 중 인간만이 약속을 하고 산다. 사람 다음으로 지능을 가졌다는 개나 원숭이도 미리 약속하고 애인을 만나러 나가지는 않는다. 사람만이 약속을 하고 산다. 인간이 사는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먹는 것(食)과 믿는 것(信)이다. 먹는 것과 믿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모두 식(食)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신(信)을 앞세웠다. 믿음이 깨어지면 그 사회는 깨어진다. 한국에서는 제야에 보신각(普信閣)종을 울린다. 믿음을 널리 펴자는 종소리다. 제야의 종이 울릴 때 10만 인파가 몰려든다는데 과연 몇 사람이나 공자가 말한 뜻을 알고 실천할까? 우리 사회는 불신으로 병든 사회다.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여기서 약속을 지키고 세상을 떠난 한 여가수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이애리수라는 가수가 있었다. 그녀는 1928년 단성사에서 '황성옛터'를 처음 불렀다. 여러 곡을 불러 인기를 한 몸에 받은 미모의 가수였다. 한참 인기절정에 있을 때 그녀는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자취를 감추자 사망설까지 떠돌았다. 그러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사연 뒤에 숨어 있는 내막은 약속이라는 두 글자에 있었다. 그녀는 배00씨라는 연세대생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약속 하고 시부모 앞에 섰는데, 시댁에서 가수라는 이유로 결혼을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녀는 자살소동까지 벌렸지만 시댁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마침내 시아버지와 굳은 약속을 하고 결혼을 허락받았다. 가수라는 사실을 숨기고 앞으로 가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결혼생활 2년 후 그의 시아버지가 사망하였다.
남편이 제안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가수활동을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이애리수는 반대하였다. 돌아가셨지만 약속은 약속이라고 그녀는 평생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어찌어찌 하여 98세에 그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99세에 타계하였다. 그녀의 자녀들도 어머니가 가수였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우직하리만큼 시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킨 그녀의 약속을 오늘의 한국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또 한 사람의 약속을 생각해보자. 안창호 선생이 독립운동을 할 때의 일이다. 그는 친척집 어린이에게 내일 모레 과자를 사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과자봉지를 들고 어린이를 찾아 가는데 일경이 미행을 하였다. 그는 일경이 미행하는 것을 알고도 어린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친척집에 가다가 잡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고 그길로 옥사하고 말았다. 생각하면 얼마나 우직한 행동인가 그러나 그는 그런 정직한 정신으로 독립운동을 하였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인간은 살아있을 때 어떤 감투를 썼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인간만이 약속을 하고 산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불신이 깊어지고 사회는 병이 깊어진다. 한국사람 80%가 타인을 못 믿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OECD 국가 중 최고라고 한다. 내가 어려울 때 의지할 곳이 있는가의 물음에 OECD 국가 중 한국 사람이 최하위로 조사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대부분의 책임은 지도자라는 정치인에게 있다. 높은 사람이 식언을 하면 모방심리의 현상에 의해서 서민들도 따라서 거짓말은 하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대통령도 거짓말하는데, 나 같은 서민이 좀하면 어때 하고. 정직하게 살았던 한 지도자의 고백을 들어 보자.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의 아내를 사랑하고,
내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나라를 사랑한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아이젠하워의 말이다.
김종재 / ‘역사는 강자의 편이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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