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빚을 덜기 위하여

송담(松潭) 2018. 4. 18. 05:26

 

 

삶의 빚을 덜기 위하여

 

 

 자네, 후련하지.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영욕의 세월, 한 바탕 치르고 사회가 정한 정년을 하고 나니 어떤가. 쌓아놓은 것은 별로 없지만, 자식들 사고 치지 않을 정도로 길러놓고, 이제 홀로 되니 자유롭지 않은가. 눈앞에서 벌어진 부정에 대해, 그래도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한다며 못 본 척 때로는 두 눈 질끈 감고 지나치지 않았나. 세월과 더불어 잊혀진 일들이 한둘이었나. 모두 아등바등 살고 있는데, 이렇게 몸 하나 건사한 것만도 다행이지 않은가

 

 이제 마르크스도, 간디도, 박경리도 만나야지. 거기에는 자네 젊은 날의 열망과 열정이 숨어 있지. 마음껏 이들의 이야기에 취해봄직하지. 이왕이면 이 땅에서 자유니 정의니 평화니 하는 말들이 자네가 사는 동안 횡행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찾아보게. 먹고살기 바쁜 이 시대에 이런 말들이 왜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겠지. 앞만 보고 살았으니 그런 고상한 말들을 마음에 담지 않았어도 별수 없지

 

 그런데 자네, 어떤가. 세상은 행복해지고 삶의 기쁨은 넘쳐나고 있다고 보는가. 지금 와서 자유와 평등을, 인권과 생명을 생각한들 그것이 머릿속에만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 하나 잘 살았다는 게 큰 자랑이라도 되는가. 아니면, 길거리에서 힘겹게 손수레를 끌던 노인들, 온 종일 일하지만 받는 월급은 내 것의 반도 안 되던 육체노동자들,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면 구석기시대로 돌아간다며 광화문광장에서 평화를 외치던 사람들, 핵발전 대신 청정에너지로 지구를 구하자던 환경운동가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수장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던 사람들, 대추리·강정·소성리에서 군사무기 그만 들여놓자고 비폭력 무저항으로 싸우던 힘없는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의 외침이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님에 안도했던 일들이 새롭게 되살아나 주먹이 불끈 쥐어지던가

 

 아니 이젠 만인 대 만인의 투쟁적인 삶 속에 지쳐서 그들 위대한 사상가, 철학자, 예술가를 만나도 그냥 정신적 위안일 뿐, 관념으로 남지 않던가. 몸은 쇠해지고 예전에 세상사의 흐름에 민감하던 촉각도 이젠 무뎌져서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리고 깊게 파헤쳐가던 생각의 힘도 점점 줄어들겠지. 세상사와 내가 함께 엮어져 돌아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이제 와서 세상 바꾸는 열정을 회복하기에는 늦었지 않은가. 이보게, 그러니 삶의 현역이었을 때, 세상이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규제하며, 규율했는가를 생각하며 세상을 위해 조금은 애썼어야지.

 

 자네, 삶의 십분의 일이라도 세상으로 눈을 돌렸더라면, 우리 가족과 이웃과 세상이 더 자유롭고 평화로웠으리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는가.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로빈슨 크루소처럼 외딴섬에서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는가. 그도 섬 속 다양한 자연의 생명이 있어 구제될 수 있었다네. 결국 우리가 살아온 것은 함께 사는 의미를 확인하는 것 아닌가. 이제 와서 누군가 외치는 불의에 항거하는 목소리를 지나쳤던 것을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세상은 때가 있는 법, 나의 울타리 넘어 더 큰 세상이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은 그만큼 내 삶 전체를 이해하지 못했던 걸세

 

 사실 늙으면 죽음을 앞두고 보따리를 챙겨야 하네. 주름은 하나둘 늘어가고, 새로운 젊음들이 자네 자리를 차지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는 법일세. 나는 이 세상에 왜 던져졌을까, 라는 실존적 물음에 대해 하늘의 뜻을 해득하고, 사라지는 대열 속으로 순순히 합류하는 것 외에는 없는 걸세. 가능하면 빚진 것 갚고, 맺힌 원한은 풀고, 마지막 인사 못 나눈 이들은 아직 걸을 수 있을 때 찾아다니며 회포라도 풀게나. 이 사회 모든 짐을 애써 짊어지는 수고를 지지는 말게.

 

 

 그래도 여유 있거든 젊은이들에게 이야기는 해주게나. 내가 젊었을 때,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았다면 우리 삶은 더욱 풍요로웠을 것이라고. 비록 기울어진 운동장일지라도 온몸을 내던지며, 인류의 평화를 위해 불의에 저항하고, 외치며, 통탄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외면하지는 말라고. 그리고 내 삶을 안전하게 가꾸어 가는 것도 좋지만, 자신은 모든 생명들과 관계 맺고 있으며, 이 지구 안에서는 하나의 가족임을 기억하라고. 그러니 삶의 일부분쯤 그들과 함께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들을 외롭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공동체를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우리 선지식들을 한 번쯤 뜨겁게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성숙해서 돌아보면, 그들이 나이고, 내가 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이보게. 이렇게라도 해야 빚을 조금이라도 덜지 않겠는가

 

원익선 원광대 정역원 교무

 

(2018.4.14.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삶의 빚을 덜기 위하여